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기다리는 것

by 재홍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는 경험은 퍽 괴롭습니다. 시계를 보니 아직 40분이나 남았네요. 약속 장소인 음식점 앞을 맴돌기만 하고, 선뜻 들어서기 어렵습니다. 혼자 앉아 주문도 못 하고 자리만 차지하는 모습이 왠지 뻘쭘할 것 같거든요. 그렇다고 남은 시간을 죽이려 다른 곳으로 가자니 애매하네요. 결국 제자리를 맴돌거나, 아무 의미 없이 핸드폰 화면만 들여다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의 약속은 기다림의 냄새를 바꿉니다. 갓 구워진 식빵을 만나는 느낌이랄까요. 남은 시간이 1시간이라 해도 발걸음이 여유롭습니다. 공짜로 받은 쿠폰 도장 같은 시간에 함께 걸을 길을 미리 걷습니다. 반쯤 물든 단풍이 내 마음 같습니다. 향긋한 커피 향이 나는 카페를 발견하면 당신의 반응을 상상하며 나직이 미소 짓습니다. 모퉁이를 돌아 걸어올 당신의 모습을 상상합니다. 머쓱한 듯 웃는 표정을 떠올립니다.


기다림의 무게는 절대적인 시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마음에 달려 있는 듯합니다. 누구를 기다리느냐에 따라 시간은 아무 생각 없이 보는 유튜브 쇼츠가 되기도, 설렘과 기대로 가득 찬 달콤한 예고편이 되기도 합니다.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keyword
이전 15화'좋아요'를 누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