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내면과 영혼은 신께서 거(居)하시는 성전이라.
육은 허망한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존재 중에서 육에 해당하는 것, 곧 자아(ego), 마음(mind), 무의식(개인-집단), 표면적인 의식, 그 어떤 것에도 신께서 거하실 수 없다. 신께서 거하시기 위해서는, 고요하고, 평온하고, 온전히 집중되어 있고, 온전히 몰입되어 있으며, 모든 순간마다 순결하고 진실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의 내면은 집이다. 나의 영(Spirit)과 혼(Soul)은, 그리스도께서 거하시는 성전(聖殿)이다.
나의 부족함과 미숙함으로 말미암아 한 가지를 자랑하고자 한다. 내게는 하나의 분명한 자랑거리가 있다. 그것은 바로, 나의 영과 혼이 그분께서 편안하게 거하실 만한 성전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분께서 "나는 머리 둘 곳조차 없다"고 하셨을 때, 그 음성을 들었을 때, 내 마음이 무척이나 아팠다. 안타까웠다. 그토록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 양"께서, 당신께서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시는 이 세상 만인의 백성들 중 누구도 그분의 짐 지심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심지어 비웃고 모욕하고 비난하거든, 잠자리에서마저 편히 주무실 수가 없단 말인가. 이 세상 어디에도 그분께서 편히 거하실 만한 집이 없다는 말인가. "아, 믿음 없는 자들아! 내가 너희를 얼마나 더 참아야 하겠느냐? 내가 너희 곁에 얼마나 더 머물러야 하겠느냐?"(눅9:41) 하셨을 적에, 내 마음이 무척이나 아팠다. 또한, 그분께서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조차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마26:40) 고, 그토록 사랑하시고 아끼시는 제자들마저도 그분의 고된 짐 지심과 그 수고하심을, 참으로 안타깝고도 쓸쓸하신 그 고귀하신 심정을 누구도 섬기고 영접하지 못하매 그 버거운 모습마저도 사랑하고 안쓰러워하셨음을 들었을 적에, 내가 참으로 마음이 아팠다. 그리하여 어느 순간 나는 그분을 대하고 영접하는 나의 관점이, 나의 존재가 달라졌음을 느꼈다. 설명할 수 없는, 굉장히 기묘한 감각이었다.
이전에는 "나의" 축복과 은혜를 구했다. 그저 그분께 달라고만, 끝없이 달라고만 하였다. 마치 "축복을 맡겨놓은 것마냥" 메달렸다. 그러나 여정이 이어지고, 미약한 수준으로나마 그분께서 가신 길을 흉내내고 모방하여 내 삶 속에서 걷기 시작하면서, 나는 감히 그분을 "이해"하고 있었고, 그분을 "사랑"하고 있었으며, 그분께서 그리도 수고하고 짐지신 모습에 안타까워하고 있었고, 나의 영이 수천 년의 시간을 넘어서서 그분께서 무겁고 또 무서운 십자가를 지고서 걸어가실 적에, 내가 그분을 외면하였음을...... 진실로 슬퍼하였다. 저 무지한 대중들은 죄가 없다. 저들은 "모르지" 않는가. 그러나 나는 "다 알고서도" 그분을 외면하였다. 대중 속에 숨었다. 모습을 감추었다. 증거하지 않았다. 고백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내가 "닭 우는 소리"를 들으매, "닭보다도 더 길게 목을 빼어놓고 울었을" 어느 누군가의 심정에 절절히 공감하였다. 어느새, 나는 "그분께 내가 무엇을 드릴 수 있단 말인가?"를 묻고 있었다. 더 이상 구하지 않았다. 구하는 것이 없어졌다. 그저 그분께서 나와 함께하심에 기뻐하였고, 그분께서 나로 인하여 "기뻐하시는" 것을 내가 또한 기뻐하였다. 이유가 없었다. 설명조차 되지 않는다. 여전히 에고로는, 생각으로는, 이성으로는, 아무것도 납득되지 못함을 내 자신이 알고 있다. 그러나 나의 영이 그분의 신성을 영접하매, 어느새 그리 변화하고 있었다. 물들어가고 있었다. 내가 오직 "그분께 기쁨이 되는 것"만을, 감히, "나로 인하여 한 순간만이라도 그분께서 평안하시기를" 구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의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의 마음은 곧 "문"이요, 사람의 내면은 곧 "집"이요, 그 내면의 깊은 곳의 영과 혼이 곧 "성전(聖殿)"이라는 것을.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마음과 내면과 영혼을 들여다보매, 그들의 문은 너무도 굳게 닫혀 있었고, 그들의 집은 수십 년 동안 전혀 관리되지 않아서 거미줄이 잔뜩 끼고, 먼지가 앉고, 곰팡이가 슬고, 창문이 깨어지고, 천장이 무너지고, 물이 새고 있었으며, 그들의 "성전"은 차마 눈 뜨고 봐줄 수조차 없을 지경이라는 것을, 그분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사랑하사" 단 한 마리의 잃어버린 양조차도 끝끝내 포기하지 않으시되, 그토록 처참한 지경인 집마저도 방문하시는 것을. 거미줄을 걷으시고, 곰팡이가 슨 의자에 앉으시며, 먼지가 잔뜩 끼고 엉망진창인 침대에 누우시는 것을...... 그분의 신성이 그 안에 거하사, 조금이라도 "문을 열기를" 뜻하시며 그리 일하시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내게 오실 적에, 나는 너무도 기뻤다. 세상 언어로는 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기뻤다. 어느 순간 나는 보았기 때문이다.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 있었다. 나의 집은 비록 화려하지 않고, 가난하고, 볼품이 없으매, 늘 항상 정갈하고, 정돈되어 있고, 차분하고, 고요하며, 그 가운데 순종하고, "오심"을 두려워하지 않되 오히려 오실 적마다 먼저 문을 열고 나가서 영접하고 경배하며, 그분께서 내 집에 거하실 적에 참으로 편안해하시는 모습을, 부끄럽지만 정성을 다하여 정돈한 나의 의자에 편히 앉으시고, 민망하지만 온 진심을 다하여 정돈한 나의 침대에 누우실 적에 그토록 편안한 표정으로 잠드심을, 그분의 숨결을...... 나는 선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로 인하여 내가 너무나도 기뻐하였다. 잠드심을 깨지 않기 위하여 조용히 머리맡에서 기도하고 묵상하매, 그분께서 깨셨을 적에 나로 인하여 기뻐하시고, 또한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가운데 내 귓가에 너무도 귀한 말씀을 알려주시고는 그리 떠나시니, 내가 문을 언제나 열어놓고, 집을 청소하고, 항상 고요하고, 항상 평온하며, 나의 정신과 내면을 오직 집중하고 몰입하고 있으니, 언젠가 다시 그분께서 오셨을 적에 언제라도 편히 쉬다 가실 수 있기를 소망하는 그 마음 하나로, 그리 이 길을 나아가는......
그리하여 나는 묻고 싶다. 형제들에게. 그분께서는 모든 형제들을 다 아낌없이 사랑하실 것이다. 편애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나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그분께 받은 만큼, 구하여 얻은 만큼, 나는 그분께 기쁨이 되는가? 나의 존재가, "신께서 기뻐하실 만큼", 아름답고 순결한가?
마침내, 나의 영과 혼이, 그분께서 편히 거하실 만한 성전으로 늘 준비되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