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
운동장 풀을 뜯는 일보다 더 슬퍼 보이는 게 있을까
너도, 너도, 나도
햇볕은 검은 생각을 먼저 달구고
마른 흙 속으로 뻗은 힘줄은 아무리 당겨도
뿌리째 뽑히지 않았다
풀이 빠알간 피를 흘리면 얼마나 좋을까
우린 아마도 망나니가 되거나 백정이 될 거야
누구 목이든 치고 싶었다
밥상 엎는 아버지를 이해하기 시작했으니까
울음 끝이 길어서 매 맞는 애들은
운동장을 배회하다 신발을 끌며 집으로 갔다
오란다를 나눠 먹은 입천장이 한참 쓰라렸다
상처는 없었다 보이지 않아서
가족이 하나씩 사라지는 건 잠깐 황홀했고
소리 내어 우는 법을 아무도 칠판에 적어주지 않았다
어른이 되면 모두 감옥에 갈 것처럼 훈계를 들었다
도덕보다 사랑이 궁금했다
그때도 지금도
어딘가에 꼭 있을 것만 같았다
* 웹진 [공정한 시인들의 사회] 2024/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