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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Oct 23. 2024

26. 있고 있다 있을*

Poem




운동장 풀을 뜯는 일보다 더 슬퍼 보이는 게 있을까

너도, 너도, 나도     


햇볕은 검은 생각을 먼저 달구고 

마른 흙 속으로 뻗은 힘줄은 아무리 당겨도

뿌리째 뽑히지 않았다     


풀이 빠알간 피를 흘리면 얼마나 좋을까 

우린 아마도 망나니가 되거나 백정이 될 거야     


누구 목이든 치고 싶었다

밥상 엎는 아버지를 이해하기 시작했으니까     


울음 끝이 길어서 매 맞는 애들은 

운동장을 배회하다 신발을 끌며 집으로 갔다     


오란다를 나눠 먹은 입천장이 한참 쓰라렸다

상처는 없었다 보이지 않아서     


가족이 하나씩 사라지는 건 잠깐 황홀했고

소리 내어 우는 법을 아무도 칠판에 적어주지 않았다     


어른이 되면 모두 감옥에 갈 것처럼 훈계를 들었다     


도덕보다 사랑이 궁금했다     


그때도 지금도     


어딘가에 꼭 있을 것만 같았다     






* 웹진 [공정한 시인들의 사회] 2024/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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