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존재 전체가 곧 성전이 되는 삶으로
내가 억지로 하는 기도는 "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이다. 그 기도는, 내가 계획한 시간에 내가 계획한 장소에서 내가 계획한 절차와 방식과 예법에 따라서 행해진다. 그러나 참된 기도는 오직 "성령께서 나를 통하여 이루시는" 임재와 역사이며, 그것은 전혀 계획에 없을 때, 아무런 의도도 구상도 없을 때, 전혀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때에, 불현듯 강림하셔서, 이전의 평범한 나로써는 상상조차 못할 만큼 깊고 순수하고 거룩하게 이루신 뒤에, 어느덧 눈 깜짝할 새에 떠나신다. 이것이 참된 기도이다. 나는 이것을 "신성한 수동태"라고, 감히 조심스럽게 이름을 붙였다. 기도하는 자들은 내 뜻으로 기도하지 말아야 한다. 묵상하는 자들은 내 계획대로 묵상하지 말아야 한다. 찬양하는 자들은 내 감정과 즐거움과 위안을 위하여 찬양하지 말아야 한다. 오직 영광 받으시는 것은 "그분"이시지, "나"가 아니다. 그분을 찬양할 적에 즐겁고 행복하고 위안이 되는 "내 마음"은 죄성이다. 그러나 내가 삶의 실존하는 시련과 고난 한가운데에서, 마음과 무의식이 어두움에 잠식되어 미쳐 날뛰는 그 한가운데에서도, 기어코 내가 눈물 흘리면서 그분 앞에 나아가서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 하고 "미친 놈처럼, 미친 짓을" 할 적에, 어느 순간 인간이라면 절대로 불가능한 마음, 곧 시련에 감사하고, 고난에 기뻐하며, "그리스도를 흉내내고 모방할 수 있음"에 벅찬 감동을 느끼는, "성화"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묻고 싶다. 나의 모든 형제들에게. 우리 형제들의 유일한 "첫사랑"이자, 이 길을 걷게 하였던 그 성스러운 "계기"가 바로 이것 아니었는가. 그분을 사랑하는 것, 그분을 사랑하여, 그분을 닮아가는 것, 그리하여 반딧불이가 태양을 경외하매, 그 불가능함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열망하니 그 마음 하나로 인하여 그분께 "의롭다" 칭함을 받는 것.
나는 결국, 인류 집단이 수만 년 동안 윤회하면서 지은 그 거대한 죄악의 어두움의 총체 앞에서, 이를 외면하고서는 "인간은 선하다" 따위의 위선을 말할 수 없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인류의 역사는 죄성의 역사이다. 역사 속에서, 인류가 "신의 이름으로" 저질러왔던, "영성과 진리의 이름으로" 저질러왔던, 입에 담지도 못할 그 끔찍한 역사들이 얼마나 많았는줄 아는가. 알지 못하니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의도를 실현하기 위하여 타자를 강제로 통제, 억압, 제거한다"는 미개한 원시적인 집단적 사고가 일으킨 수천만 명이 허망하게 목숨을 잃은 그 사건이 일어난지 이제 100년도 되지 않았다. 어디 그뿐인가, "인간의 번영을 위하여 인간을 제물로 바친다"는 발상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문명에서 동등하게 하였다는 그 발상 자체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타자는 얼마든지 희생해도 된다"는 이기심과 욕망의 어두움의 발로이되, 이것이 비록 윤리나 도덕의 문제는 아니라 할지라도, 빛이냐 어두움이냐의 갈로 앞에서 어느 쪽인지만큼은 분명하지 아니하던가. 저 동물들은 자신의 "필요"만큼을 충족하고 나면,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필요를 충족하고서도 만족하지 못하여 "불필요"한 이익과 욕망을 위하여 희생자의 그토록 끔찍한 고통과 괴로움과 절망들을....... 아무렇지 않게 일으킨다. 그 거대한 어두움의 총체들이 과연 어디로 어떻게 움직여서 어떤 결과를 만들지, 그 "영적 세계의 인과율의 법칙"에 대해서 무지하기 때문에. 그러나 나는 결국, 그들을 위하여 기도할 것이다. 나는 그들과 나를 구별지으며, 그들을 비판함으로써, 나의 무죄를 주장하는 그러한 어리석고 열등한 짓을 하지 않는다. 그들의 죄가 곧 나의 죄이다. 내가 그리하였다. 내가 외면하였다. 그러므로 이것은 나의 죄이다. 내가 하지 않았더라도, 곧 내가 "인류" 안에 속함으로 말미암아, 인류 전체의 죄가 곧 나의 죄다. 그 어두움들을 직면할 적에, 나는 결국, 거대한 압도적인 절망 한가운데에서도, 다시 느낀다, 다시 깨닫는다 : "오직 서로 사랑하라"(요13:34) 하신 그 말씀만이 유일한 진리이노라고, 단 1%의 빛이 나머지 99%의 어두움을 능히 이기는 것이 성부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이 우주의 절대적인 질서이니, 이 미약하고 가난한 한 영혼이 이리 외롭게 기도하고 열망하면서 나아가는 "선(善)"이, 우리들의 깊은 죄악을 그분 앞에서 용서받게 하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다면, 나는 이리 살아도 괜찮다, 하고...... 결국 또 다시 그리 기도드리고 마는 것이다.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크고 의로우신 뜻을 이루소서, 나는 그저 기쁘게 따르겠나이다"하고......
