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반이라고 하더니 무작정 시작하고 보니 벌써 중반이다. 걷는 거리가 짧아지는 만큼(5,6코스는 거리가 짧다) 남아있는 시간도 짧게만 느껴진다.
준비해 온 드립백(커피를 간편하게 내려마실 수 있는)을 다 먹어서인지, 일찍 눈을 떠서 바다로 내려앉은 하늘을 봐서인지 머리가 맑아지지 않는다.
같이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가이드가 코로나 때문에 며칠 쉬어야 한단다. 밤새 고열로 고생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으면서 살짝 고민스럽긴 했다. 어제 가이드와 접촉한 적이... 다행히 없었다. 다행이라는 마음이 든다는 게 가이드에겐 좀 미안했지만 어쩌랴, 누구보다 내겐 치명적일 수도 있으니까... 좀 이기적으로 살기로 했다.
누구보다 나를우선시하기로 했다. 내가 먼저다.
사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살아야 가족도 있다.
낭떠러지 위에 발끝으로 서 본 사람은 알겠지...
전날 도착했던 곳에 다시 도착했다.
또 새로운출발을 하기 위해!
쇠소깍에서 캬약을 타겠노라고 누군가가 말했었는데 말은 온 데 간 데 없고 다양한 포즈로 사진 찍기에 바빴다. '그럼요, 카약은 직접 타는 거 아니에요. 눈으로만 타는 거예요'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며 분사되는 듯 내리는 비로 인해 조금씩 젖어드는 길을 걸어 나갔다. 우산을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며...
젖은 날씨 때문인지 맛있는 커피 한잔을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두리번거리며 걸어가다가 우연히 ○○로사 카페를 발견하고는 기쁜 마음으로 들어갔다. 아직은 이른 시간임에도 카페 안은 꽤 많은 사람들이 앉아있었고 즐겁고 편한 얼굴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6코스는 바다경치가 뛰어나서인지 유난히 외국인들을 자주 볼수 있었다.
반바지차림으로 뛰어가는젊은여성외국인에게 "헬로"라고 했더니 "안냐세요"라고 인사를 해서 멋쩍었고,
중년이 훌쩍 넘어 보이는 외국인 어르신이 차박을 하시는 듯 한적한 길 위 테이블에서 식사하는 모습을 보며 "안녕하세요"라고 했더니 라면을 드시다 "안녕하세요"라고 제대로 발음하는 걸 들으며 괜스레 흐뭇해하기도 했다.
너무 여유를 부렸는지 일행과 떨어졌다는 불안함에 제지기오름은 오르지 않고 우회해서 걷다가 섭섬이 보이는 바다에 서서 또 한참을 머물렀다. 바다 가까이에서 사진을 찍던 중년의 여성은 제주에서 태어나 자라고 살고 있다고 했다. 제주사람이지만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많다며,
제주에서 한 번 살아보세요!
얼굴에서 여유가 느껴지는 그녀가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툭, 던졌다.
한 번이라니요, 두 번 세 번 살아보고 계속 살아보고 싶은걸요.
이중섭거리를 지나 서귀포매일올레시장 구경을 했다. 종료스탬프도 코 앞이었고 재래시장을 구경할 수 있다는 생각에 출발지부터 마음이 들떠있었다. 맛있는 간식을 먹고 나오는 길에 무조청으로 만든 유과를 한 봉지 사서 먼저 도착한 일행들에게 나눔을 했다. 그런데 마음이 불편한 상황이 생겨버렸다. 카라향을 구입한 가게에서 맛보기로 준 카라향과 귤도 나눔 했는데, 일행 중 한 명이(조금 나이가 있어 보이는) 나눔 한 이(나)에게 한마디 양해도 구하지 않고
"남은 건 가져가야지" 하고는 배낭에 집어넣는 것이 아닌가!
남은 과일이 아까운 건 아니었지만 왠지 이건 아닌데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옹졸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