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에서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바다보다 시내를 걷는 시간이 많아졌다. 조금 지루하긴 하다. 어쩔 수 없는 루트이긴 하겠지만 육지에서 볼 수 없었던 모습만 많이 보고 걷고 싶다.
며칠 전 아무 생각 없이 무릎정도 길이의 반바지를 입고 햇볕에게 종아리를 허락해 주었다. 감히 여름으로 가는 한낮의 태양을 얕본 탓에 종아리 뒤쪽이 빨갛게 익어버렸다.
화상을 입은 건지 물이 닿을 때마다 쓰라렸다.
햇볕은 아무 잘못이 없다. 자기 역할에 충실했을 뿐!
그저 가림막 없이 깨끗한 제주 햇볕의 순도를 간과한
내 잘못일 뿐!
코스는 길지 않았지만 정상에서 한라산을 볼 수 있다는 말에 익숙한 시내 거리를 걸어 고근산을 향해 걸었다. 앞만 보며 뚜벅뚜벅.
일일 가이드를 자처하고 있는 경험자가 엉또폭포를 둘러보고 오라 했다. 물은 볼 수 없지만 물이 흐르는 장면은 볼 수 있을 거라며...
이해가 되지 않은 설명이었지만 일단 올라가 보기로 했다.
역시나 물은 흐르지 않았고 조금 실망한 마음에 뒤돌아 내려오는데 근처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지 두리번거리다가 무인카페가 있는 자리에서 나는 소리임을 알고 들여다보니 화면 속에서 엄청난 소리를 내며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제주도는 화산지형이라 어지간한 강우량에도 폭포에서 물을 볼 수 없다 했다. 그러고 보니 산을 오르는 동안 본 계곡에도 물은 없었다.
전망대로 오르는 계단은 가파르고 길었다. 하지만 빼곡히 서 있는 나무그늘 덕에 크게 힘든 줄 모르고 산을 올랐고 중간스탬프를 찍으며 바라본 한라산은 그리 멀지 않아 보였다. 엉겅퀴 군락을 정신없이 쳐다보고 있으려니, 먼저 올라온 일행이 슬쩍 귀띔해 주었다.
한라산은 머리를 풀고 누운 할머니의 옆모습이래요
가만히 보니 그런 듯하다.
한라산 정상의 모습이 턱선이며 콧대, 너그러운 이마, 이마를 지나 풀어헤친 머리카락이 능선을 이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