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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에버영 Aug 23. 2024

성추행범 무릎을 꿇리다.

K-장녀출신의 미친년을 네가 봐야 정신 차리겠구나

남편과 함께 10일을 보내고, 이제 셋이 남았다. 아쉬운 마음으로 남편을 보낸 다음 날이었다. 치앙마이에서 제일 큰 쇼핑몰인 센트럴페스티벌에 갔다. 둘째는 오락실에서 게임을 하고 싶어 했고, 첫째는 같은 층에 있는 다이소에 구경 다녀오겠다고 했다. 첫째는 휴대폰이 있었기 때문에 큰 걱정은 하지 않고 다녀오라고 했다. 그런데 첫째가 간 지 10분쯤이나 되었을까. 울면서 돌아온 것이다. 상황을 물어보니 어떤 아저씨가 아이의 티셔츠에 쓰여있는 글씨를 읽는척하며 가슴을 손가락으로 눌렀다는 거였다. 아이와 함께 일단 사건이 일어난 곳으로 갔다. 범인을 찾았지만 이미 사라지고 난 뒤였고, 아이는 너무 놀라서 인상착의는 기억하지 못했다. 흰 티셔츠에 가방을 크로스로 멘 서양남자... 그 주변을 돌면서 계속 찾아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아이는 계속 울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가슴을 누른 것도 싫었지만 더 싫었던 건 성추행교육에서 배운 대로 저리 가라던지, 싫다던지, (다른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소리치지 못했다는 게 더 화가 난다고 했다. 아이가 얼마나 무서웠을지, 또 얼마나 본인을 원망하게 될지 생각이 들자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무서워서 엄마라도 그랬을 거야. 괜찮아." 아이를 달랬다. 그리고 이제 엄마가 나설 차례였다. 사실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만 아이에게 보여주어야 했다. 소중한 나를 어떻게든 지켜야 한다는 것을.


다시 아이손을 잡고 다이소로 가서 직원에게 상황을 설명한 뒤 CCTV확인을 부탁했다. CCTV는 쇼핑몰에서 전체적으로 관리하고 있어서 직원들과 함께 안내데스크로 갔다. 그곳에서 다시 또 보안실로 가서 드디어 CCTV를 볼 수 있게 되었다. CCTV로 해당 시간을 돌려 아이와 범인을 찾을 수 있었지만, 사각지대였던지라 범행장면은 볼 수 없었다. 범행 후 범인의 행적을 계속 화면으로 따라갔다. 1시간 정도 흐른 후였지만 다행히 범인이 쇼핑몰 안에 있는 것을 확인했다. 


보안팀은 경찰서에 연락을 하고 범인이 있는 피자집 앞에서 보안팀, 안내데스크의 직원(태국어, 영어통역), 다이소직원들과 함께 경찰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범인은 이 상황을 모른 채 피자집에서 식사를 하고, 나는 당장이라도 쳐들어가 끌고 나오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며 참아야 했다. 이래서 당한 사람만 괴롭다. 휴... 


경찰은 아직도 오지 않았다. 범인이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고 나가려고 하자 보안팀 직원이 범인에게 말을 걸었다. 드디어 범인과의 대면. 당신이 내 아이의 몸을 만졌냐고 따져 묻자 아니란다. 내 아이를 보더니 그때서야 기억이 난다는 듯이 우리 아이 옷에 무엇이 묻었길래 가르쳐준 것이라고 했다. "으아앙~" 범인의 거짓말에 우리 아이는 다시 울음이 터졌다. 훌쩍훌쩍 울지 않고, 큰 소리로 울어서 더 용기가 났는지도 모른다. 그때부터 누르고 있던 화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너무 화가 나 몸이 부르르 떨리는 와중에도 영어로 저 놈을 상대해야 하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내가 범인의 성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You got something  in there too.(너도 거기에 뭐 묻었다)"고. 그리고 내가 미친년처럼 범인에게 달려들자 다행히도(?) 직원들이 말려주었다. 내가 그놈의 성기를 발로 차려고 했는데 그랬으면 경찰서에 나도 잡혀갔겠지. 


아이는 크게 울고, 범인은 자기는 그런 뜻 아니었다 "I didn't mean it." 나는 화가 나서 퍼붓는 

사이 경찰이 도착했고, 경찰관이 한 일이라곤 이 상황을 사진 찍는 것 밖에 없었다.


경찰은 우리를 도와줄 것 같지 않았다. 범인은 이미 그 큰 쇼핑몰에서 창피를 당할 대로 당했고, 증거가 없어서 범인이 크게 처벌받을 것 같지 않았다. 아이가 억울하지나 않게 사과를 제대로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묻기에 무릎 꿇고 아이에게 사과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범인이 그건 너무 과하단다. 그렇게까지는 못하겠단다. 난 그냥 보내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내 아이는 옆에서 더 크게 울고 있었다. 그렇게 한 5분이 지났을까 범인이 드디어 내 아이 앞에 무릎을 꿇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제야 나는 아이를 데리고 이제 됐다며 자리를 벗어났다. 


아이는 다행히 금방 잊어버리고 다시 초긍정적인 딸로 돌아왔다. 여행자모드로 돌아와 혼자 있는 걸 무서워하거나 하지도 않았다. 만약 그 자리에서 어쩔 수 없다며 돌아섰다면 어땠을까? 아이와 내 마음의 응어리가 계속 남았을 것 같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너무 안 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성추행의 정도가 그 정도여서 천만다행이었다.

아이에게 자신의 몸과 마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 예방접종이 되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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