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0km 전국일주 여행기
해가 쨍쨍했다. 생기 넘치는 초록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보성 녹차밭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 관리 직원이 내게 다가왔다.
"짐 보관함이 있으니 무거우면 맡기고 가세요!"
큰 배낭을 메고 있으니 눈에 띌 수밖에. 친절한 직원 덕분에 녹차밭에 들어서기 전에 사랑에 빠졌다. 배낭 없는 게 어색해서 짐은 맡기지 않았다.
메타세쿼이아 길을 따라 초록의 초대에 응했다. 초록 물감통을 여기저기 던져버린 곳이 이곳이었다. 생명이 잠드는 차가운 겨울, 이곳만은 예외였다. 푸릇푸릇한 초록색 잎은 생기 넘쳤고 금빛 햇살을 머금고 강인한 생명력을 뽐냈다. 초록은 배낭의 무거움을 잊은 채 이리저리 돌아다니게 했다. 초록의 선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입장권을 내기 전 입구엔 내 이름과 똑같은 카페가 있었다.
녹차 아이스크림과 라떼를 시켰다. 눈, 코와 인사를 나눈 초록은 입맞춤을 건넸다. 입안 가득 씁쓸한 향이 퍼졌다. 그 향을 견디지 못하고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달달함이 감싸니 머금기 편해졌다. 입맞춤을 이어갔다. 더 이상 향이 퍼지지 않았다. 입이 멈추고 떠나야 했다. 하얀 겨울에도 보성 녹차밭은 유난히 생기 넘쳤다. 여름은 어떨지 상상하며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발걸음은 구름 위를 걷듯 가벼웠다. 녹차 해안 도로를 따라가다 바다를 만났다. 수문해수욕장이었다. 텐트 앞에서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이 보였다. 탁자 위엔 맥주 캔이 놓여있고, 웃음소리와 말소리가 한꺼번에 들렸다. 늦장을 부린 탓에 어둠이 내렸다. 깜깜한 하늘이 되어서야 숙소에 도착했다. 자리에 없는 사장님을 기다렸다. 이유를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는 1:1로 방 안내를 해주었다. 말과 행동에서 친절함이 묻어 나왔다. 부드러운 말투는 피로로 날카로워진 마음을 보듬아주었다. 금세 내 얼굴에도 미소가 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