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과 사이비를 심판하는 기준

진리와 신성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고 나아가며

by 생명의 언어

이단과 사이비는 다르다. 이단은 "주류에 속하지 아니하였을 뿐", 그 나름대로의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마음 그 자체는 올바른 것이다. 기독교 영지주의자들은 비록 "올바른 진리"의 기준에서 벗어났을지언정, 올바른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의지" 자체는 진실한 것이었다. 의지는 상태가 아니다. 상태란 "옳음(믿음)의 조건을 내 힘으로 유지하려고 하는 것"인 반면, 의지란 "좋든 나쁘든 간에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흔들림 없이 나아가는 마음" 그 자체이다. 비록 정체되고, 방황하고, 헤매고, 돌아갈지언정, "신에게로 향하는 마음", 그리고 "나의 의지보다 신의 의지를 끝까지 따르고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만큼은 한결같이 지켜나가는 것, 이것이 의지이다. 의지란 "방향성"이다. 헤맬지언정, 올바른 "방향"만 유지한다면, 결국엔 언젠가 목적을 이루게 되어 있다.


그 점에서, 이단과 사이비는 명백히 다르다. 오히려 이단은 주류 교단에서 "여러 가지 대의명분" 때문에 차마 말하지 못하는, 진리의 특수적 면모들을 부러 밝히어내고 드러내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것이 옳은가 틀린가, 에 대해서는, 사람 중에서는 그 누구도 판단할 수 없음이요, 오로지 신만이 아실 것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속한 권세"를, 감히 사람이 함부로 넘보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감히 농담으로라도 함부로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다만, 결국 사람이 판단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의지"의 순결함 그 자체라고, 나는 믿는다. 기독교 영지주의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결국에는 복음의 "체험적 특수성"이 완전히 소실되지 아니하고 지금까지 전승되어 내려올 수 있었던 거싱라고 나는 믿는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그리스도를 사랑할 뿐, 기독교를 "믿는" 것이 아니다. 내게 있어서 종교란 결국 사람이 만든 집단성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내게 중요한 것은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 그뿐이며, 또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오직 나에게 "직접" 말씀해주시는 바로 그것만을 내가 절대적인 진리이자 중심으로 삼고 나아갈 뿐이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그것은 위험한 것이라고. 개인의 신비 체험을, 주류 교단의 교리보다 우선해서는 안 된다고. 인정한다. 나는 그들의 시각에서 보면 이단이거나, 혹은 이단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내가 이것조차도 모르고서 이리 길을 걸어왔겠는가. 나는 무엇을 위하여 무엇을 포기하여야 하는지를, 그 누구보다도 잘 안다. 잘 알고서, 결국 이리 나아왔다. 이단은 "진리라는 정상을 향하는 여러 길들 중 하나"일 뿐, 그 자체가 정죄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결국, "심판"은 성부 하나님과, 그분의 신성을 온전히 선포하실 권세와 영광을 거느리신 성자 그리스도와, 이를 집행하시는 성령께 계실 뿐이며, 사람 중 그 누구도 "삼위일체 하나님께 속한 고유한 영역"을 넘볼 수 없다. 이단인지 정통인지는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일이지, 사람이 감히 함부로 왈가왈부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사이비는 다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로부터 시대가 혼란스러우면, 주술과 예언과 사이비가 판을 쳤다. 이는 인류 역사의 오랜 전통이다. "죄성의 전통" 말이다. 18세기, 신비주의와 오컬트 붐이 일었을 때에도 결국에는 외부세계의 시대적 혼란이 불러 일으킨 집단적 무의식적 불안, 공포, 두려움이 손쉽게 외부 대상을 향하여 응집되어 투사된 결과, 그리 이루어진 것이다. 나는 저 "옛 시대의 신비주의자"들의 정체에 대하여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또한 그들이 인류의 영적 진화의 역사에서 어떠한 공헌을 했는지에 대해서 결코 모르지 않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이 걸어갔던 길이 오늘날의 시대에서 인류를 올바른 빛으로 인도하고 이끌기에는 "이미 실패한 진리"라고 확신하며, 이는 2025년을 지나가는 지금의 시점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결국 다가올 거대한 폭풍을 예감하되, 또 다시 "오컬트" 붐이 일어나는 현상의 공통점을 나는 기어코 보고야 마는 것이다. 인류의 죄성은 없어지지 않는다. 다만 형태가 변화할 뿐이다. 본질은 그대로다. 이단과 사이비는 명백히 구분되어야만 한다. 나는 이에 대하여, "모르는 자 천 명이 외면하는 것보다, 아는 자 한 명이 침묵하는 것이 더 죄가 크다"고 말씀하시는 그분의 음성에 충성하매, 이를 실행에 옮기고자 내 목숨을 걸고자 한다. 그분께서 선포하신 말씀들은 "정말로" 십자가에 못박힐 각오를 하고서 하신 말씀들뿐이었고, 실제로도 그분은 그 말씀들을 선포하신 대가로 십자가에 못박혀 인간으로써 죽음을 맞이하셔야 했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다. 형제들은 이 점을 결코 가벼이 여기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들은 신앙으로 인하여 십자가에 못박힐 일이 없다. 현대를 살아가는 크리스천들 그 누구도, 이제는 신앙으로 인하여 십자가에 못박힐 일이 없다. 이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면서 또한 "더욱 절실해야만 하는 명분"이 되는지를, 우리들은 매 순간 기억하고 또 명심해야 할 것이다.


