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 천국 아웃도어의 나라 캐나다에서 인생 첫 캠핑을 시작한 캠린이. 작년 8,9월 다섯 번 캠핑한 귀여운 경험을 가지고 약 한 달간의 미서부 로드트립 중 절반 가까이를 차박 캠핑으로 보낸 캠린이. 미국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여름 내내 열흘에 한 번씩 캠핑하러 나간 캠퍼. 15개월 전 처음 캠핑을 하러 가는 길,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사람이 "Oh, You are camper!(너 캠퍼구나)"라고 했을 때 속으로 "와 와 나 캠퍼다!!"하고 들떴던 나는 북미에서 지내는 15개월 동안 진정한 캠퍼가 되었다. 진정한 캠퍼란 캠핑을 위해 특별히 신경쓰거나 불편하거나 바빠지지 않고 일상적인 마음가짐을 유지하는 사람이라는, 내 맘대로 의미부여한 말이다.
올해 여름부터 학기 시작 전까지 캠핑을 갈 때 우리 부부는 미리 부산스레 준비하는게 없었다. 레인쿠버라는 별명을 지닌 밴쿠버의 비 없이 청량한여름엔 캠핑장 자리가 남아있질 않아 4달 전 예약 오픈 때 열흘 간격으로 2박 3일, 3박 4일짜리 캠핑들을 잡아 놓았어서 달력에 캠핑 표시가 있으면 인식만 하고 뒹굴거릴 뿐이었다. 캠핑장에 가는 날 아침에 눈을 뜨고 준비를 시작하면 차에 짐을 다 실을 때까지 2시간 정도 걸린다. 아이스박스에 냉장고에 있는 음료와 채소와 냉동해둔 카레나 고기, 매일 쓰는 가위와 집게와 수저, 모카포트를 넣는다. 장비 수납존에 있는 캠핑 장비들을 그대로 옮긴다. 조금 큰 가방에 항상 똑같이 입는 캠핑용 바지와 맨투맨, 속옷과 수건, 세면도구를 넣는다. 항상 같아서 금세 짐싸기가 끝난다.
보통 1시간 반 정도 거리에 있는 골든 이어스, 컬터스 레이크, 앨리스 레이크 등 밴쿠버 주립공원 캠핑장에 다녔기에 11시 반쯤 출발하면 체크인 시간인 1시에 도착한다. 캠핑장에 가까워질 때 쯤 어디에나 있는 캐나다 국민 브랜드 팀홀튼에 들러서 랩 2개와 칠리 스프, 아이스캡(믹스커피를 얼린 후 슬러시로 만든 맛)을 드라이브스루로 주문하고 픽업해서 캠핑장에 간다. 캠핑장에 도착해서 텐트 치고, 매트와 침낭 펼치고 테이블과 의자를 셋팅하는데 30분 정도가 걸린다. 셋팅을 마치고 나면 팀홀튼에서 사 온 랩으로 간단한 점심을 먹는다. 9시 넘어 일어나서 캠핑장에서 한 숨 돌리고 앉아 하늘을 바라볼 때까지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렇기에 캠핑에 대한 부담이 점점 옅어지고 우리는 휴식한다는 마음으로 캠핑하러나설 수 있다. 이렇게 편안한 캠핑을 즐기게 된 이유는, 캐나다의 캠핑 스타일이 한국의 캠퍼들이 말하는 '미니멀 캠핑'이기 때문일지도.
'미니멀 캠핑'은 장비를 최소화해서 다니는 캠핑인데, 캠핑 천국 캐나다의 캠핑이 미니멀 스타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올해 6월 밴쿠버로 여행 온 가족들과 캠핑을 했을 때였다. 1년 간 솔로 캠퍼 유투버들의 영상을 꼬박 챙겨보며 캠퍼가 되기를 꿈꾸는 동생이 엄두도 못낸 채 캐나다에서 캠핑 다니는 나를 심각하게 부러워하길래 밴쿠버에서 일주일 머무는 동안 1박 2일짜리 캠핑을 준비했다.
