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삶 속에서 이루다
"아버지, 할 수만 있다면 내게서 이 잔을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마26:39)
종교를 비판하기에 앞서,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각각의 성도들이 스스로를 돌이켜봐야 하는 것은, 이것이 나의 기복을 위한 것인지를 점검하는 것이다. 나의 성취, 나의 욕망, 나의 소원, 나의 뜻, 나의 원하는 것, 나의 필요로 하는 것, 그러한 것들을 구하고 얻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이름을 이용한다면, 비록 이 역시도 그분께서 허락하신 일이었으나(요14:13), 나는 감히 되묻고 싶은 것이다 :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스스로 돌이켜보라고, 저 겟세마네의 기도를 올리신 주님 앞에서. 그분이 그리 십자가를 지시고 나아가신 고로 아버지와 나 사이의 길이 열렸는데, 그 길을 통하여 내가 기도하고 청하고 간구하는 것들이 과연 어떤 것들이어야만,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겠는가, 하고. 확실한 것은, 그저 기복신앙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기복은 결국 내가 사는 길이다. 그러나 참된 신앙은 "주님과 함께 십자가 위에서 죽고, 그분의 부활을 통하여 나도 다시 태어나고자 함"을 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은 오직 이 하나이며, 우리의 거듭남을 주님의 이름을 통해서 구할 적에, 그 기도, 그 청, 그 간구야말로 진실한 것이다.
그분은 이미 모든 것을 다 예비하고 계셨다. 그날 밤, 저 유명한 겟세마네의 언덕에서, 그분은 홀로 아버지 앞에 나아가서 얼굴을 땅에 닿도록 엎드리시고 고통스럽게 기도하셨다. 그분은 자신의 두려움을 있는 그대로 진실하게 고백하셨다 : "할 수만 있으시거든, 내게서 이 잔을 지나가게 하옵소서" 하고. 가능하시거든 이 잔을 내가 겪지 않도록 해달라는, 있는 그대로의 기도셨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피 흘리고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실 것을 다 알고 계시면서도, 그 길을 얼마든지 그분의 권능으로 피할 수 있으시면서도, 그것이 "사랑하는 아버지의 의지(WILL)"셨기에, 그분은 피하지 않으셨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 기도는 그토록 고귀하고 의로운 단 하나의 의지를 향한다 :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이것은 포기가 아니다. 나약함이 아니다. 오히려, 얼마든지 내 맘대로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커다란 시련과 고난 앞에서, 심지어 십자가 위에서 피 흘리며 죽는 결말 앞에서도, "내 뜻"을 내려놓고, 더 높고 고귀하고 의로우신 "아버지의 뜻"을 나의 자유 의지로써 선택하겠다는 것이다. 더 높은 의지를 따르기로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이 기도 하나가, 모든 형제들의 본이 되어야 한다. 오늘날, 무수히 많은 기도들과 기도문들이 교회에 넘쳐난다. 물론 그것들 각각은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이고, 역사와 전통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또한 존중한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기도는 오직 하나뿐이다. 저 겟세마네의 기도를, 형제들 각각의 삶 속에서 행하고 실천하는 것. 나의 삶의 실존하는 시련과 고난 앞에서, "이 시험을 내게서 거두어주십시오" 하고 솔직하게 마음을 드러내면서도, 결국 그 끝에서는, 아버지를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십시오" 하고, 그분께서 올리신 기도를 우리들이 흉내내고 모방하는 것이다. "최초의 기도"이자, "모든 기도 위의 기도"로써, 기도의 원형에 이르고자 하는 것이다. 기억하라. 우리는 아버지의 뜻을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인간이고, 아버지는 드높은 천상에 계신다. 비록 내가 그분으로 말미암아 아버지 안에 거할 수 있게 되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아버지는 초월이시고 영원이시며, 이는 내가 감히 이해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천지가 그분의 질서에 따라서 운행되는 모든 신성한 흐름들 속에서 내 삶 역시도 그와 같이 인도되고 통치될 것이다. 삶에서, 내가 아버지를 사랑할수록, 아버지는 나의 영혼을 살리시기 위하여, 에고를 죽이시는 시련과 고난을 주실 것이다. 보라, 아버지의 가장 큰 사랑을 홀로 감당하셨던 분이 누구인가? 아버지께서 자녀들 가운데에서 가장 높이시고, 가장 사랑하셨던 분이 누구인가? 바로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그러나 바로 그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육신을 입으셨을 적에,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맞이하신 마지막이 어떠하였는가? 우리 모두가 다 알고 있지 않은가. 이것이,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의 의미이다. 예수님은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소서"하고 기도하셨다. 그러나 아버지는, 십자가를 거두시는 대신, "십자가를 끝까지 짊어질 수 있는 힘"을 주셨다. 이것이 아버지의 방식이다. 아버지의 뜻이다. 내가 "이 시험을 지나가게 해주십시오"하고 간절하게 기도한다면, 아버지는 시험을 거두시지 않고, 다만 임재하셔서, "내가 담대히 이 시험을 겪고 통과할 수 있도록" 힘과 의지를 부여하실 것이다. 이것이 아버지의 방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사랑하겠는가? 아버지의 뜻을 나의 뜻보다 더 사랑하겠는가? 나는 하루라도 빨리 시험으로부터 도망치고 싶고, 얼른 편해지고 행복해지고 싶은데, "내게 빛을 주십시오"하고 기도하였더니, 내 자신 안의 빛을 발견할 수 있도록, 삶의 시련과 고난이라는 어두움을 내게 허락해주시는, 그러한 아버지를,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정말로 "사랑"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물음을 내게 던지는 것이다.
