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물도 풀린다는 우수 경칩을 지나 봄기운이 완연한 이즈음, 고향어르신
댁내 평안하시고 집안 대소가의 어르신들도 두루 안녕하신지 궁금합니다.
이곳은 할아버님과 집안 어른들 모두 가내 평안하시고 저 또한 건강히 잘 있습니다.
아뢰올 말씀은 다름이 아니옵고 . . .“
라고 시작하는 편지를 내가 글씨를 깨우치고 나서서부터, 부친께서는 계절이 바뀔 때 마다 고향의
집안 어른들에게 편지쓰기를 강요하셨다.
편지 쓰기는 훗날 “국군장병아저씨께”라는 위문편지로 이어졌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서 펜팔이라는 편지쓰기 형태로 이어졌다.
친구의 권유로 해외펜팔로 이어진 편지교류는 단순히 글쓰기를 넘어 영어실력을 겸비해야하는 일테면
‘문무’를 겸비해야 하는 허들이었던 셈이다.
강요로 시작된 글쓰기는 오랫동안 길들여지며(?) 글을 쓰는 것을 즐겨하는 습관으로 변화 되었다.
덕분에
“아침저녁으로 파고드는 찬바람이 옷깃을 여밉니다.
쌓이는 가로수 낙엽만큼이나 많은 시간을 기다립니다....“ 따위의 연예편지 대필이라는 탐탁치 않은 부탁을
받아들이는 작은 부작용이 생겨나기도 하였으나, 결과적으로 보면 나의 인생에서 글쓰기라는
재미를 한 가지를 더 갖은 셈이 되었다.
귀가길 다리 위 특정하게 정하여진 요일에 정해진 장소에서 좌판을 펼쳐 놓고,
땅콩을 팔고 있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어쩌다 술을 한잔 걸치면 그 좌판 앞에 서서 땅콩 한 봉지를 구매하면
저울 위에 정량을 계량하고 나서 땅콩을 한 움큼 쥐어 주는 덤이 늘 뒤따랐다.
인심이 후하다는 푸근한 인상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부터 인가 보이지
않는다.
한참이 지난 후에 내가 다른 곳으로 집을 이사 하고, 우연히 주변의 재래시장을 방문하였는데 좌판이
아니라 시장입구의 땅콩을 판매하는 매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안부를 물으니 그간에 떠돌이 좌판장사를 하다 매장을 개장하느라
보이지 않았다는 말은 두 말 없이 축하의 인사말과 번창하기를 덕담하다.
사람 사는 일이 거지반 거기서 거기인지라, 크고 작은 일이 끊임없이 찾아온다.
아내가 병원에서 시술이 예정되어 있는 날이라 함께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 기다리겠다는 나의 등을 떠밀고 퇴원절차가 끝나면 마중을 나오라는 말을
마치고 병원 입구를 향하는 뒷모습이 짠하다.
몇 시간이나 서성인 끝에 잘 끝났다는 문자를 받고서야 안도하다.
맹위를 떨치던 더위 속에서도 새벽 아침공기에는 시원함이 배어있다.
파란하늘에 높은 구름이 이제 가을이 시작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