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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 Feb 01. 2024

2=오리

며칠 전, 달님이와 같이 가위로 네모를 오리면서 놀던 별님이는 우리가 어릴 적 들었던 ‘네모의 꿈’이 생각나서 그 노래를 달님이에게 틀어 주었다. 그때 달님이는 반짝거리는 눈으로 노래를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노래 가사를 들으며 ‘정말로 세상에는 네모가 참 많구나’하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을까. 네모, 세모, 동그라미, 하트, 별… 요즘 달님이는 도형에 관심이 많다.


그다음 날 아침에도 ‘네모의 꿈’을 들으며 잠에서 깬 달님이는 평소대로 잠옷도 갈아입기 전에 식탁 앞에 앉아 그림을 그리기 위해 종이를 꺼냈다. 아빠도 꼭 불러서 같이 그림을 그리라고 하기 때문에 나는 그때도 달님이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 아빠, 이거 뭔지 알아?


그림을 그리려고 꺼낸 종이에는 8이 두 개 쓰여 있었다.


— 아, 8이 두 개 있네.


— 이거 8 아니고 무한대야.


그 전날 엄마가 무한대를 쓰는 법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 아, 그럼 이렇게 눕혀야지. 이건 8이고 옆으로 눕혀야 무한대야.


— 나도 알아.


— 그런데 이게 왜 무한대냐면 이 선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어서야.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계속계속 이어지니까.


— 알아. 어제 엄마가 알려줬어.


요즘 ‘알아’를 너무 많이 하는 달님이는 곧바로 놀라운 이야기를 한다.


— 그런데 아빠, 0도 무한대야. 이렇게 이어지니까.


— 아, 그렇네. 0도 무한하고 같네. 아무것도 없는 거는 무한이랑 같은 건가 봐.


여기까지는 내 수준으로 이해 가능한 영역이었지만 달님이는 곧바로 다른 차원으로 건너간다.


— 그런데 세모도 무한대야. 계속 이렇게 이렇게 이어지잖아. 네모도 무한대야 연필도 무한대야. 지우개도, 빵도, 모든 것은 무한대야.


수학은 나에게 언제나 가장 어려운 과목이었다. 시험 때마다 나를 가장 긴장하게 만들었고 실제 결과로도 나를 가장 좌절시킨 과목이었다. 그래서 나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문과를 선택했고 수학은 나와는 상관없는 것으로 여긴 채 10대, 20대를 보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수학과는 관계하지 않는 완전한 인문학적 인간으로 살아오던 어느 날, 내가 수학을 싫어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 있다.


수학시험, 수학문제집과는 불구대천지원수처럼 지냈음에도 나는 한동안 잘 풀리지 않는 수학 도형문제 하나를 쪽지에 적어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하루 종일 그것들을 생각한 적이 있다. 이를 마치 탐정이 사건을 해결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며 게임처럼 즐겼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이 게임은 나의 수학성적에 어떠한 긍정적 영향도 주지 못했고 모든 사람들, 그리고 나마저도 이를 그냥 괴상한 행동이라 여겼던 것 같다. 그래서 어느 순간 나는 그것을 관뒀다.


그런데 서른이 다 되어가던 어느 날 나는 우연히 인류의 첫 수학책 유클리드의 [원론]을 보게 되었고, 점과 선의 정의로부터 시작되는 그 책의 첫 페이지를 보며 대수학은 기하학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수학은 도형으로부터, 그림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이 내가 처음부터 수학을 좋아하는 아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 것이다.


그리고 달님이를 통해 나는 다시 한번 수학이, 배움이 어떤 것인지 느끼고 있다.


수학문제를 풀고 익히느라 수학의 진짜 모습을 보지 못했던 나, 그리고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온 이들에게 수학은 하나의 일정한 사고방향이고 능력으로 생각되었다. 얼마 전까지 문과와 이과를 구분한 것도 이러한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문과적 성향과 이과적 성향은 구분되지 않는다. 심지어 예술가적인 성향도 이것들과 따로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이를 구분하는 순간 그 능력은 심각하게 손상된다. 훌륭한 음악가는 훌륭한 수학자이자 훌륭한 시인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별님이와 나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지금의 달님이에게 통념상 제시되는 것들의 학습을 강조하지 않는다. 한글, 수학, 영어 등, 특히 학업의 측면에서 중요하다 생각되는 그 어떤 것도 억지로 배울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더 쉽게 말해서 우리는 공부를 시키지 않는다.


이것은 가르치지 않는 것, 배우지 않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우리는 매 순간 달님이에게 모든 것을 알려주고 있고 달님이는 우리가 알려주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고 믿는다. 거의 모든 친구들이 이미 숫자를 다 떼고 한글까지 시작하고 있지만, 매일매일 그림에 열중하고 오늘이 되어서야 4를 겨우 비슷하게 보고 그려낸 달님이가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달님이에게는 생각을 가두는 틀이 없기 때문이다. 달님이에게는 0과 무한대가 수학의 개념만이 아닌 언어이자 그림이고 세상 그 자체일 것이다.        


수학뿐만 아니라 다른 학습의 영역, 그리고 그것을 넘어 모든 삶의 과정에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결국 ‘생각’이다. 우리는 아이가 자유롭게 생각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도록 돕기 위해서는 마땅히 아이를 자유롭게 두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달님이를 공부 잘하는 아이로 키울 수 있을까? 그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자유롭게 생각하지만 성적은 나쁠 수 있다. 마치 내가 그랬듯이.


하지만 생각이 어디로든 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괜찮다. 그래서 우리는 1부터 10까지 끙끙대며 써 보는 달님이의 끈기 있는 모습도 좋아하지만, 10까지 다 쓰지 못하고 중간에 옆길로 새서 2에서 오리를 찾아내 그림으로 바꾸고, 오리 이야기를 지어 내고, 오리 고기를 먹고 싶다 말하는 달님이의 모습도 좋아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처럼, 달님이도 자유로운 자신을 숫자 쓰기를 싫어하는 아이가 아닌 그저 멋진 아이로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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