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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수아 Nov 04. 2023

붉은 여인의 초상(1)

2023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희곡부문 선정작

붉은 여인의 초상    

 

대호 한국신문 문화부 기자

현 국내 유명 화가

미현 현의 애인

여인 정체불명의 여인

선예 현의 아내

상인 미술 학원 원장, 화가

현서 강력계 경찰

상우 패션잡지 에디터 

변호사 이혼 전문 변호사

부장 신문사 문화부 부장     



1장 


미술관     

무대 정면에 커다란 그림 하나가 걸려 있다. 

색이 선명하고 사실적인 풍경화다. 

시골 마을을 병풍처럼 감싸 안은 뒷산과 

그 앞을 흐르는 개울

한 가족이 피크닉을 즐기고 애완견이 그들과 함께한다. 

동화책 삽화로 나올 것 같은 따스한 그림이다.

현, 두 손을 뒤로 맞잡고 자신의 그림을 바라보고 있다. 

대호, 현의 뒤로 조심스레 다가간다.      


대호   안녕하세요. 작가님. 

현    (뒤돌아 대호를 본다.)

대호   한국신문 문화부 기자 이대호입니다. 

현    네. 안녕하세요. 

대호   전시회 잘 봤습니다.

  잘 보셨다니 다행입니다. 

대호   다음 일정이 없으십니까?

  아내가 오기로 해서요. 

대호   아. 그러시군요.      


사이

     

   (대호를 다시 한번 쳐다보며) 기억나는군요. 아까 기자 간담회 때 저의 근황에 대해 질문하셨던 분이시군요. 

대호   네. 그렇습니다. 계속 질문을 드리면 실례일 것 같아 멈췄습니다. 

현   제법 곤란했던 기억이 나네요. (웃는다.) 

대호   더 질문드리면 사적인 영역까지 확대될 것 같아서요. 

현   그림의 연장선상인데 뭐 어떱니까. 궁금한 건 얼마든지 물어보셔도 됩니다.  

대호   그러시다면… 한 가지만 더 질문드려도 될까요. 특집 기사를 준비하고 있어서요. 

  한국신문에서 제 특집 기사를요? 

대호   네. 

   고마운 일이죠. 질문하시면 성의껏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대호   최근 풍경화를 주로 그리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근 일 년간 국내 여행을 많이 다녔습니다. 제가 모르던 자연의 풍경에 매료되었죠. 아직 개발되지 않은 곳들을 그림에 담고 싶었습니다. 대한민국의 국토 개발은 너무 빠른 속도죠. 언제 개발되어 사라질지 모르는 풍경들이니까요. 

대호   그런데 원래는 인물화를 중심으로 작업하지 않으셨습니까? 거의, 아니 백 프로 인물화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발표되지 않은 풍경화를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미대 시절엔 풍경화 동아리도 했었죠. 언젠가 한 일 년 정도는 풍경화 위주로 작업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작년 안식년을 가지며 여행을 한 게 새로운 발상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대호   아. 

   또 물으실 게 있나요?

대호   실례가 되는 질문인지 모르겠지만… 제 개인적인 의견으론. 인물화에 흐르던 그 특유의 분위기가 사라졌습니다. 

   특유의 분위기라뇨?

대호   선생님이 항상 그리던 여인은 눈빛과 입매가 아주 미세하게 비대칭이라 독특했죠. 초기작부터 중기, 그리고 최근까지도 그 도발적인 느낌은 점점 강해졌습니다만 풍경화는 구조가 반듯하고 색감이 온화한 느낌이라 의아하던 차였습니다.

현   도발적이라…

대호   인물화에서는 매혹적인 느낌과 섬뜩한 느낌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부드럽고 섬세한 붓 터치로 성글게 표현한 여인의 표정에선 아이러니가 느껴졌고 온도의 차가 느껴지는 색들의 배치에서는 위트가 느껴졌습니다.

   아이러니와 위트라… 실례지만 전공이 미술인가요?

대호   미학과입니다. 

   그렇군요.  

대호   학생 때 신춘문예 미술평론으로 등단했습니다. 

   인재시네요. 

대호   선생님은 국내 미술가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십니다. 

   이거 영광이네요. 

