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아침 저녁 시간 일부 한정이다.
어제 비가 내려서 였을 수도 있다만
드디어 아침에 창을 열어 공기 내음도 맡고 나무 냄새도 맡고 환기도 하고
고양이 설이에게 바깥 세상도 투명하게 잘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풀벌레 소리도 소음 수준이 아니라 잘 어울리는 배경음악처럼 들린다.
물론 아침과 저녁 일부 시간에만 가능한 한정적인 창문 열기이다.
이제야 드디어. 길고 길었던 그리고 무덥기가 그지없었던 여름의 끝이 보일락말락 한다.
오래 걸렸다. 그리고 아직도 끝물 더위가 얼마쯤은 남아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물러설 녀석이 아니다.
어제 저녁에는 슴슴한 김밥을 준비했는데
(오이, 당근, 달걀 그리고 어묵조림. 남편이 좋아라하지 않는 고기와 매운 것은 뺐다.)
남편이 친구를 만나 포천에 있는 수목원까지 나들이를 하고 늦은 점심을 먹었다고 하고 다녀와서 힘들었는지(당연히 힘들다. 나 같아도 힘들겠다.)
내처 자길래 깨우지 않고 두었다가 저녁이 늦었다.
아픈 친구를 불러내서 기분전환 나들이도 시켜주고 맛난 것도 사주는 좋은 친구들에게 감사한다만
그 시간은 조금 길지 않게 짜주었으면 한다.(부탁이 너무 과한가?)
피로도를 고려해야 하니 말이다. 피로한 것이 지루한 것보다 더 나쁘다. 환자에게는 말이다.
늦어진 저녁 김밥을 함께 먹고 나니 배가 더부룩하다.
나는 평소 퇴근 후 6시 반 이전에 저녁을 해결하고
일찍 잠에 드는 스타일인데
남편의 항암약 주기에 맞추다보니 저녁이 점점 늦어지고 있다.
먼저 먹을 때도 있지만 김밥은 싸서 바로 먹어야 맛나지 놔두면 눅눅해진다.
모든 음식이 그렇다. 방금한 음식이 가장 맛난 것이 국룰이다.
할 수 없이 부른 배를 다스리러 야간 산책에 나선다.
마침 밤에 피는 분꽃 사진을 찍으려했었는데 잘 되었다.
과학사에서 완두콩과 분꽃을 가지고 유전 연구에 몰두한 이야기를 하려는데
학생들이 분꽃을 모를 것 같아서이다.
그리고 분꽃의 다양성은 잎이 활짝 펴져야 비로소 알 수 있게 되니 밤산책이 딱이다.
그 분꽃 사진만 보아도 아하 유전이 얼마나 다양하게 발현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비슷해보여도 똑같은 녀석들이 많지는 않다.
그런데 멘델 아저씨는 분꽃 연구를 하셨으면 분명 밤에 계속 깨어계셨다는 뜻인데
수도원에서 그것이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다.
대단한 분임에 틀림없다.
그 문제해결력과 그 시대 그 수준의 데이터 처리능력과 과제 집착력이라니...
우리 집 근처 오래된 미용실 앞에 분꽃이 무더기로 피어 있다.
사장님이 좋아라하셔서 씨를 받아두었다가 매년 심는다고 하셨다.
누군가는 그처 스쳐지나치는 화분 몇개이지만
나같은 사람에게는 살펴보는 즐거움을 제공하는 멋진 배려이다.
그런데 낮에 지나가면 모두 꽃잎을 오므리고 있어서
그 아름다움을 모른다.
밤 산책이 주는 기쁨. 달맞이꽃과 분꽃이다.
어젯밤에서야 수정에 보완에 검토를 겨우 마친 첫 주차 강의 원고를 사이버캠퍼스에 업로드하였다.
지난주 강의인줄 알았을 때 이미 올렸었으나 한 주가 미루어져서 고민의 시간만 늘어났고
오늘 그 최종본으로 다시 수정해서 올렸지만 그 내용이 실제 최종본이 될지는 수업을 해봐야 안다.
일단 시간 배분을 잘 모르겠어서 최대치 양으로 만들어서 올렸다.
월요일에 각각의 강의 한 차시씩이 있으니 월요일에 해보고 다시 그 양을 가늠하여 결정하면 되겠다.
한 차시에 모두 다 소화를 못하면 다음 차시에 이어서 하면 되는데
너무 조금 준비해서 시간이 남으면 학생과 교수가 모두 뻘쭘한 상태가 된다.
그렇다고 일찍 수업을 종료하는 것은 내 스타일이 절대 아니다.
나는 수업 종료 후에는 절대 수업을 하지 않고
(종치고 달리시는 분들이 꼭 계신다. 학생일 때 제일 질색한 케이스이다. 10분 쉬는 시간에 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그렇지만 한참 일찍 끝내주는 스타일도 아니다.
(이것은 직무유기아닌가 싶다. 자습시간을 너무 자주 주는 것은 교사 편의이지 절대 학생을 위해서가 아니다. 시험을 코앞에 둔 시기가 아니라면 말이다.)
딱 종치기 5분전에 모든 것은 마무리하는 스타일로 40년을 살았으니
아마 대학에서의 강의도 그 스타일이 될 수 있게
시간 배분을 잘 하겠다.
이 글을 쓰고 났더니 점점 기온이 빠르게 올라가는 것이 느껴진다.
기온과 상대습도는 과학적으로는 서로 반대의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 맞다.
상대습도를 정의한 수식에 따르면 그러하다.
기온이 높으면 상대습도는 낮아진다.
수학적으로 과학적으로는 물론 그러한데
요즈음 우리나라 여름의 습도도 높고 온도도 가열차게 높은 이런 현상을
실생활과 매칭시켜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일은
매우 어렵지 싶다.
그래도 어젯밤에는 멘델과 분꽃 주제를
오늘 아침에는 기온과 습도 주제를 고민했으니
강의 주제는 차고 넘친다.
최적의 이슈를 선택해서 어떻게 정리하여 제시하는가는 오롯이 내 몫이다.
이 글을 읽은 생명과학 전공 교감님께 톡이 왔다.
멘델은 완두콩 상태를 주로 연구했으니 밤에 안깨어 있어도 되었을거라고. 생각해보니 그렇다.
역시. 전공의 힘. 나는 지구과학 전공이다.
코렌스 독일과학자가
멘델유전법칙이 맞는지 검증하려고 실험재료로 선택한게 마침 분꽃과 다른 몇가지 꽃식물들이었고
몇번을 거듭해도 분꽃만 이상한 결과가 나오니 연구결과를 정리한게 중간유전이다.
역시 코렌스는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