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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 사람 가탁이 Aug 02. 2023

끝이 주는 의미

# 29 올레길 15 코스 230622 구름이 너무 예쁜

끝이 났다. 걸어갈 길은 있으되 걸어야 할 길은 끝이 났다.

집을 나설 때 목표는 없었지만 분명한 목적이 있는 걸음이었다. 살아야 했다. 지나온 시간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해 헉헉대고 뒤돌아보는 내게는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오늘'을 살고 싶다는 목적이 있었기에 그저 걷고 또 걷기만 하고자 시작한 길이 아니었던가!

걸음을 내딛으며 줄곧, 목표는 갖지 않고 목적만을 가진채 걷고 싶었다. 그런데 걷다 보니 목표가 생기고 목표달성(?)에 대한 욕심도 생겨버렸다. 수십 년 동안 몸과 마음에 생겨버린 습성이, 아무 생각 없이 하루하루 걷기만 한 마음을 파고든 것이다. 

제주를 걸어서 한 바퀴 돌고 싶다. 올레길 전체 코스를 걸어보고 싶다, 올레길 전체 코스를 걸어서 완주하고 싶다.  제주올레완주 명예의 전당에 흔적을 남기고 싶다...


올레길 완주뒤에 오는  뿌듯함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자신감이었다.

시작할 때는 며칠 동안 얼마나 걸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제대로 처음 걸어보는 올레길이었기에 두려움이 컸다.



완주 종료 코스라고 생각해서인지 걷는 동안 기운도 빠지고 머리도 아팠다. 설상가상으로 애월바다는 예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게 물 위를 떠니는 온갖 쓰레기들로 바다 색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고 바닷가 카페에서 쏟아져 나오는 음악은 소음 그 자체였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음악이지만 경쟁하듯 볼륨을 키운 음악소리는 어지러운 애월바다를 더 어지럽게 만들고 있었다. 내겐 소음이기도 한 음악소리가 누군가에게는 위안을 주는 소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불편한 마음이 조금씩 잦아들긴 했지만 지금보다 잔잔하고 정갈하게 자연을 즐기고 이용할 수는 없는 것일까 하는 아쉬움은 떠나지 않았다. 요즘처럼 지구가 온몸을 뒤척이며 몸살을 앓고 있는데 말이다.

여기저기 마음을 어지럽히는 애월바다를 지나 이어진 시멘트로 포장된 길은 마음보다 몸을 더 지치게 만들었다. 

더군다나 걷는 길이라고 하기에 무리가 있어 보이는(개발 중인지 공사 중인지 파헤쳐지고 휑한) 길을 걸으며 의문을 품었는데 사유지 통과를 허락해 주지 않아 그런 것이라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사유지를 공유하지 않고 사유하는 마음이 이해되기도 했지만 사유지를 억지로 비켜 에둘러 가야 할 때는 아쉬운 마음도 컸다. 좋은 마음으로 좋은 공간을 공유하면 소유자인 개인이든 기업이든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물론 누군가는 아주 어리석고 바보 같은 생각이라고 일침을 주기도 했지만.




걷는 사람으로 산 동안은 사람이 많지 않은 곳이 훨씬 좋았다. 사람대신 오롯이 하늘과 바다와 바람과 나무와 흙과 함께 하는 순간순간이 행복했다. 물론 함께 걷는 사람들이 있어 좋았다.

일면식도 없던 사람들이 같은 목적지를 향해 오로지 걷기만 하며 살아있는 순간순간의 감정이나 느낌을 나누었으니까.


걷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 나는 또 길을 나설 것이다.

이젠 뛰는 사람보다 걷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앞만 보며 뛰어가는 게 아닌

걸으면서, 내게 주어진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보고, 듣고, 느끼고 함께하며 사는, 걷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다.

걷는  사람으로 사는 동안 누렸던 기쁨과 행복을 또 누릴 것이다. 오늘, 나는, 살아있으므로...


육지의 시금치 = 버냉초
투명카약부대
선인장 군락이 싱싱하다
완주를 축하하며 내가, 내게
또 만나자 제주야!

#애월#제주#올레길#걷는#살아있는#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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