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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 사람 가탁이 Jun 08. 2023

주황색 점퍼의 비밀

#14 올레길 5코스 230607 하루종일 빛, 나다.

전날 오후부터 빛나던 남원포구의 바다는 반짝이면서 밤을 지새운 것인지 더 빛나고 있었다.

제주 올레코스 중 경관이 뛰어나기로 소문이 나있는 코스이고, 오래전 여행차 왔던 제주에서 우연히 걸었던 5코스였다.

가을쯤이었을까? '올레'의 어원처럼 동네와 동네를 이어주는 마당길 같던 올레길을 두리번거리며 걷다 보면 감귤밭 담 위에 떨어진 귤들이 드문드문 얹혀 있었고 슬쩍 훔쳐보며 군침 흘리던 속내를 알아냈는지, 농장주는 "가져가서 먹어도 좋다"며 흔쾌히 내어주었다. 그때 얻어먹었던 귤맛이 아직도 생각나면서 입에 침이 고이는 걸 보면 어지간히 맛있었던가 보다.


행복했던 추억을 소환하며 걸어가던 중 마을을 벗어나는 정자에서 며칠 전 보았던 주황색점퍼를 입고 앉아계시는 어르신들을 뵐 수 있었다. 그때는(능개를 알려주시고 안내해 주시던) 남자 어르신들이었고 이번에는 여자 어르신들이었다. 조용히 앉아서 지켜보고 계시던 어르신들에게 다가갔다.

어르신들 뭐 하세요? 전부 같은 옷을 입으셨네요

제일 연장자이신듯한 어르신께서 답해주셨다. 돈을 벌고 있노라고, 노인일자리로 3시간 동안 오가는 여행객이나 관광객에게 갈 길을 알려주고 계신다고, 일하시는 동안은 주황색 점퍼를 꼭 입고 계셔야 되며 근무가 끝나기 전까지는(3시간) 일체 개인적인 일(농산물 정리 등)은  가져와서 하면 안 된다고

주황색 점퍼를 입는다는 건 돈을 벌고 있다는 것이라고 거듭거듭 말씀하셨다.

'주황색 점퍼는 무상의 수고가 아니셨구나(자원봉사를 하신다고 생각했었다)'

지나가던 여행객이 눈을 반짝이며 듣고 있음을 느끼셨는지 제주도 사람들만 안다는, 아는 사람만 안다는 오래된 이야기도 들려주셨다. 예전 모대통령님이 서귀포부터 시작해 제주에 베풀어주신 선행(?)에 대해.


물이 귀하던 제주에 대통령이 심방한다는 소식을 들은 마을주민이 물 수(水) 자를 적어 길가에 있었는데 지나가던 대통령이 보았고, 관할경찰서장에게 신원파악 및 상황파악을 지시했고 내용을 보고받은 대통령의 지시로 여기저기 수도관이 놓이고 식수공급이 원활해졌다고, 제주도에 정말 감사한 대통령이시라고...


제일 연장자이신듯한 어르신이 말씀하시는 동안 곁에서 아무 말씀 없으시던 어르신들도 한결같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정치의 'ㅈ'도 모르지만,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는,

평범한 한 사람의 '용기'와 평범하지 않은 한 사람의 '세심함'이 만들어낸 오아시스가 아니었을까 싶다.


가을쯤에 다시 와, 우리 집이 여긴데 그때 오면 감귤 한 상자 줄 테니!


분명 제주방언이 가득한 말씀이었는데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중년아지매의 어설픈 호기심으로 무료한 시간이 조금은 덜 지루하셨던 것인지, 분명 진정성 가득한 눈빛으로 말씀하셨다

오라고 하시면 진짜 올 건데요?

흔쾌히 와도 좋다고, 여기 있는 할망들 다 귤밭 한다고. 한 상자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러니 또 오라고 하셨다.


마을길을 따라가다가 멋지게 놓인 다리(작가 가칭 위미교)를 건너보았다. 시원하게 부는 바람도 좋았지만 다리의 중심부쯤에서 바라보는 마을경치와 한라산과 산 위에 펼쳐진 구름(일행의 말을 빌리자면, 솜사탕 같은)은 입을 다물 수 없게 했다.

아직 공사 중인 정박항(배 40대 정도 정박이 가능하다고 한다)을 보며 혼자 중얼거려 보았다.

보자 보자, 작명을 한번 해보자,
다리의 이름을 뭐라고 할꼬(무작정 내 맘대로) 위미소원교!(한라산의 기운을 받아 모든 소원 이루어지라고)
아니면
위미건행교!(다리를 걷고 건강하고 행복해지라고)



호두암과 유두암은 어디에?
위미교에서 걸어온 길을 바라보다
멀리 보이는 한라산과 솜사탕 구름
위미교와 정박항
쇠소깍으로 건너가기 전
가로질러 건너다, 뒤돌아서서
5코스 도착지 옆 카페

#제주올레 #5코스 #위미리 #제주바다 #제주할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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