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 있으니 아이를 낳고 싶어진다

아이 없는 5년차 부부가 느낀 우리나라와 캐나다의 육아 환경 차이

by 조각

해가 넘어가서 결혼한지 어느덧 5년차가 되었다. 우리 부부는 딱히 딩크인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출산율이 심각한 이유를 여러가지 들었을 때 생각나는 그런 이유들로 아이를 갖지 않고 지내왔다. 결혼과 2세가 당연한 것이 아닌, 선택지 중 하나가 된 분위기 속에서 아이 없이 다정하고 편안하게 신혼 시절을 누리고 싶었다. 그 시기의 우리는 좋았지만 일을 하는 우리는 늘 지쳤었다. 늦은 퇴근에 함께 나누는 야식과 맥주의 맛, 주중의 모자른 잠을 몰아서 자던 나른한 주말 침실같은 것들이 특히나 좋았던 것을 보면 함께하는 편안한 주말만을 기다리며 하루 하루를 보냈던 것 같다. 사회생활을 한지 5년이 안되었으니 친구들도 모두 나와 같았고,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았다. 우리의 생활에 결혼이라던가 아이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딱 한명 일찍 아이를 낳은 친구는 원래부터 아기를 너무 좋아하는 친구였는데 아이 낳고 50일만에 복직을 하고, 일을 하며 아기를 돌보고 주말엔 결혼 제도의 각종 의무를 다하는 모습에 나는 자신이 없어졌다. 아이와 함께 행복한 친구를 보는게 좋으면서도 나는 그 애처럼 강하지 않으니까, 그 생활을 해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몇년전부터 노키즈존, 맘충 같은 혐오의 표현이 평범해졌고, 자신의 아이가 너무 소중한 나머지 어린이집과 유치원 교사들을 힘겹게 하는 민원에 지쳐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만으로는 더 이상 직업을 지속할 수 없을 만큼 마음이 병들어 가는 친구들의 과정을 지켜봤다. 아이를 낳고 눈치를 보며 지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이가 있는 부부들이 말하는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우주적 기쁨과 큰 고통'을 주는 삶으로 나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리곤 코로나가 전 세계를 혼란에 빠뜨렸다. 어떤 병인지 알 수 없어 확진자의 이동 경로를 공개하고 집밖에 나오지 못하고, 가게들이 문을 닫는 상황에서 아이를 가질 순 없었다. 시간이 지나 코로나에 대해 적응해 갈 때에도 위급한 상황의 확진 임산부가 병원에 가지 못해 구급차 안에서 몇시간을 보냈다는 뉴스들은 여전히 나를 무섭게 했다. 세계가 코로나에 적응할 때 쯤의 나는 회사에서 인정받고 있었다. 나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고 승진도, 유학도 멀지 않게 느껴졌다. 조금만 더 가면 있을 일적인 성취를 뒤로 하고 휴직을 할 수 없었다. 그러면 승진도 유학도 멀어질 테니까. 성취를 위해서 많은 일을 하고 있지만 아이를 돌보기 위해서는 지금과는 다를테니까.


그런 시간들을 지나 유학을 나왔다. 정말이지 치열한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어린 아이를 키우며 지내는 동료들의 치열함과는 비교할 수 없이 '지낼만 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9개월을 지내면서 왜 내가 아이를 낳는 선택을 계속 미루었는지, 왜 우리나라가 이렇게 심각한 저출산의 상황에 마주했는지 여실히 느끼고 있다. 아이 생각이 딱히 없던 내가 아이 있는 삶을 자꾸만 그려보게 되니까.


먼저, 퇴근 시간이 4시에서 4시 30분이라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다. 그래서 마주치는 아이들이 너무도 행복해 보인다. 천사같은 아이들의 웃는 얼굴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도 온화해진다. 4시 30분 즈음의 그 밝은 오후에 부모들은 어린 아이와 강아지를 데리고 공원에 나온다. 그리고 뛰논다. 아이들은 강아지들에게 공을 던져주고 함께 뛰고 모래밭을 뒹군다. 저녁 이후 어두워진 밤 캠퍼스를 산책하면 여전히 아이들은 뛰놀고 있다.