12평 집에서 사는 우리 부부의 캠핑 장비는 4단짜리 이케아 렉에 수납되어 있다. 투명 플라스틱 박스 3개에 자잘한 장비, 주방용품이 들어가고 맨 아래칸에 콜맨의 텐트, 겨울용 침낭2개(여름에도 그냥 쓴다), 자충매트 2개, 의자 2개가 눕혀져 있다. 맨 꼭대기에 무쇠 그릴이 놓여 있다. 가로 길이가 그리 길지 않은 렉이라 좁은 집의 거실 한 켠에 두고 좋아하는 그림이 그려진 패브릭 포스터를 걸어두어 아늑한 집안 분위기를 그다지 해치지 않는다.
가족들이 올 때는 캐나다에서 떠나며 장비를 처분하는 사람에게 6인용 짜리 텐트 1개, 캠핑 의자 2개, 침낭 2개를 가져와 함께 캠핑을 갔다. 남편과 함께 텐트를 치고, 미국 로드트립 때 쓰던 차박용 자충 매트를 깔고, 침낭을 펼친 동생은 당황스럽다는듯 이게 끝이냐고 했다. 할 일이 너무 일찍 끝나 서성이는 동생에게 나는 캠핑 사이트마다 놓여 있는 나무 테이블 위의 나뭇잎들을 쓸어 정리하고 테이블보를 깔고 캠핑 의자를 펼치다 말고 "끝이지 뭐 더 할 일 없는데?"라고 대답했다. 동생 말로는, 캠퍼들은 편안한 수면을 위해 뭘 많이 깔고 설치한다고 했다. 그리고 접이식 선반 같은걸 설치하고 이런 저런 물건을 꺼내놓는다고 했다. 한국에선 캠핑을 시도해볼 상상조차 한 적이 없는 집돌이 집순이였던 우리는 본 적이 없으니 그런 물건을 가진 적이 없다. 빼곡한 침엽수로 둘러 쌓인 숲 속에서 테이블에 앉아 함께 점심으로 사온 팀홀튼 샌드위치와 도넛, 커피를 먹었다. 새소리를 들으며 평온을 누리다가 함께 캠핑장을 걸었다.
동생이 신기해 한 것은 캠핑장에 사람이 없다는 점과, 꾸며진 정도가 다 비슷 비슷하게 예쁘지 않다는 점이었다. 우리도 작년 여름 첫 캠핑을 와서 제일 놀란 점인데, 100개도 넘는 사이트가 있는 캠핑장인데 무척이나 고요하다는 점이었다. 사이트 마다 텐트가 쳐져 있고 캠핑카도 세워져 있는데 사람이 없다. 식탁 위에 늘어져 있는 물건도 없다.(캠핑장에 곰이 살기 때문에 자리를 비울 때 음식물, 식기를 테이블에 놓고 다니면 안된다.) 알고 보니 6개월 내내 비가 오는 밴쿠버의 사람들은 비가 오지 않는 6개월 간 최선을 다해 바깥 활동을 하는데 특히 여름에는 일주일씩 캠핑장을 예약하고, 아침 먹은 후 바로 몇시간씩 하이킹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호수에서 수영을 하며 지냈다. 5시 쯤 되면 하나 둘씩 사람들이 돌아와 씻고 저녁 준비를 했다. 주로 고기와 소세지를 구워 먹는 것 같았는데, 식사를 마치고 나면 자리를 정리한 후 9시 정도부터 텐트에 들어갔다. 10시 정도부터는 꽤 조용하고, 캠핑장 전체가 어둠 속에서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해가 뜨면 일찍부터 사람들이 일어나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하고 또 다시 모두 사라진다. 말하자면, 캐나다에서의 캠핑은 한국의 캠핑 문화처럼 맛있는 음식을 계속 만들어 먹고, 마시고, 오래 대화하는 문화가 아니다. 주로 아이들이 어린 가족들이 자연 속에서 잠을 자고, 일찌감찌 일어나 또 자연 속으로 뛰어들어 놀고 저녁에 돌아와 간단한 저녁을 먹고 일찍 자고, 또 다음날 자연 속으로 뛰어드는 문화이다. 그러니 예쁘고 감성적인 장비로 사이트를 꾸밀 욕구가 덜할 수밖에 없다. 