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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레테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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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수아 Aug 27. 2024

레테(2)

2024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희곡부문 선정작

무대 밝아지면

버스 정류장

도은과 소운, 나란히 앉아 있다. 

도은, 소운을 쳐다본다. 

소운, 도은을 쳐다본다.      


도은 몇 살인데 혼자 있어?

소운 아홉 살이요. 

도은 엄마는?

소운 저 엄마 없어요. 

도은 (사이) 혼자 버스 탈 수 있어?

소운 (버스카드를 보여준다.) 이것만 있음 문제없어요. 

도은 그래. 

소운 아줌마는 몇 살이에요?

도은 몇 살로 보여?

소운 사십 살?

도은 (실망한다.) 내가 그렇게 늙어 보여?

소운 사십 살이 늙은 거예요?

도은 아니. 그렇게 늙은 건 아니야. 하지만 젊은 것도 아니야. 

소운 늙어 보이지도 않지만 젊어 보이지도 않아요. 

도은 고맙다. 

소운 (도은의 눈치를 살핀다.)

도은 맞아. 나 사십 살이야. 

소운 휴. 다행이다. 

도은 내 눈치 본 거야? 혹시 내가 기분 나쁠까 봐?

소운 네. 

도은 철들었네. 

소운 저희 할머니가요. 제가 철이 빨리 들었대요. 

도은 그런 것 같네.      


사이     


도은 아줌마도. 너만 한 딸이 있었어.

소운 (조심스럽게) 있었어요? 

도은 응. 있었어. 

소운 아… 나도 엄마가 있었는데. 

도은 어린 애가… 벌써 무슨 말인지 아는 거야?

소운 네….

도은 할머니가 키워 주셔?

소운 네. 근데 할머니는 이제 레테로 떠날 거래요. 

도은 어쩌다가?

소운 기억이 없어지는 병에 걸려가지고. 가끔씩 제가 누군지도 몰라요. 

도은 아….

소운 그래서 아예 떠날 거래요. 

도은 그럼 너는?

소운 할머니 말고는 아무도 없어요. (애써 씩씩하게) 보육원에 들어가요. 희망보육원이요. 대기 중인데 곧 순서가 올 거래요.

도은 ….

소운 할머니는 저를 위해서 그러는 거라고 했어요. 

도은 ……. 

소운 어? 버스 왔다. 1번 버스. 아줌마는 몇 번 버스 타요?

도은 나는 2번 버스. 너 먼저 타. 

소운 네. 또 봐요. 

도은 (소운에게 손을 흔든다.) 또 봐….     

버스, 떠나자마자 쿵 소리


도은 일어나서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본다. 

암전     

경찰 사이렌 소리, 앰뷸런스 소리     


할미 도은아. 도은아.      


희미한 불빛 들어오고, 

도은, 일어나 할미 쪽으로 걸어간다.      


도은 할머니….

할미 니 잘못 아냐. 그러니까 마음 단단히 먹어. 

도은 할머니. 하나만 말해 줘. 울 딸 잘 있어?

할미 그런 거 말해 주는 거 아녀. 

도은 잘 있지?

할미 쓸데없는 생각 말구 맴을 굳게 먹어. 

도은 할머니. 울 딸 잘 있지? 

할미 알아 뭐 하게. 

도은 나도 가게. 

할미 그래서 말 안 해 주는 거여. 그냥 잊어. 그게 최선이여.      


이순경, 김순경 걸어온다.      


이순경 (수첩 펼치며) 김소운 양 할머니 되십니까. 

할미 맞아요. 우리 소운이 할미예요. 

김순경 (이순경에게 속삭이듯) 치매가 있으시대요.

이순경 아….

김순경 아는 분?

도은 아뇨. 왜요?

이순경 아까…… 서로 얘기하시길래.

도은 제가요?

이순경 잘못 봤나?

도은 저기요. 아까 실려 간 건… 아이… 맞나요?

이순경 네. 어쩌다 아홉 살 애가 버스를 혼자 타고 있어가지고….

김순경 다들 멀쩡한데 애만….

도은 설마….

할미 우리 도운이 어딨어? 응? 기운 없을까 봐 한약 지어 왔는데. (웃는다.)

김순경 애 이름이 소운이라고 하지 않았어?

이순경 애 이름도 헷갈리나 봐. 

김순경 에휴. 이 상황에 그나마 다행인가. 

이순경 (그제야 도은을 알아보고) 아. 누구신가 했더니 얼마 전 그분이시네. 남편이 실종되었다는. 

도은 네. 

이순경 결국 레테로 간 것으로 결론 났지요?

김순경 (이순경을 툭 친다.)

도은 네. 결론 났어요. 저기요. 아이가 실려 간 병원이 어디죠?

김순경 그건 왜요?

도은 가 보려구요. 

이순경 왜요?

도은 그냥요. 

김순경 그냥요? 소망병원이긴 한데. 

도은 감사해요. 

할미 (도은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우리 소운이. 많이 컸다.      


김순경 이순경, 서로를 쳐다본다.

암전     

무대 밝아지면 병원 중환자실 앞, 도은이 앉아 있다. 

간호사 분주하게 중환자실을 들어갔다 나온다. 

간호사, 앉아 있는 도은을 본다.      