학교엔 PD Day(Professional Development Day)라는 월 1~2회 학교 안가는 날이 있다. 선생님들이 학생들 없이 역량을 개발하는 날 같은 개념 같은 것이다. (일과 삶의 균형이 완벽한 나라 답게 선생님들도 학생들이 하교할 때 퇴근 한다. 행정업무는 이 휴일에 한다.) 그러면 주말까지 껴서 3일을 부모와 함께 캠핑도 가고 여행도 가고 체조, 수영 등 각종 캠프에도 참가한다. 모든 학교가 이렇게 쉬기 때문에 그 때 아이를 돌보는게 당연한 문화이고, 연차를 쓰는데 눈치를 볼 이유가 없다. 당연한 연차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이 계획을 미뤘던 이유 중 하나는 엄마 아빠가 데릴러 올 때까지 어린이집에서 오래 오래 기다리고 있을 아이가 안타까울것 같아서였다는게 떠올랐다. 어떤 날엔 이르고, 어떤날엔 8시를 훌쩍 넘긴 밤. 초등학교에 가면 어린이집에서보다 하교 시간이 빨라 12시부터 피아노, 태권도, 영어 등 학원에서 학원으로 데려다주는 학원 서너개에 보낸다고 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 것 같기도 하고. 부모가 아이와 충분한 시간을 보는데 그다지 무리하지 않아도 되는, 일과 삶이 균형잡힌 생활이라는 걸 직접 보니 이것만큼 필요한 것이 없다.

다음으로, 아이들을 무척이나 방목해서 강하게 키운다. 어린이집 앞의 나무에 올라가고 있어도 선생님은 그대로 둔다. 공원의 나무를 타도 부모들도 그대로 둔다. 진흙 바닥을 굴러도 그대로 둔다. 이제 갓 돌을 넘긴 아이들도 스키장서 보드를 태운다. 3등신의 쪼그만 아이들이 보드를 타다니, 너무 위험할 것 같은데 그들에겐 일상이다. 11월부터 5월까지 내내 비가 오는데, 주륵주륵 내리는 비를 맞으며 어린이 축구교실에서 뛴다. 비를 맞고 눈을 맞아도 그대로 두고, 학교에 갔다 돌아오는 애들은 저학년인데도 자전거를 타고 집에 온다. 전국 대학 배구 결승전에 갔을 땐 6개월도 안된 갓난쟁이들을 헤드셋을 씌워 데리고 온 부모들이 많았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저학년 아이들을 데리고 스키캠프에 갔는데 내내 눈비가 와서 캠프 지도교사에게 우리애들이 다 젖었다고 하자, '우리 모두 젖었어 원래 그런거야' 라고 하던 대답에 깜짝 놀랐다는 동료의 얘기가 인상 깊었다. 그리고 스키캠프 중인 아이들 옆에 서성이며 지켜 보던 부모는 자신뿐이고 다들 아이를 캠프에 맡긴 후 스키를 타러 떠났다는 말도. 아빠 혼자 모든 스키 짐을 챙기느라 우왕좌왕 하고 있을 때 다른 어린 아이들이 자신의 짐을 스스로 들고 척척 가고 있었다는 말도.

아이들을 방목해서 키운다는건, 이 아이들이 몸도 마음도 튼튼하고 무던하게 자라기에 크면서 스트레스에 강하고 어려움들을 잘 이겨낼 수 있다는 좋은점도 있지만, 서로 너그럽고 우호적이기 때문에 눈치 주고 눈치 보는 문화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엄마가 되가지고 애를 다치게 하냐는, 애 불쌍하게 일이나 나가냐는 질책이 없다. 내 아이가 위험한데 왜 제대로 돌보지 않았냐는 항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간의 혐오가 없다. 부모가 된 사람들은 아이를 제대로 케어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우리나라에서보다 적고, 다른사람에게 사과하며 눈치 볼 일도 적다. 아이가 피해를 본 것 같아서 항의를 하고 싶은 마음이 적다. 부대끼며 불편하며 다치며 크는 게 이들에겐 당연하기 때문이다. 부모의 마음이 좀 더 편안하다는 얘기다.


