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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레테 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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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수아 Aug 26. 2024

레테(1)

2024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희곡부문 선정작


레테 

- 죽어서 먼 길 떠나는 자들은 레테의 강물을 마셔야 한다.


민수

도은

소운

할미, 노인(1인 2역)

김순경 

이순경

이선숙의원

보좌관

가방잃어버린여자

오토바이를탄남자     


* 장면 전환이 많으므로 전체적으로 빈 무대를 활용한다.      


평범한 중산층 아파트의 내부

식탁에는 2인분의 식사가 차려져 있다. 

도은, 밥을 먹지 않은 채 식탁에 앉아 있다. 

번호 키 누르는 소리가 들리고 민수가 들어온다.     


민수 먼저 먹지 그랬어. 

도은 입맛이 없어서. 

민수 (재킷을 벗으며) 가을이 오긴 왔나 봐. 단풍나무가 빨갛게 변했어. 

도은 (무미건조하게) 응.     


침묵     


민수 (침묵을 깨려는 듯) 오늘 아주 웃긴 일이 있었어. 역무실로 전화가 걸려 왔는데 말이야.      


바람 소리     


민수 한 여자가 가방을 잃어버렸다는 거야. 것도 루이비통 가방을.

도은 왜?

민수 떨어트렸대. (무언가가 생각난 듯 웃는다.) 집에 가서야 알았대. 그게 말이 돼? 핸드폰도 아니고 지갑도 아니고 어떻게 가방을 떨어트리고도 몰라? 

도은 나도 그런 적이 있는걸.

민수 그렇게 비싼 가방을? 

도은 가능해. 

민수 꼭 장난 전화 같았어. 내가 물었어. 어떻게 그런 가방을 잃어버릴 수가 있어요? 그랬더니 하는 말이 (무언가 생각난 듯 웃는다.) 2호선 라인을 하루 종일 맨발로 돌아다니는 한 나이 든 남자가 있거든. 

도은 왜?

민수 모르지. 정신이 이상한지 머리에는 비뚤어지게 가발을 쓰고 손에는 쿠킹호일 구깃구깃 접은 걸 들고 다녀. 그리곤 사람들을 정면으로 노려보는 거야. 

도은 그게 뭐? 

민수 무섭잖아. 

도은 왜?

민수 손에 든 게 얼핏 보면 칼 같거든.

도은 …….

민수 하여튼 그 남자를 보고는 도망을 쳤대. 가방을 떨어트린 줄도 모르고 뛰었다는 거야. 

도은 (무표정하다.) 응. 

민수 (도은을 바라보지 않은 채 말을 이어 간다.) 근데 그 전화를 끊자마자 한 젊은 남자가 루이비통 가방을 들고 역무실로 들어온 거야. 계단에서 주웠다고. 

도은 ….

민수 신기하지 않아? 

도은 뭐가?

민수 타이밍 말야. 

도은 (바람 소리 더욱 세차게 들린다. 창밖을 바라본다.) 꼭 비명 소리 같지 않아?

민수 난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 

도은 차라리 창문을 열까? 저런 애매한 바람 소리가 너무 싫어. 꼭 놀리는 것 같잖아. (창문 쪽으로 걸어간다.)      

민수,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밥을 먹는다. 

도은, 식탁으로 걸어오다가 TV를 켠다.     


사회자(목소리) 오늘은 레테로 떠나는 사람들에 대한 대책 마련으로, 레테행 버스에 높은 세율을 부과하기로 한 정부의 대책에 대해 토론해 보는 시간입니다. 먼저 경복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김양휘 교수님의 한 말씀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양휘(목소리) 사람들이 레테행 버스에 몸을 싣는 것은 사실 그만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살기 팍팍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버스를 타는 것을 틀어막을 것이 아니라, 일단 사람들이 왜 자꾸 떠나는지 그 근본적인 원인을 살펴보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회적 불평등으로 인한 우울감, 자신이 증명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에 대한 자괴감 이런 감정들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사회자(목소리) 은평구 이선숙 의원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선숙(목소리) 만일 교수님 말씀대로 사회적 불평등으로 인한 우울감이나 증명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에 대한 자괴감이 문제라면 사회 지도층들이 떠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것은 다만 그런 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라 현대 사회의 고독과 우울, 교류하지 못하고 인터넷이나 OTT에 빠져 사는 그런 삶의 방식의 변화에서 기인한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진단을 하기 앞서 일단은 사람들의 그런 결정을 내리는 데 제동장치를 거는 것이 정치 사회학적으로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     

민수, 리모컨을 뺏어 뉴스를 끈다.      

민수 그만 봐. 온통 우울한 얘기밖에 없잖아.

도은 오늘 병원에 갔었어. 

민수 (무심하게) 그래? 

도은 정도가 더 심해졌대. 그래서 약을 바꿨어.     


침묵     


민수 가방이 생각보다 작았어. 

도은 …….

