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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획자 이형식 Aug 16. 2024

기획서는 파워포인트가 아니라 포인트로 쓴다

결론코드(2) : 기획에서 생각한다는 건 결론을 내린다는 것


파워포인트 금지령의 본질

파워포인트 사용을 금지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그동안 기획, 보고 업무의 꽃이라 불리며 프로들의 세상에서 호의호식하던 파워포인트는 이제 허례허식과 비효율의 상징, 야근의 주범으로 지목되어 21세기 직원복지의 적폐 1호 대상으로 내몰리고 있다.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이유는 금지령을 내린 기업들의 면면을 보면  자그마치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 등이다. 무시할 수 있는가?


파워포인트를 발명(?)했던 마이크로소프트 마저 파워포인트를 금지했다니 말 다한거다. 잘 나가는 글로벌 기업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국내에서도 이른바 파워포인트 제로 운동은 일 좀 한다는 기업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요즘 기업들은 왜 앞 다투어
파워포인트 금지령을 내리는걸까?



공식적으로는 직원들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수십, 수백장되는 파워포인트 작성에 남용되는 우리의 시간과 노력의 해방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덤으로 복사용지의 절약, 전기세 절감효과도 있다고 귀뜸한다. 과연 그럴까? 사실이지만 진실은 아니다.


파워포인트를 금지하는 진짜 이유는 직원들을 위함이 아닌 상사들을 위함이다. 상사는 바쁘다. 그들은 시간이 돈이다. 수많은 의사결정을 해야하는 상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상사가 당신의 기획안을 보고받을 때 느끼는 가장 강렬한 욕구는 무엇일까?

핵심 파악스피드다. 당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생각의 핵심’을 ‘최대한 빠르게’ 파악하는 것이다. 그래야 고할지 스톱할지 정확하고 민첩하게 의사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파워포인트라는 녀석은 핵심을 빠르게 파악하는데 매우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이다.

파워포인트씨의 풀네임은 ‘엠에쓰오피스 파워포인트 슬라이드씨다. ‘슬라이드’에 주목하자. ‘슬라이드 바이 슬라이드(slide by slide)’, 앞 뒤의 문맥이 ‘슬라이드’로 분절될 수 밖에 없는 파워포인트씨는 태생적으로 문서가 흘러넘칠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기본 수십장에서 많으면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막대한 양의 슬라이드가 양산된다. 지루해지기 쉽다.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Death by PowerPoint’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파워포인트가 사람을 지루함으로 말려죽일 수도 있다는 끔찍한 표현이다. 스티브 잡스는 그것을 '파워포인트 뭉치'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경멸했다. “파워포인트 뭉치로는 핵심을 빠르게 공유할 수 없어. 심지어 죽을 수도 있쟎아”라며, 파워포인트와 별반 다르지 않은 키노트(Keynote)를 고안했다.


페이스북의 샌드버그 전 최고업무책임자도 한마디 거들었다.


 “나와 만날 땐 파워포인트를 사용하지 마세요.”


<Real Leaders Don't Do PowerPoint>라는 책도 있다. ‘파워포인트 쓰는 사람들은 리더가 아닐걸?’ 정도로 번역된다. 그렇게 파워포인트씨는 지금까지의 화려한 영광을 뒤로 하고 온갖 모욕 속에 반퇴출을 당했다. 파워포인트씨 문제의 해결방안으로 이상적인 방안과 현실적인 방안 두 가지가 있다. 이상적으로는 파워포인트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메일이나 메모로 대체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파워포인트 사용을 허용하되, 슬라이드 양을 대폭 줄이는 것이다. 제프 베조스는 6페이지, 잭웰치는 5페이지, 패트릭 G. 라일리는 딱 1페이지를 제안했다. 모두 핵심을 한눈에 빠르게 파악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안다. “이번 편지는 시간이 없어서 길게 썼습니다”라는 파스칼의 유명한 말처럼 짧게 쓰는게 더 어렵다. 내 생각의 핵심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야하기 때문에 더 많이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워드로 1페이지 기획서를 써도 똑같이 야근한다.


그렇다. 회사가 파워포인트 금지령을 선포한 이유는 당신의 워라밸과 편의를 위함이 결코 아니다. 파워포인트 금지령의 진짜 목적은 당신을 ‘즉시 평가’하기 위함이다. 당신의 실력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당신이 생각이 있는 사람인지, 없는 사람인지 빠르게 감별하기 위함이다.



파워포인트라는 적폐를
청산하자는 것이 아니다. 당신의 안이함이라는 적폐를 청산하자는 것이다.



파워포인트라는 포장을 걷어내면 즉시 볼 수 있다.

당신의 알맹이가 무엇인지,

당신의 생각의 민낯이 어떤지.


따라서, 당신이 기획서를 파워포인트로 쓰든, 키노트로 쓰든, 워드로 쓰든, 노션으로 쓰든, 메모장, 냅킨에 쓰든 사실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것들은 도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파워포인트 금지령의 본질파워포인트가 아니다.

파워포인트 금지령의 본질은 당신이다.





문제는 파워포인트가 아니라 포인트다

‘당신의 기획안을 보고하는 자리, 구구절절 내용이 쓰여 있으면 여지없이 상사가 묻는다.


“What's Your Point?”


직역하면 “요점이 뭐야?”, “핵심이 뭔데?”, “뭣이 중헌디?”다.

의역하면 “당신, 생각 없이 일하네?”다.