세번째로, 부모가 어린 아이를 양육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정도가 작다. 일단 일 하는 시간이 훨씬 짧으니 여유 시간이 우리나라 부모보다 많아서 그런것도 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계속 할 수 있다는 점이 크다. 밴쿠버의 사람들의 취미는 '운동'이다. 과장해서 말하면 그들은 아웃 도어 활동만 하는 것 같다. 사계절 내내 런닝화에 운동복을 입고 비오는 반년 동안에는 방수 패딩을 입고 비를 맞으며 밖을 뛴다. 항상 하이킹을 한다. 2시간 이내의 캠핑장이 무척 많은데 주말엔 남는 자리가 없다. 캠핑가서는 저녁까지 텐트를 비운 채 하이킹, 카약타기, 수영, 자전거를 탄다. 학교에선 대학생들이 철인3종 경기를 하고 있고, 수영장엔 여름겨울 할것 없이 북적인다. 모두가 스키를 탄다.

그런데 이 모든 체육 생활을 아이가 아주 어릴때부터 함께 한다. 100일이 안된 갓난쟁이를 유아차에 태워 달리고 있는 엄마들을 매일 본다. 처음 봤을 땐 운동을 참 좋아하나보다 했는데 대부분의 엄마들이 그렇다. 산에 오르면 1살짜리 2살짜리 애기를 엄마 아빠가 한명씩 업고 오르는 모습을 자주 본다. 밴쿠버 산에서도 자주 보지만, 로키 여행을 갔을 때 정말 많이 봤다. 아이가 어리다고 여행을 포기하지 않고 아이를 업고 한다. 북적이는 수영장엔 늘 어린 아이들이 많다. 아이들이 얕은 풀에서 놀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수심 4M 깊이에서 엄마 아빠랑 잠수도 하고 평영도 한다. 캠핑을 가면 구불구불한 캠핑장의 트레일을 온가족이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도로에는 자전거 4대를 차 위나 뒤에 매달고 다니는 차가 무척 많다. 위에도 말했듯 스키 시즌엔 돌 지난 애들부터 스키와 보드를 탄다. 3살 4살짜리들은 어른들보다 더 잘 탄다.

부모와 유아기 때부터 아웃도어 활동을 하고 자란 아이들은 체육파 청소년이 되고 체육파 성인이 되고 체육파 부모가 된다. 그리고 그 좋아하는 운동을 아이에게 가르쳐주며 함께 한다. 너무나 건강하지 않은가.

아이를 낳으면 100일 정도는 사람들도 만나지 않고 고립되어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 아빠의 육아휴직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오롯이 혼자 '독박 육아'를 하는 엄마들의 이야기를 안다. 집 안에서 지쳐가는 엄마들의 생활을 안다.

이곳의 엄마들은 일단 체력이 나와는 비교도 안되게 좋다. 최소 5배는 될 것이다. 그러니 한국인의 30대 엄마들보다 덜 지칠 것이다. 드라마 '미생'에서도 그랬듯이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드는 법이다. 그러면 육아가 덜 건강한 나보다는 덜 힘들지 않을까? 좀 더 할만 하지 않을까 한다. 그러면 육아로 인한 큰 고통은 조금 덜 큰 고통일테고, 육아로 인한 우주적인 기쁨은 그대로일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마지막으로, 남에게 관심이 없다. 서로의 생활에 관심이 없으니 서로 비교를 하지 않는다. 일단 다들 거의 운동복을 입고 살고, 서로의 직업이 뭔지 어디에 사는지 연봉은 어떤지 예쁜지 관리를 잘 하는지 무얼 가졌는지 관심이 없다. 결혼을 했는지 연인이 있는지 부모님은 무얼 하시는지 관심이 없다. 서로 비교하지 않는다는게 이렇게 자유로운 것인줄 미처 몰랐다. 그러니 남들이 보기에 번듯한 어떤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들을 할 수가 있다. 아이를 키우는데도 이런 문화가 긍정적인 작용을 할 것이라 생각한다. 회사에서 부모들이 영어유치원이라던가 브랜드 의류, 아이폰, 해외 가족여행 같은 것들에대해 고민하는 것을 자주 들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없는 내가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일을, 옆에 비껴서서 느낀 바를 쓰는 것이 쉽지 않았다. 행여나 열심히 육아하고 있는 부모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는 않을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마음대로 판단한 것은 아닐지 염려가 되어 글을 쓰는데 오래 걸렸다. 하지만 이것은 아이를 낳는 결정을 이런 저런 이유로 미루어 온 나의 이야기이고, 지레 짐작하고 겁 먹은 지금의 부모들의 이야기와 결이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무리이지 않은 밴쿠버의 삶을 보고나니 내가 아이를 원한다는 것을 알겠다. 단지, 다시 학창 시절처럼 전력을 다해 애쓰고 버티는 삶으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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