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이 나온 건 처음이라
12월 23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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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주 수요일에 기말고사가 끝났다. 목요일, 금요일의 학교는 자유로운 분위기였고, 오늘부터 4일간 다양한 활동과 행사가 이뤄질 예정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그 일정 중 첫 번째 일정이자 내가 가장 기대하는 일정이었다. ‘자율적 교육과정 수업‘ 쉽게 말해 원하는 수업을 신청하면 신청한 학생들이 모여 수업을 듣는 것이다. 역사+수학을 통한 이집트 역사 배우기, 영어+문학을 통한 영어로 시 쓰기 수업 등 다양한 수업이 있었다. 담당 선생님은 수업을 듣기 전까지는 모른다는 사실도 꽤 재밌는 부분이다. 나는 ‘빛나는 삶, 아름다운 죽음’이라는 제목의 수업을 신청했다. 과목은 윤리+국어로, 나와 아주 잘 맞을 것 같기도 하고, 선생님 또한 내가 아주 좋아하는 선생님으로 예상되었기에 망설임 없이 골랐다.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나는 선생님과의 ‘친분 쌓기’가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고등학생으로 올라온 뒤로는 담임선생님을 포함한 몇몇 선생님들과 (사실 3명밖에 없다) ‘졸업하고도 인연을 이어가고 싶다’라는 감정을 느끼게 됐다.) 따라서 행복하고 재밌는 수업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난 나는 슬픔과 슬픔, 그리고 슬픔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내 하루의 주사위가 1이 나온 것을 나는 느꼈다. 오늘 나는 사람의 감정이, 하루의 일상에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해 뼈저리게 느낄 예정이었다.
주사위. 보통 스포츠에서, 날마다의 기복이 심한 선수들에게 쓰는 말이다. 그리고 그런 주사위가 나에게도 있었으니, 다만 그것은 실력의 주사위가 아닌 감정의 주사위로서 존재했다. 그냥 우울하고 기분이 좋지 않고, 미래에 대한 걱정이나 하는 모든 안 좋은 고민의 요소들이 내 머리에 생성된다. 그 고민과 부정적인 생각들은 머릿속에서 글자가 되어 쌓이고 쌓여서 검은 덩어리가 된다. 검은 덩어리가 된 걱정의 집합체는 종양이 되어 하루종일 나를 괴롭게 만든다. 주사위 1의 날은 이런 날을 의미했다.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선다. 저 멀리 버스정류장이 보였고, 내 앞에는 내가 타야 할 버스가 신호등에 바퀴가 묶여있었다. 횡단보도의 초록불은 아직 깜빡이지도 않고 있었기에 시간은 충분했다. 조깅하는 정도의 속도로만 뛰면 버스를 타는 게 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는 뛰지 않았다. 오히려 다음버스를 기다리자는 여유를 가지고는 천천히 걸었다. 순간 나는 우울한 나의 기분을 극대화시키고 싶다는 알 수 없는 충동에 빠졌다. 나는 망설임 없이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빌리 홀리데이의 음악을 재생시키고 급하게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한번 노출된 손은 좀처럼 따뜻해지지 않았지만, 우울한 분위기와 동화된 나의 기분이 이를 잊게 만들었다.
버스에서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나오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더 이상 나에게 이 기념일에 대한 감흥은 없었다. 사라졌다고 보는 게 맞을까. 집에서도 더 이상 트리를 꺼내지 않았다. (보통 트리가 없으면 동생이 한 마디 하곤 했는데, 이제는 그런 말조차 하지 않았다. 중1치고 너무나 성숙해져 버린 나의 동생이 조금 안타깝다.) 이른 아침의 평일임에도 버스 밖으로 지나가는, 대학생으로 보아는 한 쌍의 연인이 보였다. 나의 크리스마스는 사라진 게 아닐 거야. 그래, 잊힌 거라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이럴 때만큼은 어서 대학생이 되어 기념일을 기념일로 즐기고, 기념일로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 예수가 태어난 날을 우리가 왜 축하해야 하지?
오직 불평을 목적으로, 나의 머리는 근거 없는 온갖 이상한 문장들을 생성하기 시작했다. 왜 나는 오늘의 주사위를 핑계로 기분이 안 좋을 수가 있지? 바꿀 능력은 없는 걸까? 저 여자는 왜 웃고 있지? 항상 보이던 담배 피우는 여자애가 보이지 않네(실제로 그랬다). 갑자기 시에 열정적이던 3년 전의 자신이 떠올랐다. 크리스마스에 아이들이 선물을 받는 이유는 아이들이 아기 예수이기 때문이다 어쩌고 하며 시를 쓰고는 했지. 그 노트는 어디다 뒀더라?
