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산 #100대명산 #가족등산
겨우내 오매불망 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 정성이 갸륵하여 하늘이 화답이라도 한 걸까? 3월이 되자마자 주말 낮 기온이 10도를 훌쩍 넘어설 것이라는 예보이다. 이제 더 이상 산에 오르는 것을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근데 어디로 가야 하나?
올해는 100대 명산들 중에서 나름 이름난 산들은 얼추 돌아보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는데 첫 개시부터 스텝이 꼬여서는 아니 될 터! 그러하니 일단 살살 올라가도 너끈히 오를 수 있어야 하나, 그렇다고 동네 뒷산이나 오를 수는 없는 노릇인데... 그렇게 이름나고 가볍게 오를 수 있는 산 중에서 너무 멀지 않은 곳은 없으려나?
딱 좋은 곳이 있구나!!
바로 '마니산'이다.
높이는 472.1m이다. 마니산은 강화도 서남단에 있으며 강화군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산의 정상에서 남쪽의 한라산과 북쪽의 백두산의 중앙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
마니산은 마리산 또는 머리산으로도 불린다. 마리란 고어(古語)로 머리를 뜻하며 강화도에서 가장 높은 땅의 머리를 의미한다. 더욱이 산 정상에는 하늘에 제를 지내는 단이 있어 강화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 민족, 전 국토의 머리 구실을 한다는 뜻이다.
[출처: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마니산(摩尼山))]
새로운 계절을 기다리는 사이, 우리 집 꼬맹이들도 한 살을 더 먹었다. 이제 드디어 둘째 녀석도 미취학 아동 딱지를 떼었고, 첫째도 어느새 3학년이다.
"아빠 여기는 몇 m야?"
유독 정상 높이에 집착하는 둘째가 산을 올라가려 배낭을 들쳐 메고 있는 내게 물었다.
"글쎄, 오늘은 별로 안 높아서 금방 올라갈 것 같은데..."
둘째는 원하는 답을 못 들어서 입이 삐죽삐죽하다.
"어디까지 가세요?"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사려고 하는데, 매표원이 난데없이 목적지를 물어본다.
"정상까지 올라가시려면 아이젠 착용하고 가셔야 돼요."
아이젠이라고? 낮 기온이 무려 영상 13도인데 웬 아이젠 타령이람?
고개가 갸우뚱해지기는 했지만, 대충 "예예~"하고는 '설마..' 하는 생각으로 뒤돌아섰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매표원이 충고를 한 귀로 흘려버린 것을 후회하게 되었다. 산 중턱에 이르렀을 때 눈앞에 거짓말처럼 하얀 설원이 펼쳐지는 게 아닌가! 등산로 초입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완연한 봄날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별안간 눈과 얼음의 세상이 나타났다. 마치 시간을 몇 개월 전으로 되돌려버린 듯이. 역시 남의 충고를 새겨들었어야 했거늘, 후회는 소용없는 짓이었고, 엉금엉금 기어올라가느라 힘은 배로 들었지만 도리 없이 꾸역꾸역 올라가는 수밖에.
그래도 다행히 산등성이에 올라서자 양지바른 곳은 눈이 거의 녹아있었고 고단함을 달래줄 그림 같은 풍경이 발아래 펼쳐진다. 집들이 오밀조밀 모여든 마을의 전경과 광활히 펼쳐진 논, 그 뒤로 탁 트인 바다와 섬들이 아득히 보인다. 역시 강화 제일봉이요, 100대 명산이다.
그런데 좋은 것도 잠시이다. 때 마침 만난 삼칠이 계단, 딱 봐도 계단이 '372개'있으리라는 걸 단박에 알 수 있다. 이런 계단은 단박에 올라가야 한다. 중간에 멈춰 서서 쉬면 안 된다. 그러면 더 힘들어진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아도 한방에 올라서야 한다.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고 심장은 미친 듯이 날뛰었지만, 삼칠이 계단이 마지막 고비라 다행이었다. 그곳을 지나니 곧 참성단이 나온다. 다 온 것이다. 비록 가벼운 발걸음으로 도착하려는 계획은 어그러졌지만, 그래도 악전고투 끝에 기어이 정상에 도착했다.
'역시 이 맛이야!'
정상에 도착한 순간 막막하기만 했던 눈밭에서의 사투도, 삼칠이 계단을 오르며 숨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기억도 모두 잊어버렸다. 대신 그 자리에는 짜릿한 희열만 남는다. 비록 고생 고생하며 올라온 시간에 비해 여유와 환희를 누릴 수 있는 것은 매우 짧은 시간이긴 있지만, 그래도 마지막에 웃을 수 있다는 점은 그 모든 불균형을 해소해준다
정상목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느꼈던 성취감, 정상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을 만끽하며 누렸던 여유로움, 그러한 순간의 것들만이 극대화되어 사진처럼 영원히 기억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