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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트 Mar 25. 2022

사랑하는 여자들(Loving Womyn)

여성연대 다큐멘터리, 감독의 이야기

여자들은 사랑을 한다. 물론, 기본적으로 사랑은 주는(give) 성질이지만, 그렇다해도, 전혀 공평하지 않은 사랑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게 있다. 여성이 이성애 문화 각본에 따라, 남성을 사랑하게 될 때가 그렇다. 그 사랑에는, 인격체가 받아 마땅한 의미있는 보답이란 것은 없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자들은 여자를 사랑하지 않고, 사랑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사랑하는 건 남자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여자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여자뿐이라는 자연스러운 결론에 이른다.




여자를 사랑하는 여자들.

다큐에 출연하는 여자들,

그리고 출연하지 않은 여자들.

이 사람들은, 모두 내가 사랑하는 여자들이다.




그동안, "도처에 사랑이 있다"는 말은, 오직 복음적이고 박애적인 사랑임에 국한해서만 받아들여져왔다. 이때 사회가 말하는 절대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이란, 사실은 독점적 이성애 연애 규범의 틀에 맞는, 노동과 인격의 착취를 의미한다. ​


사랑이 이루어지는 방식은 이미 현상적으로 복수(plural)로 가능하다는 기정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 바로 이 다큐의 목적이다. 한 인터뷰 참여자 여성이 적시하듯이, "사랑은 모든 관계에서 가능하다." "좋으면 사랑인 것이다."




다큐의 제목을 "사랑하는 여자들"로 정하기 앞서, 먼저 떠오른 후보는 "사랑하는 얼굴들"이었다. 다큐에 얼굴을 내비친 모든 용감한 여성들의 생동감을 잘 전달하는 제목이라 생각했다.




사랑하는 여자들은, "-를 사랑하는 여자들"로 읽힐 수도 있고, "-가 사랑하는 여자들"로 읽힐 수도 있다. 나는 중의적 의미 모두를 채택하고 싶기에 이것을 제목으로 삼고자 결정했다. 먼저, "여자들을 사랑하는 여자들"이라는 의미에서, 이때의 "여자들"은 사랑을 실천하는 능동적인 주체로서 호명 받는다. 한편, "내가 사랑하는 여자들"로 읽는다면, 이때의 "여자들"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배타적이거나 독점적이지 않은 범위에 있는, 여러 명의 여성들이라는 점이 전달될 것이다.




영어제목은 Loving Womyn이다. Loving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이는 "-를 사랑하는 여자들"일 수도 있고, "여자들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동명사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동안 남성중심적 시각으로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것을 "사랑"이라 이름붙여온 오명의 역사에 대항하여, 진정 여자를 사랑하는 행위의 실천이란 무엇일지 고민하는 지점이 이 다큐에서 포착되길 바라는 기획 의도와도, 이것은 그 맥이 닿아있다.




사랑하는 여자들, 이라니. 너무 흔한 구(phrase)여서 이미 책이나 영화 제목으로 있지 않을까? 걱정이 돼서 인터넷에 검색해봤다. 내 걱정이 무색했다. 기성의 오염된 언어를 여성주의 언어로서 재전유해오는 일은, 항상 해도 해도 넘치지 않는다(불충분함에 가깝다). 여자를 사랑하는 여자들이 많아지고, 여자를 사랑하는 여자들이 가시화되고, 여자를 사랑하는 여자들이 안전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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