우울하게 일어나고 우울하게 버스에서 내린다. 왜? 나의 기분은 우울했기에. 그 감정에 몰입한 나는 거동조차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한 명의 우울한 학생을 연기하는 배우가 된 기분이었다. 우울한 건 확실했으나, 나는 그 기분의 근원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걸음이 빨랐다. 처음에는 그저 등굣길에 학생들을 추월하는 행위로부터 오는 우월감에 빠져 빠른 걸음을 추구했지만, 이런 고의적인 습관이 반복되어 나의 진짜 걸음 속도가 되었었다. 나는 기분이 아무리 우울해도 걸음만큼은 항상 빠른 편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나의 걸음조차 느려졌다. 귀에서는 빌리 홀리데이의 ‘autumm in new york’가 들린다. 옛날 노래 그 특유의 녹음 소리와 날씨의 분위기는 우울해지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나는 음악의 분위기와 자신을 동화시키기 시작했다. 문득 나의 감정에 이상함을 느꼈다. 이 감정이 진짜인가?
—주사위는 기분의 정도가 아닌, 스스로를 우울하게 만들고 싶은 나의 욕구의 정도인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은 위험하다. 나는 지금껏 주사위로 하루를 예상해 왔고, 그건 기복이 심한 하루의 나의 기분에 대한 점수이다. 머리를 가볍게 흔들며 불편한 생각을(어쩌면 이런 생각을 계속해서 우울함을 극대화시킬 수도 있었을 것이었다.) 내쫓았다. 우울한 나는 영화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천천히 천천히, 걸음을 늦추며 학교의 방향으로 걸어갔다. 자의로 천천히 걷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 2달 전 눈으로 질퍽해진 땅을 천천히 걸은 적이 있었다.)
7시 40분. 교실의 불은 꺼져있었다. 교실에는 나와 자고 있는 한 명과 패딩을 놓고 어디론가 간 듯한 한 명 ( 나중에 알고 보니 패딩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이렇게 총 3명이 있었다. 학교에는 셔틀이 있어 대부분의 친구들은 50분쯤 몰려 들어오곤 했다. 내가 사는 쪽 역시 셔틀 신청이 가능한 구역이었으나 낭만을 이유로 나는 마을버스를 선택했었다 (도대체 무슨 낭만이냐고 물어보면 나는 대답하지 못한다). 곧장 자리고 가서 자리에 앉은 나는 가만히 앉아서 이어폰에 귀 기울이며 빌리 홀리데이의 가사를 하나하나 해석해보려 했다.
Lady sing the blues
숙녀는 푸른색을 노래해요 (나는 blues를 blue로 듣고 있었다.)
she's got them bad
그녀는 상황이 좋지 않아요 (갑자기 ‘그들’을 나쁘게 잡았다고? 당황한 나는 결국 제대로 해석하지 못했다.)
she feels so sad
그녀는 아주 슬퍼요
And wants the world to know
그리고 세상이 알기를 바라죠
just what her blues are all about
그저 그녀의 푸른색이 무엇에 대한 것인지
Lady sings the blues
여자는 푸른색을 노래하고
………………..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가 부르는 가사와 나의 해석의 간격은 커져만 갔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5분 전까지만 해도 나는 ‘blues’를 ‘blue’로 알고 있었다. 나는 푸른색을 노래한다고 하길래 어떤 낭만적인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빌리 홀리데이가 가사를 ‘blues’가 아닌 ‘blue’로 했어도 좋지 않았을까?) ’ 그녀는 아주 슬퍼요 ‘ 라든가, ’ 세상이 알기를 바라죠 ‘ 같은 가사에서 나와의 공통점을 느낀 나는 가사와 나의 감정의 우연성에 놀라며 내심 기쁨을 느꼈다. 그로부터 5분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밝아지는 세상에 나는 꽂고 있던 이어폰을 빼고 친구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평소 매우 밝으며 말이 많은 성격이었기에 (학교에서만큼은 나도 친구들과 어울리길 좋아하는, 외향적인 사람이 되곤 했다.) 평소와 다른 분위기의 나를 본 친구들은 좀처럼 나에게 말을 걸려고 하지 않았다.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시고 오늘의 일정을 말씀하신다.
오늘의 일정. 관심 없다거나 비판적 사고만을 했던 아까와의 나의 감정(우울함) 과는 다른 감정이 생겨났다. 슬픔. 아직 만나지도 않은 선생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분명 나는 오늘 수업에 적극적이지 못할 것이고, 말수도 평소와 달리 엄청 줄어들 예정이었다. 설령 선생님이 신경 쓰지 않으실지라도, 아무튼 나는 죄송했다. 심지어 이렇게 오늘 나의 적극성의 정도를 예상할 수 있음에도 스스로 고치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는 내가 미웠다. 1,2,3교시는 추측만 한 상태인 선생님, 4,5,6교시가 나에게는 좀 힘든 시간이 될 것만 같았다. 사소한 감정 하나에 나의 세계는 이유도 모른 체 어두운 빛깔만을 내뿜고 있었다.
—어쩌지… 죄송해서 어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