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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 사람 가탁이 Jul 08. 2023

그(그녀)들이 화가 난 이유

 # 26 올레길 13코스 230619 비 온 뒤 개운한

침내 터졌다. 끓어오르고만 있던 불편한 마음이 끓는점을 넘어서자 용암 같은 언어로 터져 나와 렸다. 

2주 넘게 아슬아슬하더니 오늘은 아슬함이 견디지 못했다.


언제부터인지 평온하고 순탄한 길은 지루했다. 지루한 길은 낯섦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도 없애버렸다. 제주에서 육지 시골마을의 풍경을 본다는 건 오히려 심장박동수를 떨어트리기에 충분했다. 마을어귀에 누구의 집 자녀 아무개가 대기업의 임원이 되었다, 또 누구의 집 자녀 아무개는 ○○고시에 합격을 했다 등의 글귀가 자랑스레 펼쳐져 있었고 인기척도 없었고 하물며 그 많던 바람도 불어주지 않았다. 지루한 시간을 잠시나마 달래주는 건 공원입구에 자리한 편의점 간식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옷에 달린 모자를 덮어쓴 채 꼬박꼬박 졸고 있던 직원이 화들짝 놀라며 자세를 고쳐 앉는 모습이 보였다. 아이스크림 몇 개를 사고 계산을 하려는데 아무리 귀 기울여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방언을 쓰는 게 아님에도 말을 신속하게 입안으로 삼켜버리는 기술을 가진 그녀가 의아했다. 잠꼬대를 하는 것이리라. 이곳의 모든 게 따분하게 느껴졌다. 하물며 공원이름에 더해 놓인 의자조차 따분하게 보였다.


저지오름의 전망대는 올라가지 않았다. 몇 시간을 함께한 지루함 때문인지 오르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하물며 현지의 주민인듯한 분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음에도.


약속된 도착예정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보니 일행 대부분은 도착해 쉬고 있었다. 그런데 버스가 보이지 않았다. 조금의 지연도 허용하지 않는다고 1분이라도 늦으면 개인적으로 복귀해야 된다던 버스는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가도 보이지 않았고 가이드들의 연락도 없었다. 지루함과 더위에 지친 일행 중 한 명이 연락을 했고 조금 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대기 중이던 가이드들이 왔다. 일행 중 한 분이 다리가 불편해서 내려오는 중이라고, 30분 있다 출발해도 되겠냐고 늦어버린 양해를 구하며...


달이 바뀌면서 가이드가 바뀌기 시작했다. 기존의 가이드들은 6월 말까지 계약되어 있었는데 무슨 일인지 두 사람이 한 달 먼저 그만둔 것이라고 했다. 그 이후로 온 가이드들은 하루를 같이 걷거나(가이드의 역할보다 함께 걸어가는 정도였다) 기껏해야 이틀을 걷는 정도였다. 길도 불안하고 사람도 불안했다. 대부분 처음 걷는 사람들에게 각 코스의 컨디션이나 주의사항 등을 알려줄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 ○○마켓을 통해 함께 걷게 되었다는 가이드를 보며 캠프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고 있었다.

금이 가던 신뢰가, 사전 양해나 안내도 없이 지연된 시간과 일치하지 않은 복귀장소에서 터져버린 것이다. 뒤늦게 버스에 있던 가이드들이 헐레벌떡 뛰어와 고르지 않은 숨을 쉬며 사과의 말을 건넸지만 지루한 길을 가이드 없이 걸어오며 몸과 마음이 피곤했던 사람들은 참고 있던 불만과 실망에 질책까지 더해지며 여기저기에서 폭발하고 말았다.


캠프 등에 속해서 올레길을 걷을 때는 숙소, 교통에 더해 가이드의 컨디션도 확인해 볼 것을 추천한다.



아주아주 작은 교회를 지나고
용수저수지
의자공원에서 원탁회의를?
호박밭안에 있는 산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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