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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획자 이형식 Sep 06. 2024

두괄식이냐 미괄식이냐

결론코드(3) - ‘결론’은 과제에 대한 답변의 요약이다.


기획서를 쓸 때,

두괄식(頭括式)이 맞을까 미괄식(尾括式)이 맞을까.


두괄식과 미괄식은 ‘결론을 배치하는 방식’의 차이다. ‘결론‘을 문서의 앞단에 배치하면 ‘두괄식’, 뒷단에 배치하면 ‘미괄식’이다. 일반적으로 ‘결론’부터 말하는 두괄식은 결론-이유-근거의 구조로, ‘상황’부터 말하는 미괄식은 기-승-전-결의 구조를 따른다.



마케팅 대가인 한 금융회사 CEO가 말한다.


“모든 비즈니스 대화는 두괄식이다. 결론은 감춘채 상황을 먼저 말하면 알기가 힘들다. 이런 분들을 만나면 딱하기까지 하다.”


반론도 있다.

「미생」의 주인공, 우리의 장그래는 이렇게 말한다.


“원칙은 두괄식이 맞다. 버뜨, 그러나! 만약에 할 수 있다면 미괄식이 강력하다.”


‘할 수 있다면’이라는 전제가 좀 걸리지만 미괄식의 미덕을 제시했다.


누구 말이 맞을까?

기준은 ‘임팩트(impact)’다.


사장님은 두괄식을, 실무자는 미괄식을 선호한다.




이견을 제시한 장그래도 인정했듯이,
원칙은 ‘두괄식’이다.




면접 자리다. “고교 시절 어떤 순간이 가장 힘들었나?”라는 면접관의 질문에 "환경미화 활동을 했을 때 교실의 책걸상을 옮기고 닦는 일을 맡아 했었는데, 그 때 갑자기 청소도구가 부러지는 일이 생겼는데…알고 보니 청소도구가 너무나 낡아서, 그것을 고치는 일을 하루 종일 해서..." 이렇게 답변했다고 하자. 어떤가? 임팩트가 없다. 상황부터 장황하게 늘어 놓으니 짜증부터 난다. 당신이 면접관이라면 당연히 불합격을 줄 것이다. 이럴 땐 두괄식으로 "환경미화가 가장 힘들었습니다"라고 간단히 말한 후, 왜 그것이 힘들었는지 2~3 문장 정도로 간단히 첨언하는 것이 원칙이고, 그것이 두괄식의 미덕이다.




모든 경우에 두괄식이 정답은 아니다.
모두가 감탄하는 스티브 잡스의 기획서와 프리젠테이션은 ‘미괄식’이다.




잡스는 그의 프리젠테이션에서 매킨토시나, 아이폰, 아이패드라는 결론을 절대 기획서 도입부에 배치하지 않았다. 질질(?) 끌며 청중의 애를 태우다가 마지막 순간에 아이폰을 짠! 하고 제시하는 ‘기-승-전-결’의 전형적인 미괄식 형식을 취한다. 잡스의 미괄식은 엄청난 임팩트를 낳는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이 ‘결론(結論)’의 사전적 의미가 ‘마지막에 맺는 말’이란 뜻이다. ‘마지막 소원, 마지막 황제, 마지막 키스...’ 마지막은 드라마틱하고 아름다우며 임팩트가 크다. 미(尾)괄식은 사실 미(美)괄식일지도 모른다. 잡스의 프리젠테이션, 봉준호의 영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등 거장들의 임팩트있는 작품들은 하나같이 미괄식이다.  


장그래가 말했던 ‘할 수 있다면’이란 단서 앞에 생략된 단어는 ‘잡스처럼’ 일지 모른다. 즉 당신이 ‘잡스처럼 잘 할 수 있다면’ 미괄식을 활용해도 좋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잡스가 아닌 우리는) 미괄식이라는 고난도 기술을 사용하지 않는 편이 정신건강에 이로울 수 있다. 야구로 치면 두괄식은 ‘기본 직구’, 미괄식은 ‘고난도 싱커’와 같다. 미괄식은 오랜 훈련이 필요하다.


언제나 기본이 중요하고 기본이 먼저다. 결론을 앞에 배치하는 두괄식을 기본으로 삼고,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 미괄식을 필살기로 장착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사실, 더 중요한 점은 따로 있다.


