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인생 첫 캠핑을 캐나다에서 시작한 후로 몇번의 캠핑을 했다. 2박 3일짜리 캠핑도 두번 하고, 친구 부부랑 동반 캠핑도 했다. 같이 맛있는 것도 먹고, 호수에서 수영도 하고, 불멍하며 이야기도 많이 하고. 캠핑장에서의 시간은 빠르고도 느리게 간다. 자연 속에서 먹고, 와인도 마시고 커피도 마시고, 새소리를 듣고, 트레일을 걷고, 숲냄새를 느낀다. 한 밤 중 호숫가에 나가 별이 쏟아지는 하늘도 본다. 기숙사 근처에 새로운 기숙사를 많이 짓고 있어서 매일 매일 공사소음이 있는데 캠핑장은 무척 고요한 점도 마음에 든다. 캐나다의 캠핑 문화는 한국의 캠핑 문화처럼 한 자리에서 맛있는걸 계속 먹고 술을 마시는 느낌이라기보다는, 텐트를 비우고 하이킹하고 수영하고 카누 타면서 자연을 내내 누리다가 돌아와 저녁을 먹고 조용히 불멍하다가 10시 전에 잠드는 문화이다. 아이들이 뛰놀거나 우는 소리가 종종 들려오지만 탁 트인 자연에서 자연스럽게 멀어져 정겹게만 들린다. 밤이 오면 가로등 하나 없는 캠핑장은 한치 앞도 안보이게 깜깜하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자리를 정리하고 우리도 잘 준비를 한다. 낮 동안 하루 종일 움직이고 해를 받아서인지 이상하리만치 단잠에 빠져든다. 자리가 바뀌면 잠을 잘 못자는 나라서 캠핑 다니면 잠을 못잘줄 알았는데 어느때보다 잘잔다. 이런 캐나다식 캠핑 문화에 푹 빠져 여름을 보냈다. 그리고 지난 9월 마지막주에 2박 3일짜리 캠핑을 가서 추위를 애써 피해보고는 올 해 캠핑은 이제 못 가겠다 싶었다.
그렇게 10월을 보내고 11월이 오고 우기가 시작되었고, 내 시험기간도 끝났다. 그런데 갑자기 이번주에 날씨가 맑다고 했다. 밴쿠버는 매일매일 비가 온댔는데 날씨가 맑다고 하자 캠핑이 너무 가고싶었다. 그냥 한번 캠핑장 예약 사이트를 들어가봤는데 너무 인기가 많아 평일에도 자리를 잡을 수 없는 바닷가 앞 캠핑장의 뷰 좋은 자리가 비어있었다. 마음이 살짝 동했다. 그렇지만 9월에도 그렇게 추웠는데 이틀 전에 함박눈이 펑펑 내린 밴쿠버의 숲 속에서 캠핑은 고생이기만 할 것 같아서 마음을 접었다. 그런데 갑자기 친구네 부부가 급 캠핑가려고 그 자리를 잡았다면서 놀러오라고 했다. 너희 추위 타는거 보니까 자고 가는 건 무리이고 와서 불멍하고 밥먹고 가라고 했다. 우리 부부는 겨울 캠핑이 어떤지 맛볼 수 있겠다며 신나게 캠핑장으로 갔다.
히트텍에 기모후드에 겉옷을 껴입고, 두툼한 바지를 입고 도착한 포토 코브 캠핑장(porteau cove) . 밴쿠버 시내에서 1시간만 가면 바다와 산이 바로 앞에 펼쳐지는 캠핑 사이트라니. 해가 내려와 바다는 윤슬에 반짝이고, 구름 한점없이 맑은 하늘에 코 끝이 시리는 완벽한 풍경이었다. 캠핑 의자를 바다를 바라보게 나란히 놓고, 럼을 넣은 달달한 칵테일을 마시며 앉아 있으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파도 소리, 가끔 날아가는 오리의 모습. 겨울이라 사람들이 별로 없어 무척 조용했다. 친구는 4시 반부터 해가 떨어지니 불을 오래 피워야한다며 장작을 잔뜩 팼다. 넉넉히 쌓여 있는 장작더미에 마음이 따뜻했다. 이 정도면 나도 겨울 캠핑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4시가 되자마자 해가 산 뒤로 넘어갔고, 그 즉시 말도 안되게 추워졌다. 해가 넘어갔다고 이렇게 큰 차이가 나다니 깜짝 놀라 서둘러 모닥불을 피웠다. 여름때보다 더 가까이 불 앞에 모여 앉아 호일에 고구마를 싸서 같이 넣어 놓고 털모자를 쓰고 불을 쬐고 있으니 이게 겨울 캠핑의 낭만이구나 싶었다. 말할 때마다 입에서 하얀 김이 났지만 불 덕에 춥지 않았고, 군고구마도 기대되고. 겨울이라 뜨끈한 국물이 먹고 싶어서 한인 국밥집에서 순대국밥을 사와서 끓이고 있으니 너무 맛있는 냄새가 났다. 한국인은 한국인인가보다. 칼칼하고 뜨거운 국물에 마음이 동했다. 얼른 먹고 싶었는데 날이 추워서 그런지 데워지지를 않아 1시간 반 정도 불 위에 올려놨다. 