대호   그러니 오해 없이 들어주세요. 제가 좋아하던 선생님의 그 특유의 개성이 최근작에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평단의 호평과는 상관없이 개인적으론 아쉬운 마음이 들어요. 

현  저도 나이가 있지 않습니까. 

대호   아직 40대 후반이면 무척 젊으시죠. 

   교수직도 저를 안정적으로 이끌었죠. 아무래도 미술학이라는 게 화풍을 정형화시키는 작업이다 보니 본의 아니게 제 화풍도 좀 정형화되었습니다. 학생들에게 자꾸 기본적인 부분들을 강조하게 되거든요. 학교 때는 저도 그런 교수가 싫었는데 제가 그런 사람이 되었네요. 여하튼 평가는 새겨듣겠습니다.    

  

한쪽에서 또각또각 힐 소리가 나며 미현 들어온다.    


미현   여보. 

   어. 왔어?

미현   미안 내가 늦었지? (현의 팔짱을 낀다. 대호를 본다.)

   한국신문 문화부에…

대호   이대호 기잡니다.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현과 미현에게 한 장씩 건넨다.)

미현   우리 남편 기사 나가나요?

대호   광복절 특집 기사로 나갈 예정입니다.

미현   (웃는다) 와 감사해요. 이 사람 잘 부탁드려요. 

  오늘 반가웠습니다. 제가 아내랑 약속이 있어서…

미현   식사라도 함께 하실래요? 

  여보, 요즘 김영란법 때문에 기자님께 식사 대접은 안 돼요. 

미현   그럼 더치페이로 하죠 뭐. 

   그건 또 실례고.

대호   아닙니다. 두 분 좋은 시간 보내세요. 저도 일정이 있어서요. 

   제가 오늘 선물을 해주기로 한 게 있어서 함께 쇼핑을 가야 합니다. 

미현   전시회보다 중요한 일이죠!

   안 지켰다간 지구 종말이죠. 

대호   네. 좋은 선물 하시길 바랍니다. 

   반가웠습니다. 

미현   (대호에게 명함을 내민다.) 전시 기획사에 있어요. 이 전시도 저희 기획사에서 한 거죠. 혹시 연락 주실 일 있으면 언제든 환영이에요.    

  

미현과 현, 나간다.

대호,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대호   어. 상우야. 나 대혼데. 김현 작가 지금 이혼소송 중이라고 하지 않았냐? (사이) 확실해? (사이) 얌마, 뭔 고급 정보야. 방금 와이프랑 같이 봤어. 사이 완전 좋아. 뭔 이혼소송. 야. 그거 물어봤음 나 어쩔 뻔. 알았어. 새끼. (사이) 끊어라. 토요일 여섯 시? 알았다. 교대역 거북이곱창? 현서도 온대? (표정 밝아지는) 알았어. 그때 봐. (전화를 끊는다.)     


대호의 뒤로 한 여인 다가온다. 

긴 머리에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오프숄더의 붉은 블라우스를 

입고 있다. 아름답다. 

대호, 무심코 뒤 돌다 여인과 마주친다. 

놀란다.      


여인   안녕하세요. 

대호   안녕하세요. 

여인   혹시 아버지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으세요?

대호   네?

여인   제가 딸이에요. 

대호   아. 김현 작가요?

여인   (고개 끄덕인다.)

대호   알고 싶은 게 많긴 한데. 

여인   특집 기사 쓰신다고요. 

대호   들으셨어요?

여인   네. 

대호   어디 계셨어요?

여인   네?

대호   방금요. 이야기를 들으신 것 같아서요. 

여인   저쪽에요. 

대호   왜죠? 

여인   아버지랑 사이가 좋지 않아요. 

대호   아. 

여인   알려드릴 게 있어요. 

대호   (여인에게 명함 건넨다.) 한국신문 문화부에 이대호라고합니다. 

여인   (명함을 슬쩍 보고 돌려준다.) 제가 지금 지갑이 없어서요. 명함은 다음에 받을게요. 

대호   (살짝 불쾌해진다.) 아. 네.     


사이     


대호   어디 커피숍 같은 데로 자릴 옮길까요?

여인   잠깐 걸으실래요?

대호   네?

여인   답답해서요. 답답해 죽을 것 같아요. 걸으면서 얘기하죠.

대호   네. 그러죠.      


여인, 앞장서 나간다. 대호 뒤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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