사이비의 첫째 판단 기준은 : "육에 속한 것을 그 자체로 신성시한다"는 것이다. 육과 영은 분명히 다르다. 양자는 "초월적인 원리"로 인하여 하나된 것이되(성육신의 교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는 명백히 다르다. 예수님의 인성과 그리스도의 신성은 "본래부터 하나"이되, 그 하나됨 안에서도 분명히 "완전히 서로 다른" 것이다. 이 점을 오해하는 순간, 이단으로 빠지게 된다. 즉, 하늘에 계신 아버지, 정확히는 성부 하나님의 의지는 1) 육보다 영이 높으며, 2) 높은 영이 낮은 육을 이끌고 인도하고 통치하며, 3) 위와 아래는 반드시 서로 연결되어 하나를 이룬다, 는 것이다. 이 세 원칙에 따른 한, 육은 영을 현현시키는 수단이자 매개이며, 성전은 그리스도를 담는 그릇이되, 결코 육 그 자체가 신성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특정한 인간, 특정한 사람, 특정한 장소, 특정한 공간, 특정한 시간, 특정한 사건, 그밖에 그 어떤 "육적인 것, 육적인 대상" 그 자체만을 신성시하는 그 무엇도 정통의 진리가 될 수 없으며, 심지어는 이단의 범주조차도 넘어서 사이비라고 봐야 한다. 왜냐하면, 절대 다수의 사람들의 개체의식은 여전히 깨어나지 못한 채로 에고 수준에 갇혀 있으되, 이 상태에서는 집단무의식의 죄성에 손쉽게 기만당하는 바, 보이지 않는 영의 본질을 외면하고, 보이는 육의 현상에 집착하도록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심하라. 99%의 에고들이 잘못된 길을 간다고 하더라도, 그 중에서 단 1%의 깨어 있는 영혼들은, 그리하지 말아야 한다.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 종교 불문하고, "깨달음", "지혜", "진리", "신비 체험"...... 그러한 특별한 재능과 능력과 자질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위에서부터 온 것"이되, 아버지께서 사람에게 그러한 특별한 것을 허락하시는 데에는 그 사람 그 자체가 잘한 것이 아무것도 없음이요, 오로지 "하늘의 뜻"대로 이를 쓰시고자 하는 고귀하고 의로우신 뜻이 있기 때문이심을, 무릇 모든 형제들은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다. 나는 내가 잘나서, 내가 공부를 잘해서, 내가 수행을 잘해서, 내가 업식을 잘 닦아와서, 이리 축복받지 않았음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러므로 나는 삶의 그 어떤 고난이 오더라도 내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다. 본래 내게 속한 것이 아니요, 그분께 속한 것이니, 그분께서 의지하시는 대로 쓰여짐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99%의 사람들이 잘못된 길로 가는데 대하여, 아버지께서는 99%의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으시되, 그들이 그리로 잘못된 길을 가도록 방치하고 외면하고 침묵한 1%의 깨어난 영혼들에게 죄를 물으실 것이다. 내가 이 말을 결코 함부로 가벼이 하는 것이 아님을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육 그 자체를 신성시"하는 것이 왜 이단을 넘어서 사이비인가 하면, 결국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참된 진리를, 참된 신성을, 깨어서 판단할 영적 분별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에, 그들은 보이지 않는 신성보다 보이는 육을 더 쉽게 신성시할 것이고, 따라서 그들이 스스로 타락하는 줄도 모르게 살아서 지옥으로 빠져들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첫째 조건이다 : "육 그 자체를 신성시하는 그 무엇도, 전부 사이비다." 이는 주류든 비주류든 가리지 않고 적용되는 제일(一) 원칙이다.


