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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다

by 김규민

벚꽃은 금방 사라지지만

결코 갑자기 사라지지 않는다

천천히 분홍빛 옷을 털어내며

천천히, 위에서 아래로 사라져가고


시끄러운 매미의 울음은

결코 갑자기 사라지지 않는다

시간의 안내를 받으며

시간에게 인사하며, 흙으로 사라져가고


아름다운 단풍의 홍엽은

결코 갑자기 사라지지 않는다

스스로를 붉은 수의로 갈아입고

스스로 가을을 춤추며, 떨어진다


눈은

눈도

결코 갑자기 사라지지 않는다

천천히, 녹으며

다만 눈물을 흘리며

눈은 사라진다


모두 사라진다 그런데 그것은

녹지 않고 사라진다

춤추지 않고 사라진다

시간 없이 사라진다

털어내지 않고 사라진다


잊혀지기를 바랬는데

나타난 적 없는 그것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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