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부족한 점이 머릿속에 오래 남는 법이다.
40년을 강의를 주된 업으로 살았고
(물론 교사일 때는 강의 이외의 행정 업무나 학생들에게 잔소리하는 것이 더 헤비한 업무로 다가올 때도 있었지만)
익숙한 일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대학에서의 교양 강좌 진행은 쉽지만은 않았다.
학생들이 어느 수준까지 알고 있을까에 대한 기준이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전공 수업이라면야 이것까지는 알고 배웠다는 기준이 있지만
각각 다른 전공의 다양한 학번의 학생들의 구성은
재미있고 의미 있는 강의로 가는 길에 장점이자 단점이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1주일간 과학적인 이슈에 대한 간단한 리뷰
그리고 주제에 맞는 간단한 실험이나 체험활동과
그룹별 토의 토론활동을 포함한
과학의 특성과 맥락에 대한 설명으로 진행한다.
이름하여 <생활속의 과학하기>이다.
내가 설정한 강좌의 목표이기도 하다.
그래도 어제로 내 마음 속의 한 학기의 전반전을 마쳤다.
한 학기 긴 마라톤의 반환점을 막 돈 셈이다.
사실은 1/3 지점을 통과한 것이지만 내 마음속에는 1/2 통과라고 느껴진다는 점이 중요하다.
엄청 쉽지만은 않았다는 증명인 셈이다.
교사일때도 3월만 잘 보내면 한 학기가 끝난 느낌이었는데 지금이 딱 그 느낌이다.
그런데 항상 그렇듯이 부족한 점만 머릿속을 맴돈다.
잘한 것은 기본이고 아쉬운 점이 내 발목을 잡고 뒷목을 부여잡게 만든다.
기준점의 잣대가 너무 높은 것일까?
이 대학에서 강의한지 고작 1달이 지났을 뿐이다.
아직도 학생식당과 강의하는 건물과 사무실이 있는 건물밖에는 가본 곳이 없는 신참이다.
그런데 신참이라서 신입이라서 너그럽게 받아주고 이해해주고 넘어가는 일들은 사실 없다.
이 세상의 모든 신입들이여. 세상이란 그런 것이다.
알려주지않아서 몰랐다고 왜 친절한 안내가 없는 것이냐고 불평해보았자 아무 소용이 없다.
부지런히 찾아서 자기 일을 수행하는 것이 직업인으로서의 삶의 자세이다.
그래도 나는 젊고 스마트한 교수님과 행정직원들이 많이 도와주어서 신입 한 달을 잘 마무리했다.
다행이고 고맙다.
어제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관심을 보여주어서 토성을 못본 아쉬움은 있지만 천체 관측도 끝났고
이제 조금씩 입소문이 난다면 내년 학기는
이번 첫 학기보다는 쉬울 것임에 틀림없고
나의 강의 준비도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니
그 부분에서는 조금 마음이 놓이기도 한다.
관성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 없으니 말이다.
하던 일은 그 빠르기로 그 수순으로 진행하려는
업무의 관성도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점점 낮은 수준이 되기는 하지만
나의 회복탄력성도 믿어보려 한다.
지금보다 더 힘든 일도 많았는데
그것도 버티고 지나왔는데
그런 어려움 속에도 가끔씩은 웃을 일도 즐거운 순간도 생겼는데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오늘은 얼음 냉장고 A/S 와 새로 구입한 수동형 청소기 배달이 오전에 예정되어 있다.
얼음 냉장고에서는 얼음이 나오지 않은지 꽤 되었는데 내가 안나오게 해달랬던 것일 수도 있고(어슴프레 기억이 나는 것도 같다만. 얼음 먹을 사람이 없다.)
수동형 청소기는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로봇 청소기만으로는 반짝반짝 때깔이 나지 않는다.
결국 모든 것은 사람의 손길이 닿아야 한다.
집안일이고 강의 자료이고 정성을 다하는 것만이 최고이고 최선이다.
나는 너무 나에게 박하다.
남편과 아들 녀석에게도 박하다.
알고있다. 칭찬과 만족이 부족하다.
학생들에게는 그렇지 않다만.
자꾸 잘못한 일만 부족한 일만 되새기는 습관이 있다.
이제라도 잘한 일을 머릿속에 오래 남기고 만족하는 삶을 살고 싶은데 지금은 너무 늦었으려나.
일단 오전은 냉장고와 청소기를 해결하고 쉬어보자.
나에게 관대한 하루를 보내보자 결심은 한다만.
잘 될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