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봐, 내가 안될 거라 그랬지

사람 안 바뀐다니까

by 이일일


또 당했다.


또 당해버렸다.

믿었던 나의 잘못이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연락이 되고도 남았어야 할 시간에 그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

전화, 보이스톡 모든 방법을 총 동원해 봐도..


"전화기가 꺼져있어, 삐 소리 후.."


전날 한참을 잔소리를 늘어놓는 나를 보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나도 듣지 않았구나. 하나도 깨닫지 못했구나. 또 내가 당했구나.


허겁지겁 고객사에 미리 연락을 해놓고 핑계를 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내가 방어하고 커버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놓은 채 하루가 끝났다.


그에게 연락이 왔다.




"핸드폰이 꺼져서 알람을 듣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화낼 힘도 없다. 이제는.

밤을 새워 야근을 하고 집에 들어가서 바로 잠드는 바람에 핸드폰을 충전하지 못했다는 말에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랬다는데, 이유가 있다는데 뭐라 하랴.


이미 고객사에서는 난리가 났고, 고객사에서 그를 안타깝게 생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인간은 이렇게도 바뀌기 어려운 동물이란 말인가.


늘 이런 순간이 오면 나 먼저 돌아보게 된다. 습관처럼.

나는 최선을 다했는가. 변화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고 이런 감정을 갖는 것인가.

내가 부족했다면 어떤 부분을 더 보완해서 해주었어야 하는가.


많은 생각이 들면서 같은 실수를 또 반복하게 된다.


"역시 내가 부족했나, 한 번 더 기회를 줘야 하나?"


일에 차질이 생기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주변에서 일을 잘하는 사람들이 커버 쳐주기 바쁘다.

문제가 생긴 부분을 해결해주기도 해야 하고, 고객사와의 문제는 짧은 시간에 해결이 되지도 않는다.

신뢰에 금이 간 것도 오랜 시간에 걸쳐 회복해야 하고, 이미 깎아먹은 이미지는 잘 바뀌지 않는다.


어떤 것들을 더 해줘야 하는 걸까?


보통 주니어 PM들에게 내가 가르쳐주는 것들은 대개 정해져 있다.


이메일 퇴고 - 처음에는 아예 다시 적어주는 경우도 있지만, 고객사에 나가는 메일은 꼭 더블 체크
고객사 업무 일상 소통 - 슬랙이든 카톡이든 두레이든 협업툴에서 고객과 소통 시 멘트 잡아주기
고객사 협의, 조율 - 얻을 것 얻고, 맺고 끊기 / 매니저 선에서 안 되는 문제는 직접 미팅 혹은 통화
업무 효율성 - 쓸데없는 데에 시간 쏟지 않고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우선순위 판단 - 어떤 것을 먼저 해야 다른 부분들도 자연스레 풀리는지 판단할 수 있도록 해주기
문제 해결 능력 - 직접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경우도 있지만 해결력을 길러주기 위한 대화 및 세팅
사회생활 기본 소양 - 다양한 영역 전반에 걸친 조언 및 개입 -> 소통, 배려, 가치관, 업무자세, 마인드셋 등등
프로의식 - 이곳은 학교가 아니라 회사이며 돈을 버는 모두는 프로임을 늘 강조
구조적인 사고 - 기획을 하든 문제 해결을 하든 A - Z 생각하는 흐름을 가르치고 숙달되도록 반복
기세 - 잘 모르는 것이 많기 때문에 늘 주눅 들 수 있는 부분에서 기세를 찾는 방법 전수
순간판단력 - 임기응변 내지는 빠른 대처가 어려울 수 있기에 직접 보여주고 해 볼 수 있게 경험 세팅
Give and Take - 늘 기로에 서는 PM은 어떤 순간에는 확실하게 얻어내고 어떤 순간에는 확실하게 끊어내야 함을 시기와 상황에 맞게 가르쳐주기


각자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는 동료들에게 계획을 가지고 해당 부분들을 가르쳐주고 세팅해 주는 것은

꽤 어렵고 복잡한 일이다.


사람에 대한 판단과 분석은 물론이고, 내가 시도한 방법이나 가르침이 적용되지 않거나 반영이 되지 않는다면

바로 변경하고 바꾸어 실행에 옮겨야 하며, 피드백과 체크는 일상이다.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

내 할 일은 새벽에 늘 하게 된다. 그러니 새벽 4-5시에 늘 퇴근할 수밖에

그렇다고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의 노력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는 서운해 할 수 있고 누군가는 너무 과하다고 생각할 수 있고 답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또 다른 실수가 발생한다.




인간이란 본래 부족하고, 실수투성이인 사람에게 더 신경을 쓰게 되고 더 시간을 투자하기 마련이다.

누군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 옆에서 묵묵히 제 몫 이상을 해주는 사람을 더 챙겨야 해."
"얼마나 고맙냐.
근데 우린 늘 그런 사람들은 알아서 잘해주니까 크게 신경 써주지 않아."


맞다.

너무나도 맞는 말이다.


"알아서 잘해주겠지."
"걱정 없어. 너무 믿으니까."


그러면 그럴수록 그런 동료에게 더 시간을 투자하고 더 많은 신경을 써줘야 하는 것이 맞는데.

훨씬 고마움이 더 있고 마음이 더 가는 것이 맞는데 왜 투자는 부족한 사람에게 하게 될까.

부족하니까. 그쪽에서 문제가 터지니까. 우린 그 실수를 늘 반복하면서 또 하고, 후회를 한다.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옆에서 잔소리도 많이 듣는다.


"거봐, 안될 거라고 했지. 사람 안 변한다니까."


내가 물고 늘어지고, 붙잡고 있는다고 해서 능사가 아닌데.

어찌 보면 이것 또한, 굉장히 오만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 맞다.

내가 노력하면 그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기저에 있지 않다면 그 정도로 노력할 수 없다.


망상이자 오만을 이렇게도 고집스럽게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여지없이 오만에는 바짝 겸손하라는 경험의 채찍이 돌아올 수밖에 없고, 또 뒤돌아 후회를 한다.

다짐도 해본다.


"절대 안 속아, 이제."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기에 사람(상대방)이 변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딱 2가지이다.


첫 번째. 본인이 뼈를 깎는 고통을 겪고, 거쳐 성장하는 경우
두 번째. 내가 뼈를 깎는 고통을 겪고, 거쳐 먼저 성장하고 변화하는 경우


두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 사람이 변하는 것은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두 가지 경우마저도 인생을 아직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거의 보지 못했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 조차도 그렇게 변화를 가져간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변화하면서 깨달았다.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일이구나."


만약 내가 주저하게 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되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이제는 놓아주자.


그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내 주변에서 정말 묵묵히 최선을 다해서 함께 잘해주고 있는 동료들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우리 이제, 실수하지 말고,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