민수 루이비통 가방 말야. 어깨에 멜 수 있는 긴 끈이 있는 가방인데, 정말 떨어트려도 잘 모르겠더라고. 

도은 나도 그런 가방 있는데. 

민수 그래? 

도은 당신이 사 준 건데 기억 안 나? 

민수 ….     


두 사람, 어딘가 어긋나고 어색하다. 

민수, 밥 먹는 것을 마무리한다.      


민수 씻을게.      


민수, 방으로 들어간다.     


도은 그 가방… 언제부턴가 안 보이네. 


도은, 그릇을 챙겨 개수대 안으로 넣는다. 

바람 소리 

도은, 창문을 열자 바람 소리가 그친다.      

암전     

무대가 밝아지면 같은 장소

문 두드리는 소리 

도은, 문을 연다.      


이순경 안녕하세요.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도은 네.     


이순경, 김순경 신발을 벗고 들어와 집을 살핀다. 

발코니 창문이 열려 있고 커튼이 세차게 휘날린다.     


이순경 언제부터 저렇게 문이 열려 있었나요? (도은을 본다.)

도은 어제요. 제가 열었어요. 

김순경 방충망까지 다요?

도은 (태연하게) 네.      


이순경, 발코니 아래를 살핀다.     


이순경 방충망까지 다 열어 놓은 집은 잘 없어서….

도은 날씨가 덥고 답답하잖아요. 

이순경 덥다구요? 어제 비바람 장난 아니었는데. 

도은 전 더웠어요. 더운 건 참을 수 있는데. 바람 소리가. 너무 징그럽게 들렸어요. 꼭 여자의 비명 소리처럼. 문틈으로 새어 드는 바람 소리는 정말. 끔찍해요. 보이지 않는 공포가 더 무섭잖아요. 그래서요….


사이     


이순경 부군께서… 실종된 걸로 추정되는 시간 현재 15시간째인데요. 

도은 네. 

김순경 사실 이런 경우… 아무런 징후가 없다가 갑자기 집에서 실종된 경우, 저희는 대부분… 레테로 떠난 것으로 간주합니다. 요즘 레테로 떠나는 사람들이 들불처럼 번져서요.

이순경 혹시 부군께서 떠나시기 전에 어떤 특별한 우울 증세가 있지는 않았나요?

도은 전혀요. 직장에서 있었던 재밌는 얘기를 하며 혼자 웃기도 하고…. 

김순경 음. 전형적인 내현적 우울증이군요. 

도은 그럴 리가요.

이순경 내현적 우울의 경우는. 가족들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도은 우울증 치료는 제가 받고 있었어요. 갖은 약을 다 써 봤지만 효과가 없었죠. 사실 어제는 제가 레테로 떠나려던 날이에요. 

김순경 그런데 왜 안 떠나시고?

도은 너무 깊게 깊게 잤어요. 일어났는데 침대에 남편이 없었어요. 집 어디에도 없었어요. 일찍 출근한 줄만 알았는데 직장에도 안 갔다고 하니 황망했죠. 

이순경 (헛기침을 한다.) 일단 어젯밤에는 비바람에 가로수가 쓰러져서 단지 입구 cctv가 모두 불통이었던 걸 확인했습니다. 

김순경 날씨 한번 요란했죠. 덥기는커녕… (도은의 눈을 한번 쓱 보고)

이순경 저희가 인근 단지 cctv를 더 살펴보겠습니다. 하지만 마음의 준비는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도은 네.      


이순경, 현관으로 가서 신발을 신는다. 

김순경, 흘끔흘끔 도은의 표정을 살핀다. 

이순경과 김순경, 나간다.

복도로 무대 이어진다.     


이순경 좀 이상하지 않아?

김순경 뭐가요?

이순경 남편이 레테로 갔다는데도. 표정 봤어?

김순경 네. 

이순경 이상하리만큼 태연하잖아. 

김순경 그랬나요?

이순경 걱정도 안 되나?

김순경 저 분을 의심하시는 건가요?

이순경 아니. 하지만 두 사람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확실해. 

김순경 요즘 사이좋은 부부도 있나요?

이순경 김순경 부부도 그래?

김순경 저희도 그렇죠 뭐. 권태기가 언제 끝날지. 

이순경 오죽하면 가족이 레테로 떠나겠어. 

김순경 면피는 안 되죠. 무관심은 침묵의 살인이니까. 

이순경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는데 자꾸 어디서 그렇게 떠나는 거야. 

김순경 제 주위에도 없어요. 

이순경 하여튼 사람들이 심지가 곧지 못해. 

김순경 방임하는 가족이 문제죠. 

이순경 그래서 배우자를 잘 만나야 해. 

김순경 ….

이순경 괜찮지?

김순경 네. 괜찮습니다. 

이순경 징후가 있으면 언제든 내게 털어놔. 

김순경 네! 감사합니다. 선배님.     


이순경, 김순경의 어깨를 두드린다.      


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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