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년 가까이 —-을 사랑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최근에(2019년에) 결별했다. 물론 일방적인 사랑이었으나,
언젠가 강의실에서 마주했던 그(—-)의 언명처럼, “실연당한 사람만이 문학을 한다. ‘내가 너를 떠났네’라고 노래하거나 시를 쓰는 사람은 없다.” 2년 전, 처음 —-을 만났던 나는 시작부터 실연을 경험했다.
사회적 통념으로,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것의 의미는 서로가 서로를 바라본다는 뜻이다. 즉 사랑에 대한 고백(give)과 승인(approval)이 한 패를 이루는 과정이다. 그러나, 나는 사랑이란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다소 진부한, 사랑에 관한 자기계발서의 주장처럼 느껴질 수 있으나, 내가 생각하는 사랑에는 종착적 목적(‘결국 사귀게 됨’)이 없다는 점에서 내 주장은 그것과는 다르다. 나는 —-이 수업에서 이야기했듯이, 사랑이란 상대방과 대화하고 싶은 욕구 혹은 인정받고 싶은 욕구라고 생각한다. 즉, 상대방이 나한테 특정 행위를 해주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내가 가지는 어떠한 욕구’가 곧 ‘사랑’의 내용물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접근했을 때, 내 사랑은 분명 뜨겁게 시작되었다(나는 인정을 욕망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의 강의를 들을 때 —-이 (본인이 이 사실을 매우 강조한다는 측면에서, 자칭) ‘시간강사’로서 진행했던 글쓰기 수업의 최종 학점에서 A+를 맞았을 때 심장이 뛰어서 미치는 줄 알았다. 다소 ‘감정적인’ 이야기가 되었는데, 그가 언젠가 말했듯이 ‘감정’이라는 것은 인간의 지식이 체화(embody)되어 나타나는 종국의 가장 훌륭한 형태라는 주장에 나는 동의한다(유튜브에 ‘—-’을 검색해서 들은 홀로코스트와 세월호 사건 등에 관한 그의 강연 녹음 중 일부이다). 그의 이러한 설명은 한평생 감정으로 범람했던 내 ‘부적절’했던 자아를 비로소 해방시켰다고 할 수 있다. 나의 감정은 곧 체화된 지식이라는 것이었으므로 그러했다.
있었던 일을 모두 기술하기보다는 차라리 내 시나리오를 보여주는 편이 나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