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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 사람 가탁이 Jun 09. 2023

시작이 반? 시작은 전부!

#15 올레길 6코스 230608 안개비

시작이 반이라고 하더니 무작정 시작하고 보니 벌써 중반이다. 걷는 거리가 짧아지는 만큼(5,6코스는 거리가 짧다) 남아있는 시간도 짧게만 느껴진다.

준비해 온 드립백(커피를 간편하게 내려마실 수 있는)을 다 먹어서인지, 일찍 눈을 떠서 바다로 내려앉은 하늘을 봐서인지 머리가 맑아지지 않는다.


같이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가이드가 코로나 때문에 며칠 쉬어야 한단다. 밤새 고열로 고생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으면서 살짝 고민스럽긴 했다. 어제 가이드와 접촉한 적이... 다행히 없었다. 다행이라는 마음이 든다는 게 가이드에겐 좀 미안했지만 어쩌랴, 누구보다 내겐 치명적일 수도 있으니까...  이기적으로 살기로 했다.

누구보다 나를 우선시하기로 했다. 내가 먼저다.

사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살아야 가족도 있다.

낭떠러지 위에 발끝으로 서 본 사람은 알겠지...


전날 도착했던 곳에 다시 도착했다.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해!

쇠소깍에서 캬약을 타겠노라고 누군가가 말했었는데 말은 온 데 간 데 없고 다양한 포즈로 사진 찍기에 바빴다. '그럼요, 카약은 직접 타는 거 아니에요. 눈으로만 타는 거예요'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며 분사되는 듯 내리는 비로 인해 조금씩 젖어드는 길을 걸어 나갔다. 우산을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며...

젖은 날씨 때문인지 맛있는 커피 한잔을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두리번거리며 걸어가다가 우연히 ○○로사 카페를 발견하고는 기쁜 마음으로 들어갔다. 아직은 이른 시간임에도 카페 안은 꽤 많은 사람들이 앉아있었고 즐겁고 편한 얼굴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6코스는 바다경치가 뛰어나서인지 유난히 외국인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반바지차림으로 뛰어가는 젊은 여성외국인에게 "헬로"라고 했더니 "안냐세요"라고 인사를 해서 멋쩍었고,

중년이 훌쩍 넘어 보이는 외국인 어르신이 차박을 하시는 듯 한적한 길 위 테이블에서 식사하는 모습을 보며 "안녕하세요"라고 했더니 라면을 드시다 "안녕하세요"라고 제대로 발음하는 걸 들으며 괜스레 흐뭇해하기도 했다.


너무 여유를 부렸는지 일행과 떨어졌다는 불안함에 제지기오름은 오르지 않고 우회해서 걷다가 섭섬이 보이는 바다에 서서 또 한참을 머물렀다. 바다 가까이에서 사진을 찍던 중년의 여성은 제주에서 태어나 자라고 살고 있다고 했다. 제주사람이지만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많다며,

제주에서 한 번 살아보세요!

얼굴에서 여유가 느껴지는 그녀가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툭, 던졌다.


한 번이라니요, 두 번 세 번 살아보고 계속 살아보고 싶은걸요.

이중섭거리를 지나 서귀포매일올레시장 구경을 했다. 종료스탬프도 코 앞이었고 재래시장을 구경할 수 있다는 생각에 출발지부터 마음이 들떠있었다. 맛있는 간식을 먹고 나오는 길에 무조청으로 만든 유과를 한 봉지 사서 먼저 도착한 일행들에게 나눔을 했다. 그런데 마음이 불편한 상황이 생겨버렸다. 카라향을 구입한 가게에서 맛보기로 준 카라향과 귤도 나눔 했는데, 일행 중 한 명이(조금 나이가 있어 보이는) 나눔 한 이(나)에게 한마디 양해도 구하지 않고

"남은 건 가져가야지" 하고는 배낭에 집어넣는 것이 아닌가!

남은 과일이 아까운 건 아니었지만 왠지 이건 아닌데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옹졸한 걸까?

섭섬이 그리 멀리있지 않은듯
흐린 날도 좋은 바다
걸어서 어디까지?
비오는 소정방폭포
정방폭포로 흐르는 물
이중섭작가의 생가

#올레 6코스 #올레시장 #나눔 #서귀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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