잠시 머무르는 곳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캐나다의 공산품이 무척 비싸다는 점(욕실화 15000원), 캠핑이 너무도 일상이라 가볍고 쓰기 편하고 관리가 쉬운 물건들을 좋아한다는 점이 다 비슷하게 예쁘지 않은 실용적인 장비들을 쓰게 하는 이유같다. 우리는 이런 문화 속에서 첫 캠핑을 시작했기에 딱히 어떤 차이를 느껴본 적이 없는데, 1박 2일의 캠핑 동안 우리가 쓰는 최소한의 장비인 버너 하나에 코펠 냄비 하나로 떡볶이를 만들어 먹고, 매트 하나 침낭 하나로 푹 자고 일어난 동생은 이 정도면 힘들것도 없이 자신도 캠핑을 시작할 수 있겠다고 했다. 낮에 캠핑장을 돌아다니고 호수에서 노느라 햇빛을 많이 받아서인지 바닥에 매트 하나 깔렸는데도 아주 달게 잤다고 했다. 1년 간 캠핑 유투버를 부러워만 하던 동생이 캠퍼가 되기로 한 것이 무척 뿌듯했다. 동생은 한국으로 돌아가자마자 당장 운전 면허를 땄다. 가족 캠핑을 향한 계획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미국 로드트립때도 이정도로 끼니를 했다.
코펠 세트에 들어있는 컵. 뜨거운물 끓여 커피나 차 마신다.
12평 좁은 집에서도 수납이 가능한 만큼의 캠핑 장비를 가진 우리. 내년 여름에 한국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캠핑을 위해 꼭 필요하거나, 우리가 무척 좋아하는 행동을 위해 필요한 것(밖에 누워있기 위한 해먹 같은)이 아니면 더 사지 않는 우리는 덕분에 부담 없이 캠핑을 간다. 캠핑장에 가서는 음악을 틀고 책을 읽고, 가장 좋아하는 음악을 여러 번 반복해서 들으며 따라 부른다. 숲 속 트레일을 걷거나 수건 한장 들고 나가 호수에서 수영을 한다. 해먹에 누워 햇빛이 만들어낸 나뭇잎의 일렁이는 그림자를 멍하니 바라본다.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을 본다. 새소리를 듣고 날아다니는 새를 눈으로 좇는다. 단촐하게 꾸민 며칠짜리 집에서 물건이 없는 만큼 자연이 가득한 공간을 누린다. 물건이 없음에서 오는 불편함은 잠시 느꼈다하더라도 금세 몸을 움직이면 사라질 정도로 사소하다.
따뜻한 원목의 감성 가득한 소품들로 사이트를 꾸미고 힐링의 시간을 갖는 캠핑도 행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식이겠지만, 큰 비용을 들여 그런 장비들을 갖추지 않아도 캠핑이 주는 행복과 즐거움을 충분히 발견하고 누릴 수 있다. 번잡함이 없는, 고요와 여백이 주는 느긋한 만족감에 선선히 감탄하는 지금을쥘 수 있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부담 없는 마음으로 캠핑을 지속해야지. 언젠가 아름다운 장비들을 고심해 들이는 감성 캠퍼가 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이렇게 단촐한 캠퍼로 사는게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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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단순해질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시간을 내고 좋아하는 노래를 반복해서 듣고, 구름들이 가는대로 따라가고 하늘을 떠다니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