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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 Feb 13. 2024

부끄럼쟁이 친구들의 비밀

여러 아이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자리에서 가만히 앉아 다른 아이들을 지켜보는 아이는 어떤 아이일까? 동물을 그리게 되었을 때 검은 개를 그리는 아이는 어떤 아이일까?  


내가 지금의 일을 시작하기 전, 달님이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 나에게 아이라는 존재가 가진 비밀을 알게 해 주신 분이 계시다.


그분은 별님이의 대학시절 은사님이자, 우리 부부에게는 만남을 기대하게 하는 친구이고, 얼마 전에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비즈로 반지 만들기를 통해 달님이의 친구까지 되어 주신 아이 같은 선생님이시다.    

7년쯤 전, 우리는 선생님과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선생님의 어린 시절 두 가지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첫 번째는 유치원 때의 기억으로, 아이들 모두가 동그랗게 모여 춤을 추었던 장면에 대한 것이다. 음악에 맞춰 친구들이 하나둘씩 나와 춤을 추기 시작했고, 선생님은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며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마음의 준비가 다 되어 일어나 춤을 추려는 순간 음악이 멈추고 춤추는 시간이 끝나버렸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두 번째는 학교 미술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모두가 강아지를 그리고 있던 미술시간에 선생님께서는 그날 등굣길에 우연히 만난 검은색 개를 그리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본 같은 반 아이들이 놀라면서 자신을 이상하게 생각한 것 같다고 느끼는 기억이었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이 두 이야기가 나에게는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아주 큰 의미로 남아있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들은 아이들에 대한 아주 중요한 비밀을 담고 있고, 그것은 동시에 모든 인간에 대한 비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을 ‘부끄럼쟁이 친구들의 비밀’이라 부른다.


이것은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의 제목 『부끄럼쟁이 친구들』과 그 내용에서 따온 것인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부끄러움을 잘 탄다는 행동만으로는 그들의 다양한 면면을 다 이해할 수 없으며, 말하여지고 보여지지 않은 그들의 세계는 우리가 가늠할 수 없는 아주 흥미로운 것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 바로 그 비밀이 의미하는 바이다.        


달님이가 세 살이 되었을 때 백화점 문화센터의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 2세 3세 아이들을 그저 놀게 하기 위한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보통 수업이 시작되기 전부터 아이들은 여기저기 자유롭게 뛰어다니기 바빴다. 그런 아이들을 위해 선생님은 비눗방울을 불어서 더욱 즐겁게 뛰어놀 수 있게 해 주었고, 이렇게 한껏 예열된 아이들은 신나는 음악과 함께 45분을 꽉 채워서 즐기고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달님이는 여느 아이들과는 조금 달리 교실에 입장하기 전부터 엄마, 아빠에게 꼭 붙어서 절대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선생님과의 손바닥을 마주치는 인사도 하지 않았고, 간단한 장애물 넘기 놀이도 우리의 손을 붙잡지 않고서는 하지 않았다. 조금 떨어뜨려보려고 하면 기겁을 하며 다시 엄마의 품에 안겼다.  


조금 염려가 되기도 했지만 우리는 ‘부끄럼쟁이 친구들의 비밀’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꾹 참고 가만히 달님이를 지켜봤다. 그러면 아이들이 정리를 위한 음악과 함께 놀이를 마치고 각자 엄마의 손을 잡고 나가는 때가 되어서야 달님이는 뒤늦게 흥이 나기 시작했다. 텅 비어 가는 교실에서 45분 동안 모아 온 에너지를 마음껏 발산하면서 방방 뛰는 것을 보며 우리는 어이없는 웃음이 났었다. 그리고 45분간의 시무룩하고 어두운 표정을 생각하면 다시는 안 간다고 할 것 같은데 다른 아이들이 하는 동안 뚫어지게 보기만 했던 율동을 집에 와서 열정적으로 따라 하고 다음에 또 가고 싶다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진심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랬던 달님이는 이제 처음 본 우리의 지인들 앞에서 율동을 보여주기도 하고, 이번 설날에는 큰 할아버지 댁에서 어린이집에서 배운 발레 동작 세 가지를 멋지게 선보이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항상 나에게 안겨서 말도 잘 안 하고 있던 달님이가 씩씩하게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보면 나와 별님이는 아직도 그 모습이 신기할 따름이다. 이런 모습들은 부끄럼쟁이 친구인 달님이가 감추고 있던 비밀 중의 비밀인, 달님이가 부끄럼쟁이가 아닐 수도 있음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부끄럼쟁이 친구들만 비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까불이 친구들의 비밀이 있고, 책을 좋아하는 친구들의 비밀도 있다. 울보 친구들도, 애어른 친구들도, 투덜이 친구들도 비밀이 있다. 이 모든 친구들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것은 우리가 전혀 생각지 못한 차원의 것일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절대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달님이의 행동을 나의 마음대로 판단하는 것, 특히 부정적으로 이름 붙이는 것이다.


— 하기 싫어서 그러지?


— 부끄러워서 그러지?


— 아빠랑 놀기 싫어?


— 재미없어?


— 넌 왜 항상 그렇게 네 마음대로만 해?


— 양보하기 싫어서 그래?     


— 얘 이거 지겨워서 그래.


— 이거 얘한테 너무 어려워.


— 얘 이거 못 해.


— 너 이거 안 좋아하잖아.  


— 왜 생각을 안 해?


— 이렇게 삐뚤어지게 그리면 안 돼.


상상만 해도 얼굴이 찌푸려지는 이런 말들은, 어떤 신비롭고 멋진 생각과 세계를 가지고 있을지 모르는 아이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설령 아이가 정말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하더라도 이 말을 통해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부정적인 말로 아이의 마음을 판단하는 것은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과는 전혀 반대되는 것이다.


지금도 매 순간 느끼는 것은 내가 여전히 달님이에 대해서 너무나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궁금하고,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그런데 달님이도 역시 아직 자기 자신이 어떤 아이인지 모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달님이가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 우리의 한마디 한마디가 중요한 것이다. 긍정적이고 좋은 말들이 실제로 그런 아이를 만들 것이고 그것은 어른들의 경우에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우리가 기다리지 못하고 판단만 하려 한다면, 모두가 무관심하게 지나친 검은 개를 소중히 눈과 머리에 담아둔 아이의 그림을 보고,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그 아이의 마음은 어둡다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가만히 기다려 준다면, 아이들이 감춰 온 비밀이 서서히 드러나게 될 것이고, 그것이 아이가 만들어 낸 유일한 세계를 있는 그대로 잘 보전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우리의 생각보다 더 오래 걸린다 하더라도, 스스로 준비를 마쳤을 때 멋진 모습으로 세상에 선보이게 될 것이다.


나는 외벽으로 창이 나있지 않은 요새와 같은 집을 꿈꾼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무인, 겨울엔 잎이 모두 떨어지고 하얀 가지만 눈처럼 남는 자작나무를 심고 싶다. 누군가는 이렇게 그린 집을 보고 가족에 대한 나의 마음이 너무나 차갑고 삭막한 것은 아닌지 염려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단아하고 요새 같은 나의 집은 커다란 중정을 품고 있어 집 안 곳곳 해가 안 드는 곳이 없고 우리 가족은 그곳에 앉아 하늘을 구경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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