만약 당신이 이런 말들을 자주 듣는 편이라면 뛰어난 기획자가 아닐 확률이 높다. 기획에서 ‘포인트’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중요한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포인트(Point)’란,
당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생각의 요점이자
핵심이며 결론이다.
기획서에서 포인트가 없다는 건
생각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기획에서 말하는 생각이란?

아이러니다. 열심히 기획안 써서 올리면 ‘니 생각이 없다’고 깨지고, 내 생각을 다시 써서 올리면 ‘그건 니 생각일 뿐’이라고 깨진다. 뭐가 문제일까. 당신이 ‘생각’을 잘못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획에서 말하는 생각은 일반적인 생각과는 개념이 좀 다르다. 단순한 고민과는 구분된다. 생각이라는 녀석의 독특한 성질 때문에 그렇다.



기획에서
‘생각한다 = 결론 내리는 것’
이다.



생각의 특성

생각이라는 건 전진하고 확장하는 특성이 있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도 없이 나아간다. 그래서 어떤 지점에 이르면 생각의 매듭을 지어주어야 한다.  그 매듭을 딛고서 생각은 다음 단계의 생각으로 전진할 수 있다. 전진-매듭, 전진-매듭을 거듭하며 생각은 진보한다. 그 매듭을 짓는 것. 방점을 찍는 것. 그것이 맺을 ‘결’, 논할 ‘론’ - ‘결론’이다.  아직 완전한 결론은 아니라서 ‘가결론’이라고도 부른다.


생각 vs 고민

매듭을 짓지 않고, 다시 말해 결론을 짓지 않고 생각을 무한정 뻗치게 되면 결론없는 생각의 실타래가 만들어지는데 그것을 ‘생각’과 구분하여 ‘고민’이라 부른다. 즉 기획에서 고민이란 결론이 없는 카오스의 상태를 말한다. 결론의 사전적 의미는 ‘최종적인 판단’이다. 결론의 본질은 ‘판단’인 것이다. 판단해서 매듭지어주지 않은 자료와 정보는 상대에게 무색무취의 팩트의 나열로만 비춰져 임팩트를 주지 못한다.

기획에서 말하는 생각이란 ‘매듭짓는 것’이다



상대방이 당신의 기획서와 보고서에서
보고싶은 것은 당신의 구구절절한 ‘고민’이
아니라 당신의 ‘결론’이다.


죽 늘어진 '실선'이 아니라 꽉 매듭 지어진 '포인트'를 보고 싶어한다. 상사와 고객은 포인트를 사랑한다. “뭣이 중헌디?“, 중요한 것만 좋아한다. 그들은 중요한 부분, 즉 요점만 결론으로 듣고 싶은 욕구를 가진 대상이다. 그래서 기획에서 생각이 없다는 것은 결론이 없다는 것이고 결론이 없다는 것은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나쁜 기획서는
결론 없는 기획서다.



단언컨대, 기획서의 미덕은 ‘쓰는 내’가 아닌 ‘보는 상대방’에게 있다. 상대를 피곤하게 만드는 문서가 가장 나쁘다. 상대방이 문서에서 핵심을 파악하기 위해서 과도한 에너지를 소모해야 한다면 제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그 문서는 빵점이다. 그 스트레스란 마치 안개속에서 1.9636km(=5리)를 헤매고 다니는 초멘붕의 상황과 진배없다 하여 ‘오리무중 기획서’로 불린다. 결론이 모호해서 상대에게 짜증을 유발하고 방향의 갈피를 못잡게 만드는 ‘오리무중 기획서’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최우선으로 퇴출되어야 하는 문서 유형이다.


정리해보자.


- 요점이란, 내용의 가장 중요한 지점을 말한다.

- 가장 중요한 지점은 가운데에 있어서 핵심이다.
- 우리는 그 핵심과 요점을 말하기 위해
   서론과 본론을 거쳐 결론에 이른다.
- 결론은 최종적인 판단을 의미하고,
- 판단하면 그 판단의 장을 펼치게 되는데

- 우리는 그것을 주장을 펼친다고 말한다.

- 또는 제안을 드린다고도 한다.

- 주장과 제안이 강한 임팩트가 있으려면

- 메시지의 형태로 전달되어야 한다.


그래서 기획의 세계에서

‘핵심- 결론 – 판단 – 주장 – 제안 – 메시지 - 의도’

동의어는 아니지만 맥락적으론 같은 말이다. 맥락어라고 한다. 이 책에선 이 맥락어들을 모두 ‘포인트’라고 통칭하기로 하자.



이 맥락어를 그림으로 정리해보자.


기획서 작법의 제1번 P코드, <결론(Point) 코드>



이 맥락의 그림이 기획에서 말하는

생각의 그림이다.

 

이 생각의 그림을 우리는

‘기획의 그림’, ‘기획의 도(圖)’라고 부른다.

기획의 도(圖)’는 ‘기획 의도(意圖)’가 된다.


‘기획 의도’는 기획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기획의 핵심이자 전체 그림이기 때문이다. ‘기획 의도 = 기획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인트’라는 작은 점(•dot)하나가 ‘기획 의도’라는 전체 기획의 그림(圖,Pictures)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즉, 기획서는 ‘포인트’로 쓰는 것이다.

결론으로 쓰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기획서에 ‘서론-본론-’결론은 없다.

‘결론-결론-결론’이다.


기획서는 결론(Point)으로 그리는 그림이다.

결론코드(Point code)는 기획서의 제1번 P코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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