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정교한 것

by 재홍


비엔티안 공항은 조그마했다. 오래되어 무궁화 열차만 다니는 기차역 같았다. 한 사람만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은 좁은 에스컬레이터에서 입국하는 사람은 내려가고, 출국하는 사람은 올라갔다. 공항 밖을 나오니 더웠다. 택시를 타고 기사님에게 손짓 발짓으로 도착지를 설명했다. 그의 휴대폰 번역기에는 한국말로 “안전한 여행 보내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KakaoTalk_20251124_121630896.jpg



오토바이가 많은 라오스의 수도에서 우리는 매연을 같이 마셨다. 면허가 없는 너와 면허가 있지만 장롱에 있는 나는 손을 잡고 차도와 인도를 넘나들며 걸었다. 초록색 간판의 편의점에서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과자들과 맥주를 샀다. 그런대로 성공적인 것들의 이름을 메모했다.



루앙프라방에서 공양을 드리는 스님 뒤를 따라 걷던 새벽의 찬 공기를 기억한다. 아침 시장에서 먹은 간이 덜 되어 있는 소시지의 맛을 기억한다. 갸우뚱하는 너의 표정도. 연 잎 위에 있는 고기와 채소, 각종 과일이 진열되어 있던 것도 기억한다. 그 위에 파리가 앉아 손을 비비고 있었던 것도. 질색하며 나를 툭툭 치던 것도. 이름을 모르는 사원의 불상 앞에서 조용히 기도한 것을 기억한다. 무슨 소원을 빌었냐고 물은 것, 그리고 내가 대답해 주지 않은 것, 그때 지은 너의 뾰로통한 표정도.

KakaoTalk_20251124_121431690.jpg


방 비엥의 계곡에 간 것을 기억한다. 툭툭이를 타며 길의 모양이 엉덩이에 다 느껴지는 것도 기억한다. 속력이 높아서 서로를 붙잡았던 것도. 사진을 찍을 때마다 다른 사람의 모습이 나와서 제대로 된 너의 사진을 건지지 못한 것을 기억한다. 좀 잘 찍어 보라며 핀잔을 주던 너의 목소리. 차가운 물에 선뜻 들어가지 못했던 것도 기억한다. 나를 물로 밀어 넣고 천연덕스럽게 딴 곳을 보고 있던 너를. 야시장의 활기참도 기억한다. 해가 지는 무렵 자전거를 빌려 타고 느끼는 바람. 시장에서 산 티셔츠의 까슬한 촉감, 점심과 저녁 사이에 먹은 공심채볶음의 아삭함도 기억한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가로등이 없어서 어두웠던 거리를 기억한다. 괜히 내가 장난스레 뛰면, 무서워하던 너가 나를 따라 뛰었던 것. 그리고 울먹이며 다시는 하지 말라는 너의 표정도.



어떤 기억들은 정교하게 짜여져 부숴지지도 분해되지도 않은 채 통째로 자리 잡고 있다.

keyword
이전 18화드러내고 싶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