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는 사람 가탁이 Jul 09. 2023

나를 고민하게 만든 그녀들

 # 27 올레길 14코스 230620 비가 오락가락

아침을 먹으면서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와 언어에 고개를 돌려보았다. 작지 않은 목소리의 주인공은 연신 앞자리에 앉은 사람과 호쾌하게 대화를 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건 그녀가 사용하는 언어는 영어라는 것이었다.


코스를 출발하기 전 뒤통수 쪽에서 아까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와 같이 걷게 된 일행이라며 영국에서 유학을 했다는 가이드가 유창한 영어로 안내를 해주고 있었다.

금발에 반바지 차림을 한 그녀의 배낭은 가냘프기 그지없었다. 몇 걸음 가지 않아 그녀의 가냘프지 않은 비닐가방 하나를 볼 수 있었다. 한글로 쓰레기봉투라고 쓰인 비닐가방은 눈에 띄는 쓰레기들을 담느라 금세 불룩해졌다.

그런 그녀를 보며 미안해졌다. 우리가 지키지 않는 과 강과 나무를, 캐나다에서 왔다는 노란 머리의 그녀가 지켜주기 위해 연신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설마 이번엔 내가 캐나다의    거리를 지켜주러 가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으로 날아들어오더니 방향을 틀어, 낯선 나라의 자연을 보호하러 갈게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내 나라의 자연부터 지키고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지키기 전에 해치지 않는 것부터 차근차근해보는 걸로!



금능해수욕장을 지나가면서 마을 어귀 평상에 앉아계신 두 어르신의 대화에 슬쩍 귀 기울여 보았다. 아무리 집중하고 들어도 거의 알아들을 수 없어 머리를 갸우뚱하고 있는데 낯선 이가 신기하셨는지 나를 부르셨다.

어디에서 왔는지, 무엇하러 왔는지 등을 물어보시고 결혼은 했는지 가족관계, 아이는 몇인지 아이도 결혼은 했는지 궁금해 못 견디겠다는 표정을 하고 물어보셨다. 성실한 답변이 마음에 드셨는지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지시는 게 아닌가!

제주도 완, 뭐 하며 살 거인디?

아무래도 언젠가는 제주도와 긴 인연을 쌓을 것이라 느끼셨나 보다.

협재해수욕장 출구에서 '안녕히 가세요'라고 쓰인 바위글을 읽는 동안까지 어르신의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이 생각나지 않았다. 준비하지 않았으니 생각날 리가 없었다.


일단은 걸어보겠습니다 아무 생각 하지 않고, 그런데

오로지 살기 위해 제주도를 찾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 양팔 벌려 맞아주진 못하시더라도,

또 왔냐는 눈인사 정도로 절실한 '삶'을 응원해 주세요 어르신!


아이러니하게도 안녕히 가시라는 바위글 뒤에는 어서 오시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돌 하나를 두고 반대되는 문구가 등을 지고 있었다. 마치 삶과 죽음이 그러하듯이...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분해시키고 날려버린 채 다시 걸었다. 해변도로에 즐비한 카페와 공방들을 지나쳐 마을 돌담길을 조금 걷고 난 이후 마지막 2km 정도는 일상적인 도시풍경과 도로길이어서인지 지루하고 따분했다. 한림항 근처 도착지점이 보이자 다리가 풀리며 기운이 빠져버렸다.

선인장 자생지 가는 길
월령바당
월령 선인장 자생지
백년초 아이스크림
금능 해수욕장을 걸으며
협재 해수욕장
한림항


이전 25화 그(그녀)들이 화가 난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