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봄이 되면 씨를 뿌리고, 여름이면 꽃이 핀다. 그리고 가을이 되면 열매를 맺고 수확을 한다. 그것이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섭리이고 진리다.
겨울은 다가올 봄을 준비하고 시간을 쉬어 가는 계절이다.
하늘빛이 금방 뭐라도 한바탕 쏟아 질것 만 같은 잿빛이다.
새벽 미명의 찬바람에 발밑으로 구르는 낙엽을 보며 불현듯 생각이 떠오르는
레미 드 구르몽의 ‘낙엽’에서 “시몽~ ” 하는 언어를 연상한다.
나는 왜 그처럼 시인이 되지 못했을까!
형형색색의 단풍나무, 또르륵 하고 구르는 노란은행나무 잎새 에도 난 침묵 할수 밖에 없고,
어느 때인지 모른 체 시나브로 찾아든 가을을 맞이하기에도 너무 인색하다.
황금들녘의 나락의 모가 제힘에 지쳐 하나, 둘 잠들기 시작하면, 머지않아 비단같이 얇은
솜이불이 덮히고, 인적이 끊긴 꽁꽁 언 시냇가에는 동면에 든 물고기조차 무심하다.
어색하다.
나는 아직도 농부가 제 잇속 챙겨간 듯한 빈들은 공허하다.
제집 찾는 강남 제비는 지지배배 숨 가쁘기도 하지만,
어느 결엔가 빈 전신주에는 그들을 대신해 터 잡은 까막까치 들만 가득한데
“워이~ 워이~” 순이 아버지 회치는 소리가 저 혼자 요란하다.
가고 들수록 득도한 선인처럼, 오고가는이 들의 회자가
정한이치 이거니와 물이 흐르는 섭리를 거스르지 못함은 이순(耳順)을 넘어 종심(從心) 까지를
추스르기 때문이다.
조금은 화려하기도 하여, 어떤 더 찬란한 미사어구를 견강부회하지 않거나 첨언하지
않더라도 신의 섭리는, 자연 그대로 존재하는것 만으로도 언제나 위대하다.
모두 다 숨 가쁘게 지나치는 군중의 무리들이
어느결 인지 앞서거니, 뒤서는 행보 속에 제 스스로 발광을 하고,
혹자는 늘 그들의 아집 안에서 의연한 자태를 지닌다.
삼라가 저마다 부처이고, 모든 하늘아래가 제각기 축복인지라 산비탈 소나무가지에도 있고,
작은 산새의 뜻 모를 지저귐과 흰 구름 두둥실
앙상하게 남은 바닷바람에 까지 언필칭 시린 연정이 남아있으려나
오동일엽(梧桐一葉 )이 전하는 술잔위, 젖어드는 밀어는 풍년가 일진데
에헤라 둥둥~ 어기야 둥둥~
태산을 휘감은들, 돌고 돌아 또다시 돌아들어 억겁이 윤회된들, 본디부터 그 자리라
가을 찬바람에 맺히는 새벽이슬 까지도
매양 두고 이러저러 할 요량이면 그 역시도 아집인걸,
옷고름 여미는 여축만으로 진인사(盡人事)마음으로, 마땅히 세상을 겸허하게 하는
일일재신(一日再晨) 인지라.
一日難再晨:하루에 새벽이 두 번 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