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적 시간관과 인간의 경험
집으로 가면 너와 헤어질 테니
집에는 안 갈래
그냥 그 바다에 있을래
그냥 그 공원에 있을래
김사월 - 너무 많은 연애
유적이란 과거에 웅장하고 멋졌던 것이 그 웅장함과 멋짐 때문에 남아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다. 유적은 과거에 번영했던 아주 멋진 장소의 잔해이다. 이제 무슨 수를 써도 그 북적거림은 돌아오지 않는 것일까. 그런 생각만 해도 나는 슬펐다. 이렇게 많은 것들을 잃으면서까지 얻어야 할 뭐가 있었을까?
요시모토 바나나, <바다의 뚜껑>, p.142
I think I know
why I can't let go
I'm still caught up
in the afterglow
When your mind runs off
to places you can't go
Gabrielle Aplin - Just One Of Those Days
"바다"와 "공원"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다. 잠시 거쳐갈 수는 있어도. 그러나, 결코 영원히 머무를 수는 없는 그 장소로, 이미 시간과 함께 흘러갔으므로 도달할 수 없는 그 장소("places you can't go")로 자꾸 마음이 내달린다("mind runs off to"). 결국 그곳엔 "유적"밖엔 없다. 그 "유적"은 더는 "멋지지도", "웅장하지도" 않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이다. 자처해서, 믿기를 거부한다. 그렇게, "이제 무슨 수를 써도 돌아오지 않을 북적거림"을 그리워한다. 그 모든 장소/시간/사람/경험이 결합된 고유 순간이 현재에까지 아직 잔존할 것이라 기대한다. 스스로를 희망고문한다. 모두 지나간 뒤의 잔광("afterglow")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잔광은 인간(나)의 숙명이다.
순환하는-시간관을 직선-시간관보다 더 좋아한다. 직선-시간관은 과거, 현재, 미래에 칼같이 준거해, 시간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일정하게(일분 일초) 규율되며 흐른다는 관점이다. 반면에 순환-시간관은 (경험을 수반하는) 시간이, 일상에서 실제 경험한 순서와 관계 없이, 사후에 구성된 경험이자 기억으로 저장될 때, 그 순서와 길이가 모두 새롭게 선택된다는 관점이다.
시간은 관념이다. 눈에 보이게끔 물리적으로 정돈되는 것 따위가 아니다. 특정 경험(시간)은 오히려 머릿속에서 자율적으로 어떤 곳에 위치지어진다. 일단, 모든 경험은 사후 해석이다. 기억(re/member)은 사지의 재구성이다.
인간 개인을 구성하는 것은 바로 이 시간, 경험, 기억이다. 이것은 순환적 시간관으로만 설명이 가능하다. 시간, 경험, 기억은 모두 그 당시의 순서와 관계없이 아주 뒤죽박죽으로 머릿속에서 (재)구성된다.
(다시 말하지만) 경험은 사후 해석이기 때문에, 경험의 또 다른 이름은 잔광(afterglow)이다. 그 자체로 뒤얽힌, 잔광으로서의 시간들이 나를 이룬다.
순환-시간관을 바탕으로 이해한다면, 역설적으로, "afterglow"는 "places you can't go"이다. 즉, 현재에 경험되는 '과거'의 시간(afterglow)은 결국 내가 도달한 것이 된다. ("갈 수 없는 장소"라더니!) 엄청난 아이러니다. 이것은 불가항력적인 것에 관한 보편/초월 따위가 아니라, 오히려 일상/현실이다. '갈 수 없는' 곳에 매일 가고, '지나간 일'을 오늘에 같으면서도 다르고 새롭게 겪는다.
잔광은 이런 순환적인 방식으로 작동한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너와 내가 있었던 그때
김사월, 윤중 - 땐뽀걸즈
(사진의) 두 번째 요소인 "푼크툼punctum"은 (...) 호감이 아니라 어떠한 상처, 격한 감동, 당혹감을 낳는다. (...) 푼크툼은 극도의 강렬함과 응축의 장소이며, 그 속에는 뭔가 정의할 수 없는 것이 내재한다. (...) 푼크툼은 오직 머물러 있는 사색적 관찰 앞에서만 열린다. (...) 푼크툼은 "숙고적 태도"라고는 알지 못하는 소비적이고 탐식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있다. 많은 경우 푼크툼은 즉시 발현하기보다는 뒤에 가서야 머물러 회상하는 의식에 나타난다.
한병철, <투명사회> 중
롤랑 바르트의 "푼크툼"에 관한 설명
그러니까 푼크툼이 대단히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나중에 가서야, 내가 사진을 더 이상 눈앞에 두고 있지 않은 채 다시금 사진에 대해 생각하는 순간에서야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내가 기억 속에 그리는 사진을 눈앞에 두고 있는 사진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 그리하여 나는 깨달았다. 푼크툼이 아무리 직접적이고 날카롭다 하더라도 어떤 잠재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임을(결코 엄밀한 조사를 받아들이지는 못하지만).
롤랑 바르트
푼크툼은 죽은 자가 귀환하는 순간이다.
(...)
온전히 현존하는 어머니에게로, 죽어야 하는 모든 것들에게로, 연민의 사랑이라는 도덕적 순간 속으로....
롤랑 바르트, <애도일기>의 김진영 해설 중
프루스트에게 “즉각적 향락”은 아름다움이 될 수 없다. 무언가의 아름다움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다른 것의 빛 속에서,회상을 통해 나타난다. 아름다운 것은 지금 당장의 스펙터클에서 뿜어 나오는 현란한 빛, 혹은 즉각적인 자극이 아니라 고요한 잔광, 시간이 남긴 인광이다.
한병철, <투명사회> 중
어느 날 해가 지는 것을 보면서
나 역시 그러하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평생 괴롭고 싶은 거지
김사월 -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상처 주는 키를 우리는 모두 가지고 있어
우리 사랑하게 되고
우리 헤어진 후에도
나의 여생을 함께할
확률이 있는 그런 사람
김사월 - 확률
너와 함께 걷던 그 아무런 길을
걷고싶다
이랑 - 그 아무런 길
우주 이야기 중에 제일 좋아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별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지구까지 별빛이 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 다 제각각이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하늘에 보이는 별이 이미 터져서 없을 수도 있는데 예전에 그 별이 보낸 빛이 아직까지 지구에 다 못 와서 멀쩡해 보이는 거죠. 그러면 밤하늘을 보면 거기는 엄청나게 다른 시간대의 별들이 다 있는 거잖아요. 그걸 우리가 한 눈에 보는 거고! 너무 신기하지 않아요? 별 볼 때마다 생각나는 이야기예요.
진짜 별이 아니라 그 별의 과거를 보고 있는 거죠. 엄청 아이러니인데 이론상으로 가능하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낭만적이에요. 밤에 별이 많이 보이면 꼭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런 말이 있잖아요, "우리는 모두 별들의 후손이다!" 태초에 우주가 시작될 때 별들에서 원자가 생겨났거든요. 그니까 결국 사람을 이루는 건 별들에서 온 거나 다름이 없는 거죠.
P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