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만 있는 조직은 괴롭다
[스타트업 사람 살림살이]
천사만 가득한 조직 안에서 일해본 적 있다면 숨 막히는 순간들을 느껴본 적 있으실 겁니다.
이상하게 착함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들은 악함보다 더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옳고 그름, 좋고 나쁨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상대방이 업무적으로나 인간적으로 배려라고 느끼는지 아닌지 상관없이
서로에게 행하는 배려공격은 잡혀있던 질서를 무분별하게 깨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배려와 이해의 행동이 조직 내의 시스템 안에서 윤활유 작용을 하는 경우도 당연히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문제가 시스템 내에서 왜 이렇게 풀리지 않는지 가만히 살펴보게 되면
그 안에 천사가 끙끙대며 힘듦을 모두 끌어안고 있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이해가 쉽도록 천사와 악마라는 표현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진짜로 그들이 천사의 선함을 가지고 있다거나 악마의 악함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이 힘들까 봐 내가 힘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는 선함 정도를 가지고 일을 끌어안고 놓지 못하는 사람들을 표현할 다른 워딩이 딱히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힘들고 지쳐가는 사람들에게 나서서 소리치며 다소 아플 수 있지만 거칠게 끌며 교통정리를 해주고 정신 못 차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회초리를 드는 사람들은 흔히들 악마로 보이기에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곧잘 사람들에게 자주 표현하는 이야기이기는 한데 저는 성악설을 믿는다고 합니다.
정확하게 이론적인, 학문적인 성악설을 이해하고 그것을 믿는다고 표현한 것이 아닙니다.
저 스스로를 바라봤을 때에도 인간은 기본적으로 악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많다고 이해하고 있기에
쉽게 표현해, 성악설을 믿는다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조금만 더 깊이 살펴보면,
인간은 기본적으로 게으릅니다.
제가 가장 경계하고 인지하고자 하는 말은 다음과 같은 말입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원래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이기고 몸을 일으켜해야만 하는 일들을 해내는 것은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의지는 아니지요.
굉장히 어렵사리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온갖 명분과 이유를 들어 만들어낸, 쥐어짠 의지입니다.
선함을 자연스럽게 행하는 사람들은 본래 선하여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선함을 행하는 데에 필요한 노력과 의지를 불태우는 데에 들어가는 연료가 남들보다 덜 들어가기에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결국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많은 노력과 의지를 가지고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도 억제해 가면서 해야만 하는 것들을 해야지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 수 있는가,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할 수 있는가
늘 논쟁을 일으키는 주제에 정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 스스로에게 정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럴 수 없다.
입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는 늘 하기 싫은 것을 해야만 했고 하고 싶은 것도 저에게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더 값지게 할 수 있는 데에는 환경 세팅이 늘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고되게 하고 싶지는 않지만 해야만 하는 일들을 한 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좋아하는 일을 했을 때,
그때의 행복감과 기쁨은 지금도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행복이라는 것도 불행이 있기에 값지고, 돈이라는 것도 자주 나에게 없기에 중요하고
사랑도 늘 충만하지 않기에 느끼는 순간 벅차며, 시간이라는 것도 유한하기에 가치 있습니다.
늘 행복하다면 행복감은 분명히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행복하기를 바라게 되는 것도, 행복한 삶이 꿈인 사람들도 늘 행복할 수 없기 때문일 테니까요.
돈은 좀 다른 문제 이긴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매일 1조씩 저절로 나오는 기계를 모두 가지고 있다면 그게 과연 '돈'이라는 의미의 가치를 가질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무언가가 생기겠지요.
사랑을 늘 느껴 부족함이 없다면 너무 좋겠지만 그때의 사랑만큼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랑도 없을 겁니다.
시간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지요. 무한하다면 정말 사람들이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내 인생에 대해서 이만큼 고찰과 고민을 하면서 살아갈까요? 그럴 필요가 없을 겁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무한하니 언제든 살아보고 싶은 대로 살아도 되고 혹은 나의 인생이 무한코인이어서 죽으면 부활하고, 또 부활하고 한다면 그것 또한 참 골 때리는 일이겠지요.
인생에서 시간만큼 손에 꼽을 정도로 값진 것도 없는데 그게 가치가 떨어진다면 마치 내 인생의 가치마저 떨어지는 느낌이 들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사람은 끊임없이 간사함을 이기기 위하여 노력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 노력이 자연스레 되는 사람들은 선함을 조금 더 쉽게 행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엄청난 노력을 들여야만 하겠지요.
조직에서 방향을 설정해 주는 사람은 회초리를 들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누군가 그 역할을 수행해주지 않는다면 우리 조직 내에서 쓴소리를 통해 늘어진 마음을 잡아주고, 느려진 속도를 빠르게 해 주며, 생산성을 높여주는 것은 어떤 누구도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위로와 응원, 격려, 마음 챙김과 같은 부분들이 의미가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들만 존재하게 된다면 그 가치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적절한 정신차림과 재촉, 타이트하게 마음을 잡아주는 것은 위로와 응원을 더 값지게 만들어줍니다.
늘 줄을 팽팽하게 당기기만 하면 늘어나다가 끊어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줄을 한 번 팽팽하게 당기는 노력을 해보지 않는다면 줄이 어디까지 늘어날 수 있는지는 평생 두려워서 해보지 못해,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중간에 한 번 팽팽하게 당겼던 줄을 놓으면 그 줄을 다시 팽팽하게 만드는 것은 더 큰 힘과 노력이 필요하기에 적절한 힘세기와 노력의 조절을 통해 줄을 얼마나 당겨가며, 얼마나 쉬었다 당길 것인지 충분한 고찰과 고민을 더해가며 만들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악마가 행하는 회초리와 같은 액션에도 예의와 배려는 필요합니다.
물론 그렇게 행하는 사람이 있기 어렵기는 하지만, 필요함은 인지하되 방식에 대한 것은 다듬어줄 필요도 있습니다. 정작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하는 사람도 잘 모를 수도 있거든요.
하지만 악마가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천사가 더 의미 있을 테고 밸런스를 유지하게 될 테니까요.
선과 악이라고 표현할 수는 없지만, 긍정과 부정, 밝음과 어둠이 함께 존재하는 조직은 어떨까요?
균형 잡힌 힘으로 문제를 조금 더 다이내믹하게 풀어갈 수 있을 겁니다.
미지근함이 좋습니다.
불과 같이 뜨거운 사람도, 얼음같이 차가운 사람도 각각의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이 모든 것과 만났을 때 뜨거운 사람에게는 차가움을 주어 안정되게 해 주고,
차가운 사람에게는 더움을 주어 데워줄 것입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안정감을 가지고 있는 조직과 함께 한다면
미지근하다는 어감이 듣기에는 좋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정수기의 '정수'처럼 깨끗할 것이고 더우나 추우나 회사가 좋으나 어려우나
늘 어떤 상황이든 맞춰 움직일 수 있게 힘을 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에게는 악마가 반드시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