생애 마지막 이사라는 말은 하지 못하겠다만.
어제 영재원 특강 강의 중 자꾸 휴대폰에 전화가 들어온다.
물론 무음으로 해두었으니 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한참 후이다.
부동산이다.
지금 살고 있는 전셋집을 매매하겠다고 주인이 알려준 지 한 달 정도가 지났고
집을 보러 온 사람은 4팀 쯤 되었었다.
뒤이어 문자가 들어온다.
오늘 계약을 하려한다면서 집을 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이전에 집을 보러왔던 사람이 계약을 하는 거라 생각했고
귀가 시간을 맞추어서 집을 보러 올 시간을 약속하느라
수업 중간 중간에 신경이 쓰였으나
부동산 전성기도 아닌 시기에 그렇게 매매가 쉽게 되겠어 싶은 생각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특강을 잘 마무리 하고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와서
환기도 시키고 청소기도 돌리고 화장실 상태도 정리한다.
집을 보여주는 일이란 그렇게 신경을 안쓰려해도 신경이 쓰이는 일이다.
그래서 아예 집을 안보여주는 사람들도 있다하는데
그 마음을 조금은 알겠지만
그래도 나도 이사를 가야하는 입장인데를 생각하면 당연히 기꺼이 보여줘야하지 싶다.
사실 그래서 나는 첫 입주 아파트를 좋아라 한다.
비어있는 집을 구경하는 것이 훨 마음이 편하다.
그런데 계약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집을 보겠다는
그 부부는 집에 처음 오는 사람이다.
아무리 내가 눈썰미가 없다해도 처음 보는 사람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집도 안보고 계약할만큼 이 집의 조건이
매력적이거나 아니면 급매였나 싶은데
집을 보러 온 부부는 부산에서 당일 갑자기 올라와서 폐가 되었다면서 정중하다.
그리고는 구석에 숨어있는 고양이 설이를 보면서 이쁘다고 사진을 찍으면서 좋아라한다.
집을 보는 것보다 고양이를 더 오래토록 본다.
남편이 고양이를 너무 좋아한단다.
설이를 한번 보고 무슨 종인지도 알아맞히는 것을 보니 고양이 집사 희망자가 맞다.
고양이 덕분에 어색한 분위기가 사라지고
나도 이 집에 대한 설명에 후해진다.
그리고는 한 시간 뒤 매매 계약을 체결했다는 연락이 왔다.
아니 갑자기 서울에 올라와서 집을 하나 보고는 덜컥 계약을 한다고.
그리고 그 집은 본인들의 거주 목적이 아니라 전세를 놓을거라고.
소시민이고 경제력이 부실하며 돈 모으기에는 일절 능력치가 없는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행보이다만
어쨋든 이사를 위한 첫 단추가 꿰어진 셈이다.
상상만으로 진행되던 이사가 조금씩 구체화되려나보다.
물론 자세한 것은 이 집의 전세가 나가는 시점이기는 하고
따라서 여전히 집을 보여주는 일은 남았지만
(몇 번만에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 지난번 신용산에서는 거의 집을 50번 이상 보여주었었다.)
아마도 이번 가을이 서울에서의 마지막 가을이 될 확률은 매우 높다.
나의 이사 희망 예정지는
강의 나가는 학교에서 30분 거리 정도의 위치이며
지하철역이 멀지 않은 곳에 있고
가급적 800세대 이상의 오래되지 않은 아파트이며
뷰가 좋은 아파트에 착한 가격이어야 한다.
대문 사진처럼 붉은 빛의 강렬함은 아니더라도
무언가 디자인 포인트가 하나쯤은 있다면
더더욱 좋겠다.
그 아파트가 그 아파트인 것은 별로이다.
이런 어려운 조건을 맞출 수 있는 곳이 과연 있겠냐 싶지만
서울이 아니라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오랜 고민 끝에 개인 주택은 포기했다.
나이 들고 은퇴 후 개인 주택에서의 여유로운 삶이란
아무 걱정없이 장기 외국 여행자로서의 삶만큼
현실적이지 않고 쉽지 않다는 것을 이제서야 확실하게 알았다.
그 멋진 삶을 하고 있는 제자 녀석이 부럽기만 하다.
이제 더더욱 서울의 곳곳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이 들어 하루 하루가 더 소중하다.
생애 마지막 이사라고 쓰고 싶지만 그렇지 않은 확률도 많이 있다.
그 대학에서의 강의가 끝난다면 그 곳에 있을 이유 중 가장 큰 조건 한가지가 사라지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