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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 Jan 25. 2024

말을 잘 듣자

그 누구도 들어주지 않을 나의 부탁에 어떠한 조건도 없이 응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그것을 포기하지 않을 존재가 있을까?


얼마 전 초등학생 자녀를 둔 어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아이와 함께 생활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갈등과 그로 인한 스트레스 등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그중 한 분께서 나에게 물으셨다.


— 선생님의 아이는 말을 잘 듣나요?


그 질문을 받고 나는 순간 멈칫했다. 그것은 달님이가 말을 잘 듣는지에 대한 판단이 어렵기 때문이 아니었다. 내 머릿속에 바로 떠오른 답이 아이들이 말을 잘 듣지 않는 것에 대해 다루고 있던 그 상황과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대답이 될 것이기 때문에 그랬다. 나는 원래의 답을 다듬고 다듬느라 몇 초의 시간을 쓰고 사회적으로 용인될 만한 수준과 내용으로 대답을 만들어 냈다.


— 저희 딸 달님이는 정말 말을 잘 듣지요.


오늘 내가 쓰고자 하는 것은 그 순간 내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이다.


달님이는 정말 말을 잘 듣는다. 달님이를 잘 아는 사람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고, 심지어 처음 보는 사람들도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달님이가 얼마나 말을 잘 듣는지는 아마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 내가 푼수처럼 말한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말을 잘 듣는다’가 어떤 것인지보다는 어떻게 그렇게 말을 잘 듣는지가 더 궁금할 것이기 때문에 우선 그것부터 말해보려 한다.


달님이가 말을 잘 듣는 이유는 아주 간단한데, 그것은 우리 집의 가훈이 ‘말을 잘 듣자’이기 때문이다.  


나와 별님이는 결혼을 하며 이 가훈을 같이 만들었다. 가훈으로 쓸 법하지 않은 이 일상적인 표현 속에는 다른 사람들이 기대할 만한 어떤 함의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말을 잘 듣자’이다. 그렇지만 흔하디 흔한 이 말은 우리의 아이보다 우선해서 우리 자신이 평생 지켜야 할 의무로서 정한 것이기 때문에 전혀 가벼운 것이 아니다.      


말을 잘 듣는다는 말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앞서 이야기하고 있던 ‘타인의 말을 충실하게 받아들여 행동하는 것’을 의미하고 또 하나는 원래 그 말이 의미하는 바인 ‘귀를 쫑긋 세우고 상대방의 말을 있는 그대로, 빠짐없이, 성의 있게 듣는 것’이다.


우리는 달님이의 말을 정말 잘 듣는다. 어떻게 말해도 다 듣는다. 나는 귀도 엄청 밝아서 달님이가 아무도 못 알아듣도록 작게 중얼거리는 말도 다 듣는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과 함께 대화하고 있을 때에도 내 한쪽 귀는 달님이의 소리를 듣고 있다. 달님이가 태어난 이후로 달님이의 소리, 말은 단 하나도 놓친 적이 없다. 그리고 달님이가 해달라는 것, 하지 말라는 것은 지나가는 말이라고 해도 절대 잊지 않으려 한다.


달님이가 우리의 말을 잘 듣는다면 그건 나와 별님이가 그 누구보다도 달님이의 말을 잘 듣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든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의 말을 잘 듣게 되어 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사실은, 달님이가 우리의 말을 듣는 것, 말을 들어주는 것에 비하면 우리의 노력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달님이 뿐만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이미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부모의 말을 잘 듣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부모가 많다.


나는 아침마다 어린이집에 가는 달님이를 보며 아빠인 내가 가질 수 없을 달님이의 큰 마음을 발견한다. 달님이는 어린이집에 즐겁게 웃으며 갈 때도 있지만 가기 싫다고 칭얼대며 갈 때도 있다. 그래도 달님이는 어린이집에 간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가야 하는 합리적인 이유와 달님이의 마음을 엄마 아빠가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며 결국 달님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들어주지 않는데, 그래도, 달님이는 어린이집에 간다. 매번 내가 원하는 것을 정말로 들어준다.   


하루는 우리 셋이 각자의 소원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나와 별님이는 우리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함께하는 것을 소원이라고 말했고 달님이는 이렇게 말했다.   


— 나는 어린이집에 안 가고 매일매일 엄마랑 하루 종일 놀았으면 좋겠어.


나는 달님이가 소중한 것이니 버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 종이 조각들을 언제 몰래 버릴까 고민하고 친구들이 모두 가지고 있어 사달라고 한 피규어가 같은 종류 다른 캐릭터들보다 비정상적으로 비싸다는 이유로 다른 캐릭터를 대신 사자고 설득한다.


우리는, 부모는 말을 잘 안 듣는다. 별의별 이유를 들어서 잘 안 들어준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항상 부모의 말을 잘 듣고 있다. 아주아주 잘 들어준다. 듣지 않아도 될 말조차도 다 듣고 있다. 너무 잘 들어서 그것이 자신의 생각, 삶 그 자체가 될 만큼 말을 잘 듣는다. 그리고 부모가 아무리 자신의 말을 안 들어도 계속해서 말해 준다. 그리고 기다린다. 자신의 말을 언젠가는 들어줄 것이라는 기대를 놓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런 진심이 담긴 아이의 말들을 부모는 아무렇지 않게 흘려듣는다. 부모는 아이가 아무것도 모르는 0의 상태에 있을 때 아이와 처음 만났기 때문에 언제나 자신들이 아이를 잘 알고, 아이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확신하며 그래서 아이의 말에 우위를 두지 않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에게 하는 말, 내는 소리는 그것 그 자체로 진실이고 진리이다. 우리는 그것을 판단해서는 안되고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무조건 최선을 다 해 잘 들어야만 한다. 부모를 향한 아이의 말에는 꾸며냄이 없고 무의미한 것이 없기 때문에 가치 없고 거짓이라 생각되는 것들마저도 귀 기울이고 깊이 새겨들어야 한다. 작은 것 큰 것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그것에 응해야 한다.


그런데 내가 부족하고 불완전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온 달님이의 말을 그 누구의 어떤 말보다 잘 듣는 진짜 이유는 그 말이 진리이기 때문에 가치 있어서도, 달님이를 ‘말 잘 듣는 아이’로 만들기 위함도 아니다.


그것은 달님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삶을 함께 해달라는 우리의 바람을 무조건적으로 들어주었고 평생 그것을 저버리지 않을 고마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무엇인지도 모르고 얼마나 무거울지 재보지도 않고, 삶이라는 우리의 요청에 응해 주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을 우리에게 고스란히 안겨주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더 말을 잘 듣는 사람이 되기를, 나에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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