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야, 착한 여자 말고 괜찮은 여자 만나

모순 - 양귀자

by 어제만난사람


32486402650.20230927071431.jpg




이 책의 주인공이 25살이던 그 시절, 나는 안진진보다 몇 살이 어렸다.

서태지 풍 노래들, 조폭이 등장하지 않으면 이야깃거리가 없는 한국 영화들, 땅에 끌릴 정도로 통이 넓고 긴 바지, 마녀들이나 신을 것 같은 길쭉한 구두, 검은색 립스틱, 세기말적인 몽환과 퇴폐가 긴장과 무기력함을 동시에 느끼게 하던 97년.


사랑은 영혼이 나누어진 두 사람이 만나는 일일 거라고 온갖 낭만을 꿈꿔놓고는, 정작 나의 첫 연애 상대는 사랑의 감정은 별로 느껴지지 않는 동기 녀석이었다. 마음이 끌린다는 것이 어떤 건지 알 것도 같았지만, 정작 그게 내 일이 되면 이 감정이 설렘인지 긴장인지 헷갈렸고, 멋진 선배를 곁눈질로 훔쳐보곤 하는 게 사랑인 건지 그냥 스치는 호기심인 건지 구별하기 어려웠다.


20대 여자애가 안진진처럼 스스로를 '잘나지도 못나지도 않은' 정도의 외모를 가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면, 그 애는 꽤 예쁜 애란 말이다. 21살의 나는 '세상에 나보다 못생긴 애는 몇 안될 거야'라고 진심으로 믿었고, 내 모든 우울도 그러한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못생긴 사람은 바람 같은 걸 피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양다리 걸친 남자친구 이야기나 그 무렵 유행했던 불륜 드라마 애인,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같은 영화는 내가 평생 관심도 가지지 않을 것들이었다.

나도 못생겼으므로 바람을 피우지 않을 거고, 못생긴 내 남자친구도 그럴 줄 알았다.

내가 남자친구를 소개할 때면 내 친구들의 눈동자는 최소 몇 초 정도는 흔들리곤 했다.

나중에 나에게 와서 걱정되는 표정으로 왜 저렇게 생긴 애를 만나냐고 물어보는 아이도 있었다.

"얼굴이 못생긴 건 괜찮다고 쳐, 그래도 저렇게 마른 멸치 같고, 오타쿠 같은 애랑... 어디 아픈 건 아니지?... 그래도 착하긴 하겠다야."

처음에는 그런 말들을 들을 때,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친구들이 너무하단 생각도 들었다. 나는 외모로 그 녀석과 사귀기로 결심한 게 아닌데. 하지만 친구들도 나도 못생김 = 자신감 없음 = 착함으로 다들 오해했다는 점은 같았다.


스스로도 인정하는 못생긴 얼굴로도 양다리는 가능했다. 내가 친구랑 만나고 있던 그 장소에, 종일 집에서 쉴 거라던 녀석이 내가 아는 여자랑 팔짱 끼고 들어온 것이다. 낌새가 몇 달간 있었지만, 그놈은 거짓말에 거짓말을 계속하다 나중엔 내가 의심이 너무 많다고 내 탓을 했었다. 들키기 전까지.


의심했던 기간 동안 히스테릭한 인간 취급을 받았던 탓인지, 오히려 확인하니 후련해 미련도 없었다. 그날 이후 더 이상 그 녀석은 내 인생에 없는 놈이었다.

그런데 그놈은 내가 받을 때까지 수십 통씩 전화를 하고, 집 앞에 찾아오고, 만나 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고 했다. 다투다가 화가 난 녀석이 나를 밀어서 길에 넘어뜨린 적도 있었다. 싸움도 못할 것처럼 생겨가지곤, 스토킹이라는 말조차 없던 시절에 그 녀석은 스토커들이 하는 모든 짓을 나한테 다 했던 거다. 못생겼다고 바람을 안 피우는 것도 아니었고, 못생긴 것과 착한 것도 완전히 별개였다. 당연한 얘기를 왜 하냐고 하겠지만, 그런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던 멍청한 내게는 그 당연함이 체험되고서야 비로소 이해되는 진실이었다.


이현우가 부른 헤어진 다음날이 진진과 이모에게는 아련하고 쓸쓸한 노래였겠지만, 그 시절 그 노래는 스토커의 미친 변명처럼 들렸다. 나는 도대체 왜 그런 놈을 '착하고 착한 우리 안진진'처럼 바라보았던 걸까? 사람들은 이럴 때 '뭣에 씌었다' 거나 '눈에 지짐이 붙었다'라고들 한다. 그러나 그런 씜도 결국은 내 안에 원인이 있어야만 일어나는 것이다. 김장우는 도대체 왜, 양다리 걸치고 끊임없이 저울질하는 안진진의 진짜 모습을 몰랐을까? 왜 그녀의 '착하고 착한' 모습만을 보았을까?


모든 인간이 불완전한 면이 있고, 그것이 개인의 비극을 예정하곤 한다는 점에서 김장우가 안진진을 '온전히' 볼 수 없는 것은, 그가 세속적인 성취를 이룰 수 없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 세상의 더러움을 알면서도 거기에 도저히 섞이고 싶지 않은 그의 마음이, 인간 안진진이 아니라 착하고 착한 안진진을 만든 것이다. 그런 프레임으로 그 사람을 본 것이다.


연애가 주는 상처야말로 인간에 대해 가장 많은 것을 알려주고, 내가 모르던 나에 대해서도 깊이 알려준다. 하지만 그걸 스스로가 진정 깨닫기 전까지는 매번 같은 패턴으로 실패하고, 실패하고, 실패한다.

양다리 따위는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영혼의 반쪽을 만나는 세상을 꿈꿨던 20대의 내가 만난 남자마다 그 모양 그 꼴이었던 것처럼, 김장우가 세상을 다르게 보지 않는다면 그 또한 매번 '착하고 착한' 그녀에게 속고 말 거다. 자기의 이상 속에 갇힌 사람은 그런 틀에 꼭 맞는 문제 있는 사람만 귀신같이 찾아내기 때문이다. 장우 씨, 부디 스스로의 이상을 깨고, 있는 그대로의 세계와 그 속의 나를 바라보길. 그래서 다음번에 만나는 사랑은 착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 그냥 그 사람이어서 괜찮은 그런 사람과 행복하길 바라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영화를 읽는 것만 같았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