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모어 번스타인의 말 ]을 읽고

피아니스트의 아흔 해 인생 인터뷰

by 작은손


어른이란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앤드루 하비는 시모어 번스타인의 집에서 일주일을 보내며 대화를 나누었고 그것이 책이 되어 우리에게 왔다. 하비는 진정한 어른을 만났고 그것은 삶에서 받은 가장 행복한 선물임을 안다고 했다. 그럼 나에게 선물로 와 준 어른은 누구였을까?


내가 대학교 4학년 때, 친척집에서 학교를 다녔다. 왜냐하면 집이 구미 쪽으로 이사를 가서 대구까지 다니기가 먼 곳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지금은 자동차로 충분히 출퇴근을 할 만한데 80년대에는 버스를 몇 번씩 갈아타야 했기에 다니기에는 무리라고 생각되었다. 조카 둘의 공부에 도움을 주겠다는 명분이 있었지만 사실 제대로 가르친 적이 없었다. 이종사촌 오빠네 집이라 언니에게는 시댁 식구 한 사람을 맡아야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오빠네서 한 해를 살았지만 눈치 보지 않고 살았다. 언니에 대한 집안 어른들의 말씀에 따르면 '아이 알고, 어른 아는 참한 사람'이다. 엄마는 늘 "그만한 사람은 보기 어렵다"로 결론지으셨다. 내가 본 언니의 모습은 이랬다. 친절은 기본적으로 몸에 배어 있었고, 얼굴에는 편안한 미소가 있었다. 음식 솜씨가 좋아서 매일 갖가지 반찬이 밥상을 푸짐하게 했다. 참 맛있게 배불리 먹었었다. 집안은 어디나 깨끗했고, 화초들은 싱싱하게 잘 자랐다. 하지만 큰 사고가 나고 말았다. 그때 오빠와 언니의 모습에 나는 감동했고 지금도 죄송한 마음이다.


가을이 깊어 겨울이 시작될 때 처음으로 연탄을 피운 다음 날이었다. 새벽에 6학년인 조카가 연탄가스에 질식하여 의식이 없는 상태로 병원으로 실려 간 것이다. 매일 조카와 둘이 함께 자던 방이었지만 나는 가스에 중독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연탄을 피운 날, 언니가 나에게 침대가 있는 다른 방에서 자기를 권유했기 때문이다. 조카는 삼일 만에 의식을 회복했지만 염려했던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조카는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건강을 회복하였다. 그런데 나는 죄책감을 느꼈다. 나만 괜찮은 것이 미안했다. 하지만 언니는 가슴을 쓸어내리셨단다. 혹 내가 가스에 중독되었다면 우리 부모님을 어떻게 뵐 수 있었겠느냐며 "천만 다행히"이라고 말씀하셨다. 맞는 말씀이다. 지금도 안부 전화를 드리고, 때 되면 인사차 선물을 보낸다. 진정으로 감사하며 존경하는 언니, 오빠다. 언니는 어쩌면 나의 롤 모델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본질은 우리가 가진 재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번스타인이 말한다. 그는 어떤 재능이든 간에 우리가 가진 재능이 우리 존재의 핵심이라고 확신한단다. 나도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축구선수 손흥민을 말한다면 축구 실력을 통해 그 자신의 본질을 드러내고 있다. 그 자리에 있기까지의 피나는 노력이 그의 존재를 드러내는 핵심으로 비치고 있다. 또한 피겨스케이트 선수인 김연아도 마찬가지다. 연습할 수 있는 스케이트장이 없어서 초등학생인데도 밤 11시가 넘어서야 사람들이 없는 스케이트장에서 연습을 할 수 있었단다. 의지와 노력이 세월과 합쳐져서 그의 재능이 되었고 김연아를 떠올리면 빙판에서 우아하고 멋지게 스케이트를 타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 모습은 그녀의 본질로 느껴진다.


능력이 인격으로 나타났고 존재의 본질로 느껴졌던 분이 있다. 교사 시절에 함께 근무했던 교감선생님이시다. 업무 능력이 뛰어났기에 많은 선생님들에게 도움을 주셨고, 어떤 일이라도 상담을 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교장선생님이 되어서도 궂은일 도맡아 했기에 처음 보는 사람은 교장이라는 생각을 못했다는 분도 있었다. 학교의 교재원과 넓은 화단에 풀이 자랄 겨를을 주지 않아 말갛다는 느낌을 주었다. 부지런함은 그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었고, 인격은 그분이 가진 능력으로부터 나올 수 있는 것이라 여겨진다. 사람이 가진 재능에서 그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본질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배우 에단 호크도 대단하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이다. 시모어 번스타인이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단번에 알아본 것이리라. 한 세기를 살아온 시모어 번스타인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메시지를 에단 호크와 앤드루 하비는 그들의 천재적인 재능으로 작품을 만들어 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왜냐하면 이 책을 읽고 10년 동안 쓰던 독후감을 지난 1년 동안 쓰지 않았는데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의 독후감을 쓰게 되었다. 이 보다 좋은 책이 있으랴. 한 사람의 마음을 바꾸고 행동하게 하는 책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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