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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 Jan 10. 2024

시작의 시작

이 글을 시작하기까지 5년,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을 망설였다. 아니 기다렸다. 너무나 기다려 왔다.


5년 전, 달님이가 태어났다. 내가 지금부터 쓰고자 하는 이야기는 달님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달님이가 없었을 때에도 있었던 달님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달님이의 엄마인 별님이와 아빠인 나, 햇님이의 이야기이다.


망설이듯 기다린 이유는 지나온 것들을 정돈하고 정제해야 했기 때문이 아니다. 작가 황석영은 글을 어떻게 잘 쓸 수 있나라는 질문에 ‘사는 것’이라고, 살다 보면 쓰게 된다고 답했다. 그렇게, 살다 보니 비로소 쓰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내가 기다린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달님이의 허락이다, 달님이의 이야기를 혼자만의 비밀일기에 적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어떻게든 달님이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 생각했고, 지금 5살의 달님이는 다행히도 제법 대화가 되는 아이로 자랐으니 이제 준비는 충분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비로소 쓰게 된 그날 아침, 식탁에서 같이 밥을 먹다 달님이에게 물어보았다.


- 달님아, 아빠가 달님이랑 있었던 일들을 글로 써서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도 될까?


물어본 순간, 안된다고 했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 미리 준비하지 않았음을 뒤늦게 깨닫고 나는 긴장했다. 달님이는 잠시 생각에 빠져 있다가 곤란한 표정으로 이렇게 답했다.


- 음… 그런데 말이야… 우리가 소중한 보석을 어디에다 숨겼는지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면 어떡하지?


달님이는 아직 애기 중의 애기였다. 그렇지만 이런 애기가 자신의 재산을 소중히 여길 줄도 안다니 참으로 기특하다.


- 에이, 그건 당연히 아빠가 이야기 안 하지. 그런 것만 이야기 안 하면 괜찮은 거지?


- 응, 그런데… 내 소중한… 공주랑… 나무랑… 이런 거…


- 그래 걱정 마, 달님이가 비밀이라고 하는 건 절대 말 안 할게.    


이렇게 분쟁의 여지를 전혀 남기지 않은 달님이와의 구두 합의를 마치고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 한 가지 고민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달님이와의 수많은 일들, 그리고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달님이에 대한 생각들 중 어떤 것으로부터 이 이야기를 시작할지 정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멋들어진 첫 구절, 첫 장면에 대한 나의 동경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고민이 될 때에는 별님이에게 물어보면 된다. 별님이는 항상 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침밥을 먹다 말고 열심히 출근 준비 중인 별님이에게 가서 얼른 이 고민을 털어놓았다. 별님이는 이번에도 어렵지 않은 듯 즉시 답을 주었다.


- 오늘, 지금으로부터 써요.  


이렇게 나는 지금, 지금을 시작으로 달님이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다. 달님이가 살게 될 앞으로의 시간이 기대되는 만큼이나 내가 쓰게 될 달님이가 지나온 시간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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