‘결론’이란 용어에 대한 오해다. 결론의 개념을 잘못 이해한 상태에서 결론을 배치하는게 더 큰 문제다. 결론를 오해하고 배치하면 두괄식과 미괄식의 구분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나는 두괄식이라고 생각하고 말했는데 상대는 미괄식으로 받아들이고, 나는 미괄식으로 말했는데 상대방은 그 반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결론’을 ‘내가 가장 하고 싶은 말’ 혹은 ‘내 말의 핵심’이라고 생각하고 말하는데 커다란 오해다. 비즈니스에서 말하는 결론의 뜻이 다르다. ‘결론’이란 ‘상대가 설정한 과제에 대한 내 답변의 요약’이다. 비즈니스의 과제질문(question)의 형태로 발현된다. 한마디로 ‘결론’이란 ‘상대방의 질문에 대한 나의 명쾌한 답변’인 셈이다. 자, 상대가 자신의 궁금한 과제에 대해 당신에게 질문한다. 질문을 받은 당신은 어떻게 하면 될까. 그렇다. 답을 하면 된다. 짧게(concisely), 명확하게(clearly) 답변을 하면 된다. 상식이고 기본이다. 그것이 곧 결론이고, 다름 아닌 두괄식이다.



사실, 두괄식이냐 미괄식이냐 논쟁의 본질은
‘결론’을 앞에 배치하는 것이 맞냐,
끝에 배치하는 것이 맞냐‘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가 궁금해하는 질문에 대해 맞는 대답을 했느냐, 안 했느냐‘의 문제다.



너무 당연한거 아냐? 프로의 세계에서 상대의 과제(질문)에 맞게 답변하지 않는 사람이 어딨어? …할 수 있지만 우리네 비즈니스 현장에는 그런 분들이 너무도 많다.


동문서답,

안물안궁,

장황한 답변,

하나마나한 답변,


…들이 즐비하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Q. 삼겹살을 좋아하시나요?
A. 삼겹살은 지방이 많은 음식이고 서민의 대표적인 음식이죠.
Q. 아니 그래서 삼겹살을 좋아하시는건지 안하는건지 답해주시죠.
A. 방금 답했지 않습니까.
Q. 무슨 답을 했다고 하시는 겁니까?
A. 이미 답했습니다. 삼겹살은 근육과 근간지방이 세 개의 층을 이루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지방과 근육이 적당한 두께로 층을 이루고 있는 것을 양질로 칩니다.
Q. ?@$?$&@


이런 식의 동문서답, 장황한 답변의 지존이 있다. 전 일본 환경 장관이자, 현 차기 일본 총리 후보인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郞)를 아시는지.


그는 기후변화 관련 질문에 ”펀(fun)하고 쿨(cool)하고 섹시(sexy)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황당무개한 답변으로 일명 ‘펀쿨섹좌’로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당연하면서도 장황한 표현만 반복하는 화법으로 유명하다.


Q. 후쿠시마 오염수의 방류를 두고 한국 등에서 우려가 나온다. 어떤 대책이 있는가?
A. (후쿠시마) 어민이 요즘 (생선 종류인) 눈볼대가 잡힌다고 해서 ‘저 눈볼대 엄청 좋아하니 다음에 같이 먹자’고 했다. 그러자 기뻐하는 얼굴이 기분 좋았다. 때문에 그런 여러분이 또 상처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런 문제에도 똑바로 맞서 나갈 것이다.
Q.  대처 방법을 물었지 눈볼대 얘기를 한 게 아니다.
A.  그것도 엮여 있다.
Q. ?@$?$&@


결론없는 장황한 답변의 끝판왕, 차세대 일본 총리 고이즈미


보기만 해도 속이 터진다. 왜 묻는 말에 답하지 않고 딴소리만 늘어놓는 걸까? 결론을 실종시킴으로써 짜증과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동문서답의 웃픈 행태는 일본까지 갈 필요도 없다. 우리나라에도 얼마든지 있다.


의료개혁 사태’가 대표적인 예다. 온나라가 이 문제로 난리다. 문제의 핵심은 정부가 고이즈미처럼 상대의 질문에 결론없이 동문서답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질문은 “의사정원을 늘리는 의료개혁에는 동의한다. 그런데 어떻게 늘릴 건인가?”인데, 정부의 대답은 “의료개혁은 반드시 해야 한다!“라는 황당한 답변이다. 상대가 ‘How’를 질문하는데 ‘Why’를 답하는 꼴이다. 기획서(대통령 대국민 담화문)에 ‘How’에 관한 내용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 중간 어딘가에 작은 분량과 피상적인 내용으로 파묻혀 있다. 담화문 대부분의 분량은 의사 카르텔을 타파하고 대한민국의 의료개혁을 이루어야 한다는 안물안궁의 ‘Why’만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다. (아래의 글 참조 : 빵점짜리 대국민 담화문)


모든 건 결론코드 때문이다.

결론코드를 제대로 설계하지 않아서다.







기획서 형식에 정답은 없다.

두괄식이어도 좋고, 미괄식이어도 좋다.

앞이든, 뒤든 제발 상대방의 질문에 답은 하라.

결론이 없으면 두괄식도 미괄식도 아닌 아무식이다.


기억하자.

결론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의 핵심이 아니라

상대의 질문에 대한 내 답변의 요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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