그러는 동안 여명으로 물들던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고 별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여름이면 밤 10시에나 볼 수 있을 법한 하늘이었는데 저녁 6시도 되기 전에 캠핑장에서 제일 낭만적이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났다. 각자 나름의 불멍을 하며 타닥 타닥 장작 타는 소리를 들으며 이런 저런 얘기를 맥락 없이 나누었다. 여름에 비해 확실히 조용해서 우리도 목소리를 더 낮췄고, 종종 고개를 들어 별을 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저녁이 다 된것 같아서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김이 모락모락 피는 국밥과 순대볶음에 맥주를 한모금 마시니, 이것이 겨울 캠핑이구나 싶었다. 따뜻하고 매콤한 국물과, 손이 시렵도록 찬 맥주 캔을 들어 올리는 그 맛. 너무 너무 좋아서 겨울 캠핑을 다녀야겠단 얘기를 하며 5분 정도 지났는데 진짜 너무 너무 너무 너무 추웠다. 모닥불에 바짝 붙어 있다가 떨어졌다고 이렇게나 춥다니. 다리를 달달 떨며, 굳어져가는 손을 움직여 저녁을 먹었다. 허둥 지둥 저녁을 먹고 얼른 다시 모닥불 옆에 가 앉았다. 군고구마도 꺼내서 호일을 까 보고, 모락 모락 김이 나는 고구마를 잘라 나누어 먹고 마시멜로우도 구워서 먹고. 마시멜로우는 역시 여름보다는 겨울에 어울렸다. 모닥불의 열기로 구우면 겉 면이 바삭해지는데, 손으로 잡고 위로 쏙 빼면 구워진 부분만 껍질처럼 분리된다. 그걸 한 입 베어물면 바삭 하고 달콤하다. 남은 안쪽은 다시 모닥불에 굽는다. 그리고 또 먹는다. 겉바속촉 그 자체의 맛이다.
그렇게 즐겁게 겨울 캠핑을 즐기다가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났는데 또 너무 너무 너무 너무 추웠다. 핫팩도 몸에 붙여놓고 물주머니에 뜨거운물을 채워 안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일찍부터 깜깜해지는 캠핑장에서 오래 오래 불멍하면서 달달한 것을 먹는 겨울 캠핑의 무드. 그런데 불가를 조금만 떠나도 이가 딱딱 부딪히는 추위. 친구들에게 여기서 어떻게 자냐고 하니 전기장판을 켜고도 춥기 때문에 얼굴을 다 덮는 마스크를 가져왔다고 했다. 그리고 침낭을 머리끝까지 쓰고 잔다고. 가스 난로같은것은 위험하니까 안쓴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네들은 바지도 두겹씩 입고 제일 두꺼운 오리털 패딩을 입고 잔다고 했다. 덕분에 무척 즐거웠다고 얘기하고 캠핑장을 떠났다. 친구들의 배웅을 받는 동안에도 몸이 덜덜 떨려 서둘러 차에 탔다.
밤 9시에 집으로 돌아가면서 너무 너무 낭만적이고 좋았다고, 활기 찬 여름과는 다른 따뜻하고 조용하고 차분해지는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는 얘기를 나누면서 우리는 밖에서 잠을 자는 캠핑은 안되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또 오고싶으면 잠은 자지 말고 놀다가 가자 하며. 다음번에는 훨씬 더 많이 입고 오자고.
밴쿠버의 겨울은 무척 길다. 지금 벌써 영하에, 4시반에 일몰이다. 이런 겨울을 보내다보면 비가 안오는 날이면 캠핑장에 오고 싶을 것 같다. 단순하고 느린 캠핑장에서의 시간이 마음에 꼭 맞다.불안하고 지치는 삶에, 따뜻한것, 맛있는것, 아름다운것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소중하다. 언젠가는 이런 추위에도 불구하고 겨울에도 캠핑 다니는 사람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만약 한국에서도 이런 캠퍼의 생활을 계속하게 된다면 가족들과 가까운 친구들을 초대해 이 낭만을 선물하고 싶다. 오늘 친구네 부부가 우리에게 선물해 주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