시련과 고난은 명백히 의도된 것이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것이며, 그 시련과 고난을 겪게 하심으로써 나를 이끌고 인도하시고자 하는 아버지의 고귀하고 의로우신 뜻이 있는 것이다. 시련은 고통과 다르다. 고통은 인간 존재의 죄성으로 인하여 드러나는 어두움의 산물이되, 시련은 "사실은 영적으로 아버지께로부터 철저히 보호받고 있는 상태에서, 나의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겪는, 명백히 의도된 시험"이기 때문이다. 고난은 괴로움과 다르다. 괴로움은 인간 존재의 어리석음과 오만이 만들어낸 망상이되, 고난은 "나를 마침내 구원하시겠노라는 언약을 주시면서도, 기약 없는 인내와 기다림을 겪게 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하여 "나"는 죽고, 내 안의 "그리스도(신성)"께서 부활하시는 영적 역사를 이루시기 위한 의도이기 때문이다. 참된 기도는 오직 자신의 삶 속에서 행해지는 것이어야 한다. 교회 안에서 하는 기도는 일종의 연습이고 훈련이다. 실전은 내 삶이다. 특히나, 삶 속에서, 오직 나만이 짊어져야 하는 십자가, 내 삶의 실존하는 시련과 고난, 그 어두움 앞에서도, 나의 의지가 흔들리지 않고, 꺾이지 않고, 넘어지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아버지께 "할 수만 있으시거든 이 시험을 거두어주소서"하고 인간적인 마음을 고백하라, 그러나 마침내 결국에는 나의 의지보다 아버지의 의지를 더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인도하소서"하고 기도하라. 이것이 유일한 기도다. 하나뿐인 기도다. 그리고 묵상이란, 바로 그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를 내게 가르쳐주시고 음성을 들려주시되, 내가 그 삶의 실존하는 시련과 고난 가운데에서, 고요히 정신과 의식과 내면을 오직 "음성"에만 집중하여 이를 듣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성령을 통해서 내게 알려주시고 가르쳐주시는 것이다. 이러한 기도와 묵상의 과정을 통하여, 한 영혼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영적으로 크게 성장하고, 성취되고, 도약한다. 그의 정신은 시험을 거치면서 무섭도록 아버지께로 집중되며, 그의 의식은 완전히 깨어나서는 오직 그리스도의 음성만을 듣는다. 그의 내면은 무서울 정도로 성령께로 온전히 몰입되어 있다. 이제 어두움은 그를 해칠 수 없다. 그가 모든 순간 "그분 안에 거하는" 삶을 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과정들은 "길(道)"이다. 그리스도의 길. 그분을 따르는 길. 그분을 흉내내고 모방하는 길. 그리하여, 성육신으로 오신 분께서 먼저 걸어가신 모범을 뒤따름으로써, 보이는 내 삶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나의 영혼이 신성과 합일됨을 지향하는 삶, 이것이 참된 성육신과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험을 외면한다면, 육은 편하겠으나, 영은 주님께로부터 멀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험을 끝끝내 사랑하고, 그 시험 속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사랑하며 오직 그분께만 의지하여 나아간다면, 그리 걸어가는 과정 속에서, 성부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며, 성자 그리스도와 급격하게 친밀해질 것이며,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로부터 특별한 사랑과 보호를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과 친밀해지는 것" 하나만을 원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