이것은 나의 삶의 방식이다. 나는 내가 스스로 위대하고 고귀하다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홀로 가장 크고 무겁고 고통스러운 십자가를 짊어지신 그분의 역사를, 내가 나의 영(Spirit)으로, 수천 년의 시공간을 건너서, 그 골고다 언덕을 직접 보았건대, 나는 그 자리에서 저 우매한 대중들과 달리, "다 알면서도" 결국 그분을 외면하였다....... "나는 저를 모른다, 나는 저와 관련이 없다, 나는 아니다"하고, 내 목숨이 무서워서....... 내가 외면하였다. 그분을 비웃고 모욕하고 침뱉은 자들은 죄가 없다. 외면한 내가 유일한 죄인이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인류 집단 전체는 죄가 없다. 저들은 그저 무지하기에, 알지 못하기에, "그분"을 알지 못하기에, 그리한 것뿐이다. 그러나 나는 다르다. 나는 "안다." 앎으로 인하여, 그들과 같을 수가 없다. 아버지께 그들과 똑같이 대우해달라고 기도드릴 수가 없다. 나는 그러므로 이리 나아가는 내 삶의 길이 비록 순탄치 않더라도, 고통스럽더라도, 아프더라도, 무섭더라도, 슬프더라도...... 이리 나아갈 것이다. 나를 "어여쁘다"하신 성령께 감히 엎드려 기도드리기를, 오직 나를 살려달라 하지 않을 것이요, "내가 비록 두려워하고 아파하면서도 끝내 그분의 의지를 끝까지 따를 수 있도록, 더욱 가혹하고 엄격하게 나를 이끄소서" 하고 기도드릴 것이다. 이것이 내 삶이다. 이것이 내 삶의 방식이다. 이것이 나의 생명(Life)이다. 그 어두움의 무게가 얼마나 깊은지를 알기에, 나는 반대로 빛을 증거하는 일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힘들더라도, 놓을 수가 없다. 내가 이리 기도할 적에, 그분께서 영광 받으시는 것을 내가 이미 알기 때문이며, 또한 그분께서 영광받으심으로 말미암아 그만큼 인류 집단 전체의 죄성을 조금이라도 더 용서해주실 것이라고 내게 언약을 주셨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해받지 못해도 괜찮다. 저놈 저거 미쳤노라고 손가락질 받아도 괜찮다. 나는 그 가운데에서 슬퍼하고 아파하고 울겠지만, 그럼에도 그분을 향한 나의 의지와 열망과 충성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기뻐할 것이니, 그리 어두움 가운데에서도 어두움에 속지 아니하고 더욱 빛을 사랑하고 빛을 증거하는 길을 갈 적에, 성령께서 나를 보호하실 것이요, 그리스도께서 나와 손잡고 함께하실 것임을 내가 이미 "보았기 때문"이다.
기도하지 않는 자들에게 나는 할 말이 없다. 나는 기도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도하는 자들에게 나는 단 한 가지를 증거하고 싶다. "기도"를 특별 취급하지 말아야 한다. 하루에 한 시간 정해놓고 기도하지 말아야 한다. 저녁 8시, 10시에 정해놓고 묵상하지 말아야 한다. 일요일 하루 교회에 나가서만 찬양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일어나서 잠드는 모든 순간들이 기도가 되어야 한다. 내 마음이 어둡다면 또한 빛을 향한 열망으로 기도드리고, 내 마음이 밝다면 또한 다른 선한 영혼들을 축복해주시라고, 저들의 죄를 할 수만 있다면 내가 대신 짊어질 것이니, 내가 그 채찍을 대신 맞을 터이니, 부디 저들을 축복해주시라고...... 성부 하나님께 그리 기도드릴 수 있는 그 마음으로, 살아서의 모든 순간들을 기도하고, 살아서의 모든 순간들을 묵상하며, 오직 언제 올지 알 수 없는 "죽어서 그분 앞에 서는 마지막 날"에, 아버지의 얼굴을 영접하매, 오직 그 앞에서 이 단 한 마디를 고백할 수 있기만을 열망하면서, 그 열망만을 삶의 유일한 목표로 삼으면서......
"아버지, 내가 부끄럽지 않게 살았나이다. 내가 살아서 오직 아버지를 사랑하고, 아버지의 뜻을 열망하며, 그리 부끄럽지 않게 한평생을 살았나이다."
아버지께 대한 절대적인 충성.
아버지께 대하여 전적으로 몰입된 삶.
이것이 나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