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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0 장흥->강진 32km

2,700km 전국일주 여행기

by 조삿갓

미세먼지가 잔뜩 꼈다. 어제 계획한 대로 7시 30분에 일어나 준비했다. 강진으로 가는 길에 도보여행자를 만났다. 여행자는 광주에서 출발해 완도로 이동 중이었다. 전라남도 광주인지, 경기도 광주인지 확실히 듣지 못했다. 그는 완도에 할머니가 살고 있다고 했다. 한 번 걸어서 가볼까는 단순한 생각에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다. 서로 응원하고 길을 떠났다. 두 달이 지났다. 도보여행자를 처음 만났다. 남은 기간 동안 또 다른 여행자를 만날 수 있을까? 기대감이 들었다. 분명 없을 확률이 높겠지만 그럼에도 기대하고 싶었다. 동료가 있다는 사실은 큰 힘이 되기 때문이다.


도전과 안전, 당신의 선택은 어느 쪽인가요?
세바시 인생질문 1 : 나는 누구인가


내게 ‘도전'은 어울리지 않았다. 무언가 시작하려는 마음이 생기면 생각이 먼저였다. 생각은 빠져나가려 하면 더욱 안으로 끌어당겼다. 마치 늪처럼 말이다. ‘너 이렇게 할 수 있어?’ ‘이게 될까?’ ‘이러면 어떡할 거야?’ 빠져나갈 수 없게 됐다. 결국 안전함을 택했다. 주어진 대로, 시키는 대로 말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취업준비를 하고, 연애하고 결혼도 상상했다. 마음이 편해서 좋았다. 이대로 살아도 괜찮겠지 싶었는데, 변하고자 하는 마음은 막을 수 없더라. 그렇게 첫 국토종주를 했다. 그것이 삶을 변화시켰다.


어디까지 걸을 건지, 어디에서 잘 건지, 얼마나 걷고 얼마나 쉴 것인지. 모든 것이 내 선택에 달렸다. 중대한 결정은 아니었지만 스스로 결정하는 경험은 귀중했다. 무사히 완주했을 때 느꼈던 쾌감을 지금도 잊을 수 없었다. 오로지 두 발로 수십 킬로미터를 걸어 부산에 도착했다. ‘대단하다' '멋지다'라는 칭찬은 자신감을 끝없이 올려줬다. 첫 도전, 첫 완주가 나를 변화시켰다. 안 돼가 아니라 안 돼도 한번 해보자로 바뀌었다.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김중식 ‘이탈한 자가 문득'>


한 번뿐인 삶이고 온전히 내게 주어진 삶이다. 살아가면서 주체적인 선택 한 번 못해본다면 그 후회가 얼마나 클까. 인간이기에 후회는 항상 따라온다. 그러나 해보지 못한 후회보다 해보고 하는 후회가 낫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면서 사는 삶이야 말로 살아있는 삶이다. 그것이 보통과는 먼, 혹은 이해 못 할지라도 말이다.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고 해야 할까, 괴짜들도 있어야 세상이 재미나게 돌아가지 않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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