간호사 혹시 김소운 양 보호자 되시나요?

도은 아. 그게요. 

간호사 어머니? 

도은 아… 뇨

간호사 앗. 죄송합니다. 

도은 저기요. 

간호사 네?

도은 엄마는 아닌데요. 보호자로 면회 될까요. 

간호사 그럼 가족이신가요? 이모? 고모?

도은 아뇨. 버스 정류장에서 만났는데….

간호사 네?

도은 아이 보호자가 따로 없더라구요. 

간호사 죄송하지만 가족이 아니시라면 면회는 불가합니다. 

도은 부모님도 없고 할머니는 아파요. 

간호사 그러니까. 가족은 아니고. 평소에 친분이 있던 이웃도 아닌 거죠?

도은 네. 

간호사 안 된다는 거 잘 아실 텐데요.

도은 절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시겠지만… (사이) 저… 혹시 아이 있으세요? 이해하실 것 같아서요. 

간호사 뭘 이해해요?

도은 세상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아이. 

간호사 (한숨 쉰다. 짜증나는 듯 보이지만) 

도은 ….

간호사 (도은의 옆에 앉는다. 위생모자를 벗는다. 고개를 뒤로 젖힌다. 눈물을 빠르게 훔친다.) 3교대라… 너무 피곤해서 그래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는데요. 

도은 네. 

간호사 제가 옆에 있어 줄게요. 소운이 옆에.

도은 …….

간호사 이제 다섯 살인데요. 

도은 네?

간호사 제 딸요. 

도은 이쁘겠다.

간호사 장난꾸러기예요. 얼마 전에 다쳤어요. 킥보드 타다가. 이마가 찢어져서 세 바늘 꿰맸어요. 

도은 저런

간호사 소운이요… 머리를 많이 다쳤어요. 아마 오늘을 못 넘길 거예요. 

도은 ….

간호사 저렇게 예쁜 아이에게 왜 아무도 안 찾아오나 궁금했어요. 원래는 퇴근해야 하는데 제가 계속 남아 있을게요. 소운이 잘 떠날 때까지. 

도은 고마워요.      


간호사, 일어나려는 순간, 

갑자기 밀려드는 인파(기자들, 경호원들, 이선숙 의원)

선숙, 들어오며 플래시 세례를 받는다.      


기자1 이선숙 의원님. 현재 9살 어린이가 혼자 버스를 타고 가다 사고를 당해 중태에 빠졌는데요. 만 12세 이하의 어린이는 혼자 버스를 타지 않는 규정을 시행할 계획은 없으신지요?

선숙 하필 우리 구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해 매우 유감으로 생각하고 있고요, 해당 아이는 미혼모의 아이로 태어나 약 2년 뒤에 어머니가 사고로 돌아가셔서 할머니가 혼자 양육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이가 혼자 버스를 타고 가다 사고가 난 실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미혼모에 대한 지원이 빈약했던 점, 아이가 할머니와 둘이 남겨졌을 때 사회복지 차원에서 접근하지 못했던 사회 전반의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해 볼 수가 있겠습니다. 

기자2 그렇다면 은평구의 돌봄시스템의 문제라기보다 국가 전반의 문제에 더 근본적인 문제가 기반한다는 말씀이신가요?

선숙 네. 맞습니다. 이 모든 것의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현재 더 시급한 것은 저 작은 아이가 어떻게든 의식을 회복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반드시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저도 어린 손녀가 있기에 아이를 보는 입장이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선숙, 눈물을 흘리고 한바탕 플래시 세례. 

잠시 시끌벅적한 뒤, 기자들 사라지고. 선숙과 보좌관만 남는다.      

선숙 (건조하게) 다음 스케줄은?

보좌관 종로구 김태호 의원의 지지연설이 있습니다. 약 30분 뒤입니다. 

선숙 애를 볼 시간은 도저히 안 날 것 같아. 애 죽으면 바로 전화해! 사진! 

보좌관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간호사, 자리에서 일어선다.      


보좌관 (간호사 옷깃을 잡는다.) 저기….

간호사 (불쾌한) 네?

보좌관 아이의 사진을 한 장만 찍어 주실 수 있나요?

간호사 미쳤어요?

보좌관 아니 사진 한 장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간호사 생사를 오간다구요. 

보좌관 그러니까 죽기 전에 기념사진 한 장 남기자는 것 아닙니까. 

간호사 기념사진? 뭘 기념하는데? 

보좌관 (간호사의 길을 막으며) 이러시면 곤란하지….

도은 (보좌관 앞을 가로막으며) 뭐가 곤란한데? 응? 

보좌관 이 여편네들이 미쳤나?      


중환자실에서 응급을 알리는 벨이 울린다. 

간호사, 급히 들어간다. 

보좌관 손을 크게 들어 도은을 때리려 하고

도은 cctv 쪽을 바라본다. 

보좌관 손을 내린다.      


보좌관 미친 아줌마네. (헛기침을 하고 매무새를 가다듬는다.)

도은 그래. 나 무서울 거 없는 미친년이야. 미친 맛 좀 볼래? 또 볼 땐 부디 cctv가 없어야 할 텐데. 그지?     


보좌관, 도은을 무섭게 노려보며 나간다. 

도은, 중환자실 앞으로 걸어간다. 두 손 모은다. 

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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