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촌이라는게 이런거였구나

해외생활 하며 도움을 주고받는 일

by 조각

유치원에 다닐 때 옆집에 살던 친구가 있다. 나랑 동갑인 친구라 서로의 집을 오가며 놀았고 엄마끼리도 무척 친했다. 수십년이 흐른 지금 엄마도 나도 1~2년에 한번 정도 안부 물으며 지낸다. 내가 12살 때 늦둥이 막내가 태어났는데 우리 막내는 빌라 아줌마들과 함께 키웠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좁은 거실에 몇몇 아줌마들이 있었고 애기 보행기를 밀어주거나 그네를 밀어주거나 했던 장면이 기억난다. 한번은 윗집 아줌마가 옥상에 빨래 널러 갔는데 얘가 있었다며 이제 막 기어다니던 막내를 안아가지고 왔다. 어느 틈에 문으로 나가 계단을 타고 위로 위로 기어갔나보다. 그때는 몇층 몇호에 누가 사는지를 다 알던 시절이었다. 집에 왔는데 아무도 없으면 옆집에 가서 그집 애랑 간식을 먹으며 놀기도 하고, 우리집에서 그렇게 지내기도 하던.


그 후로 두번의 자취방에서도, 신혼집에서도 주변 사람들과 교류하며 지냈던 적은 없다. 학교를 다니고 회사를 다니니까 아침에 일찍 나가고 저녁 늦게 들어오고 도움을 주고 받을 일도 없으니 이웃이 딱히 필요하지 않았다. 가끔 부모님이 과일이나 음식을 많이 보내주시면 둘이서 먹기 힘드니 회사까지 가지고 가서 친한 동료들에게 주었다. 그러다 친한 동료들이 걸어서 15분 거리로 이사오자 퇴근 후나 주말에 서로의 식재료를 나눠 먹었다. 토마토나 엄마의 반찬, 고구마나 옥수수 같은 것들. 15분은 나름 멀어서 옆집에 살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외국에서 타운하우스에 산다. 단독주택 형식의 2층집이 옆으로 길게 늘어서 있고 한국인 가정이 열 몇개 정도 있다. 이사오고 나서 한국인 가정 단톡방이 있다고 초대되었는데 처음엔 낯설었다. 사람들은 외국 살이하며 생기는 크고 작은 일들을 공유하고 도움을 주고 받았다. 친구네 가족이 놀러오는데 의자가 부족하니 2시간만 의자를 빌리거나 한번만 필요한 공구를 빌리거나 수도나 전기가 끊긴다는 소식을 알려주거나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함께 차 마시자고 하거나. 열 몇 가정이 있으니 어떤 어려움이든 다 해결이 되었다. 나도 간밤에 거센 비바람이 지나간 후 현관 앞에 낙엽이 무릎까지 쌓여 있어 마당을 쓰는 빗자루를 빌리기도 했고, 어느날엔 쥐가 들어와서 급하게 쥐덫을 받기도 했다. 코스트코에 다녀오면 대용량인 물건들을 반씩 나누기도 하고, 한국에서 들어온 제주무 한박스를 한명이 사서 3개씩 나누기도 했다.

특히 친구네 부부랑은 종종 서로의 집에서 밥을 먹는다. 외식 물가가 비싸서 2명이 간단한 끼니를 해도 4~5만원은 기본으로 나와서 거의 집 밥을 해먹는데 매일 먹는 끼니를 누군가 해결해주면 그렇게나 기쁘다. 김치 같은건 만들어본 적도 없는 우리는 외국에서 우리가 진정 한국인이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으며 깍두기나 동치미 같은 것들을 만들어 나눠 먹는다. 침대에 누워 손가락으로 클릭 몇번만 하면 저녁이 해결되던 생활을 하다가 모든 것을 스스로 해야 하는 상황이 오니 힘에 부치고, 그것을 서로 서로 채운다.


편안하고 고맙다. 몇 호로 오세요 라고 하면 해결되는 많은 일들이 가뿐하다.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이웃이라는 게 이런거구나 싶으니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외출 중에 갑자기 비가 오면 옥상의 빨래를 서로에게 부탁하던 엄마들, 아이들의 식사를 부탁하던 엄마들, 음식을 나눠먹던 엄마들, 그리고 늘 집 앞에서 함께 놀았던 신난 우리들. 사람들과 관계 맺으며 지내는게 불편하고 기분이 상하는 일들도 종종 있겠지만, 혼자서 어쩔 수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시간들은 지금보다는 적었을 것 같다.


예전에 집 근처 병원에서 수액을 맞다가 저혈압성 실신이 왔었는데 걸어서 10분 거리인데도 너무 어지러워 집에 갈 수가 없었다. 가족과 친구들은 다른 지방에 살아서 별 수 없이 병원에 몇 시간을 앉아있었다. 나중에 회사에서 동기들에게 그런 얘기를 하자 자신들을 부르라고 했다.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한창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 나를 도우려면 연차를 써야하는 동기들 뿐이었다. 동기들에게 무척 고마웠지만 사실 또 그런일이 있다 해도 선뜻 부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회사에서도 멀고, 그들의 집이랑은 더 머니까 나를 돕기 위해 무리를 해야한다는걸 아니까.


서로를 돕는데 그다지 무리하지 않아도 되는 이웃이라는 관계가 마음에 여유를 준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아파트에 산다. 옆집 윗집이 누구인지도 잘 모르는채로, 피해를 주지 않으려 발소리를 줄이고 가능한 한 빨리 세탁을 마치느라 퇴근하자마자 부랴부랴 빨래부터 하는. 이웃사촌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는데 다시금 단절된 집으로 돌아간다는 게 조금쯤 아쉬운 것도 같다.


조심스럽게 서로의 안부를 생각하는 관계를 함께 만들어 갈 수 있을까? 마음이 맞는 사람과 이웃사촌이 되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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