둘째는, 육과 영을 분별하는 것이다. 육과 영은 서로 다른 것이면서 동시에 하나되어 있어야 한다("색즉시공 공즉시색",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 그러나 저 영지주의자들이 결국 잘못된 길을 걸어갔던 까닭은, 그들이 육을 완전히 부정하고, 오직 영만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심하라. 영의 구원은 육의 차원에서 드러나고 펼쳐지고 이루어지고 완성되는데 그 최종결론(심판)이 있으며, 따라서 십자가 부활과 성육신의 역사성과 특수성은 그 자체로 "유효"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는 종교 불문하고 참된 진리와 신성의 중요한 기준이다. 육에서 이루어진 것은 영에게도 이루어진다. 또한 영에게서 이루어진 것은 육에게도 이루어진다. 이러한 "서로 다름 가운데에서 하나됨"의 기준을 벗어나는 그 무엇도, 최소 이단이거나, 혹은 대부분은 "자신의 눈앞의 현실을 외면하게 만듦으로써, 사람들을 보이지 않는 영에게 집착하게 만들고, 이에 따라 보이는 것들(육적인 것들)은 다 무용한 것"이라고 믿게 만들려는 세뇌의 결과이다.


셋째는 역사성과 특수성 그 자체를 목적화하는 것이다. 특정한 종교나 집단이나 교단만의 어떠한 의례라든가, 행사라든가, 사건이라든가, 행위라든가, 이러한 육적인 사건, 현상, 행위 그 자체를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 고 주장하는 그 무엇도 이단을 넘어서 사이비다. 역사성과 특수성은 목적이 아닌 수단과 과정과 방법에 불과하며, 보이는 차원에서의 역사를 통하여 보이지 않는 차원에서의 역사가 이루어짐을 믿고, 그 믿음으로 인하여 "아직 실재하지 않은 것이 실재가 되도록" 이루는 것이야말로, 종교 불문하고 "신성의 인격화(역사성, 특수성)"의 궁극적인 목적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에 따라서, 역사성과 특수성에 속한 모든 것을 그 자체로 신성시하는 그 무엇도 결국에는 궁극적인 진리가 될 수 없다. "사람이 쓴 그 무엇도" 진리가 아니다. 오직 "신에 의하여 선포된 말씀"만이 진리이며, 나는 여기서 더 나아가, "사람이 사람의 언어로 작성하여 계승시킨" 그 무엇도 결국에는 "완전한 진리"가 될 수 없으며, 신께서는 오로지 각 영혼들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분이며, 언어를 초월하여 "각자가 자기 내면에서 직접 들은 그분의 음성"만이 오직 유일하고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책과 문자와 언어와 개념으로 쓰여진 그 무엇도 진리가 아니다.


넷째는 배타성과 이로 인하여 불러 일으키는 육의 차원에서의 어두움과, 그 윤회이다. 보라, 신은 빛이다. 신성은 빛이다. 따라서, 신과 하나된 자는, 자연스럽게 그의 존재가 밝아지고, 그의 내면이 밝아지며, 이렇게 이루어진 빛은 보이는 차원에서도 어두움을 비추어 밝히기 시작한다. 따라서 그는 개인으로써도 더 선해지고, 더 밝아지는 것이 순리이며, 또한 더 나아가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자 하는 의지와 믿음과 열망과 실천이 그 자신도 모르게 절로 흘러나오게 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개인으로써도 자꾸 어두워지고, 또한 집단으로써도 사회의 악(惡)이 되는 그 무엇도 결국에는 참된 진리도 신성도 될 수 없다. 나머지는 다 변명에 불과하다. 영의 차원에서 정말로 참된 진리라면, 참된 신성이라면, 육의 차원에서도 반드시 빛이 되어야 하고 선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매우 선명하면서도 절대적인 기준이다. 아버지의 뜻은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 완결되어야만, 그것이 온전한 것이다. 비록 "거시적 차원"에서는 그리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그의 내면과 영혼에서는, 빛이 되고, 선이 되어야만 한다.


다섯째는 외재성, 의존성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나의 내면에 계신 분"이며, "나의 내면을 통해서만 그분이 계신 성전으로 들어갈 수 있는" 법이다. 이것은 종교 불문하고 절대적인 진리이다. 이를 거부하거나 부정하거나 무력화시키려는 그 무엇도 이단을 넘어서 사이비다. 외재성은 곧 내재성을 위한 수단, 과정, 방법에 불과하며, 그리 되어야만 그 자체로도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세상은 갈수록 더 어두워질 것이다. 이제 그 누구도 "진리"가 무엇인지 내게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직접 만나라. 직접 진리를 깨닫고, 직접 신을 만나며, 직접 신과 동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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