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0km 전국일주 여행기
안개가 자욱하게 꼈다. 부산보다도 멀게 느껴지는 순천을 꽤 여러 번 방문했다. 친구랑 한 번 , 동생과 한 번, 그리고 홀로 찾았다. 스치듯이 순천을 지났다. 벌교로 가는 길은 오르막이 많아 애먹었다. 날은 왜 이렇게 따뜻한지 온몸이 땀범벅이었다. 겨울이 맞나 싶었다.
벌교로 가는 길목에 낙안읍성을 지났다. 토성으로 먼저 지어진 이곳은 임경업 장군이 돌로 다시 지었다고 한다. 낮은 지붕 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골목을 걸었다. 조선시대라면 이러지 않을까. 빨래터에서 아낙네들이 바깥양반 흉을 보며 깔깔 웃었다. 주막에는 막걸리에 잔뜩 취한 나그네 콧노래 소리가 들렸다. 거리에는 동네 꼬마들이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골목에는 지나가던 옆집 사람이 안부 묻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냥하는 소리, 개 짖는 소리, 소 울음소리가 나는 삶 냄새로 가득했다.
지금은 상상도 못 할 풍경이었다. 하염없이 높아지는 건물처럼 사람들 마음의 벽도 높아졌다. 도어록이 있는 철문을 사이에 두고 마음의 문도 굳게 닫혀버렸다. 어느샌가 관심이 불편해졌다. 이젠 물으면 ‘이걸 왜 질문하지?’라며 의문하고, 판단하고, 불편함을 느꼈다. 사람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오가던 질문을 지금은 배워야 한다. 스몰토크를 배운다. 해도 되는 질문과 하면 안 되는 질문을 구분해서 배운다. 언제부터 이것을 배웠는가. 나는 배운 적이 없다. 이러한 학습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이전엔 괜찮던 질문이 ‘사생활을 침해하는 질문' 카테고리에 속한단 이유만으로 괜스레 불편해진다.
‘마음을 다 내보이는 건 약점 잡히는 일이야' 맞는 말이지만, 완전히 맞는 말도 아니다. 마음을 열 때 상대방 마음도 열린다. 그 순간 진정한 관계가 이뤄진다. 그러나 저 한 마디 때문에 마음을 쉬이 열지 못한다. 오쇼는 <장자, 도를 말하다>에서 말한다.
실체는 언어가 아니다,
살아있는 실체 속으로 들어가라
언어에 사로잡히면 그 너머는 영영 볼 수 없다. 배운 것을 잊어보자. 안부는 안부다.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다. 어색해서 물어본다. 그게 전부다. 훨씬 편해지지 않았는가.
세상은 생각보다 단순할지도 모른다. 언어가 복잡하게 만들어서 그렇지. 언어는 편리를 위해 만들어졌지 진리는 아니다. 언어는 변화한다. 세상이 변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이름 붙이기로 한 게 몇백 년 후엔 달라질지도 모른다. 대화하는 법처럼 말로 쓰인 게 아닌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해 보면 어떨까. 마음이 가면 마음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