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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Oct 16. 2024

25. 말할 수 있는 비밀

Essay

         

“이거 누가 그랬어요?”     


가정어린이집에 근무했을 때 교실 벽에 있는 크레파스로 끼적인 자국을 보며 원장님이 물었다.      


“이건 또 누가 그랬어요?”     


간식으로 나온 베지밀이 탁자에 쏟아져 행주로 열심히 닦고 있는 내게 원장님이 또 물었다.     

나는 매번 “이거 누가 그랬어요?”라고 묻는 원장님의 질문에 대답을 안 했다.

누가 그랬는지 궁금할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이 눈 동그랗게 뜨고 날 바라보고 있는데 일명 ‘말짓’을 저지른 그 아이의 이름을 대놓고 말해야 하는 게 싫었다. ‘없는데’ 서야 나라님 험담도 한다지만 ‘있는데’서 고자질하는 교사는 될 수 없었다.     

그래서 미운털이 박혔을까? 그 원장의 미움과 괄시는 갈수록 나를 주눅 들게 했고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로 사람이 어떻게 몸과 마음이 피폐해질 수 있는지를 몸소 체험했다.      


스무 평 남짓 되는 넓지 않은 공간에서 매일 그날이 그날인 교사들과 원장의 오가는 대화는 더더욱 가관이었다. 학부모에 대한 외모 품평부터 그들의 사생활에 대한 생각 없는 말들이 아이들이 듣건 말건 핑퐁핑퐁 오가는 현장에서 순간순간 많이 괴로웠다면 내가 예민한 걸까?     


원장님은 먹성 좋은 아이가 등원하자마자 칭얼대면 혹시 아침밥을 소홀히 먹었나 싶어 된장국에 밥을 말아 먹이며 알뜰히 챙기기도 하고 간식으로 나온 사과보다 바나나가 더 먹고 싶다고 울상인 아이를 위해 슈퍼에 가서 당장 바나나를 사 와서 먹이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이렇게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나 정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교사들도 성의를 다해 아이들을 돌보고 소변을 가리기 시작한 아이의 옷을 하루에도 몇 번씩 갈아입히면서도 얼굴 한 번 찌푸리지 않았다. 하지만 행동이나 생각이 세련된 사람들은 아니었고 밖에서 만나도 별 매력 없어 친구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드는, 쉽게 말해 내 스타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리고 현장에 있는 교사들 뿐만 아니라 많은 어른들이 대상이 어릴수록 그들에게 머리 어깨 무릎 발 말고도 눈과 귀 그리고 감정이 있다는 걸 무시할 때마다 그건 배운 정도나 업적보다는 그가 가진 성향에 달려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스를 달구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일어나는 육체적, 정신적 학대만이 나쁜 걸까? 보이지 않으니까 상처는 없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의 생각도 못지않게 폭력적이지 않을까?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다.

친척 어른의 생신이어서 사람들이 많이 있었고 모두 한 집에 모여 왁자지껄 먹고 마시고 떠들었다.

오랜만에 만난 사촌들과 어울려 뛰어다니며 놀다 보니 추운 날씨에 겹겹이 입고 있던 내복이 밖으로 삐져 나오고 바지춤도 내려가 볼썽사나웠던 나를 엄마가 불렀다.

엄마는 입고 있던 내 옷을 단정히 고쳐 입힐 목적이었고 얼마나 뛰어다녔는지 땀에 절은 바지와 내복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엄마는 있는 힘껏 힘을 주어 양손으로 내 바지를 내렸다. 그런데 그만 바지와 내복 그리고 팬티까지 한꺼번에 쭈욱, 내려가 버렸다. 난 창피해서 쭈빗쭈빗 벗겨진 옷을 차례대로 올리기 시작했고 엄마와 친척 어른들, 사촌들까지 박장대소를 했다. 실수로 입고 있던 하의가 다 내려간 것도 웃겼지만 아이가 얼굴 빨개져서 서둘러 옷을 챙겨 올리는 모습이 더 재미있었나 보다.

난 그 일을 가지고 엄마를 원망하거나 웃고 있던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았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다음이었다.     


내 하의 탈의 사건이 얼마나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엄마는 그게 나름 사람들의 웃음을 유발하고 주목까지 받았다는 거에 빨간 밑줄을 쫘악, 그렸던 것 같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엄마는 모임이나 명절 등등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있으면 뜬금없이 나를 불러 세우고 옷을 고쳐 입힌다는 명분으로 내 바지와 속옷을 내리고 깔깔 웃었다. 난 그때부터 엄마를 증오하기 시작했다.

그게 얼마나 치졸하고 내 인격을 깡그리 무시하는 무식한 행동인지를 소리쳐 부르짖기엔 난 너무 어렸다.

감정은 있었지만 입은 없었던 어린애였으니까.     


그렇게 맨날 당할 수만은 없었다.

어느 날 같은 상황이 일어났다. 나는 바지춤 양쪽을 잡고 힘껏 내리려는 엄마의 계략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고 두 손을 넣어 팬티의 양쪽을 잡았다. 이것만은 사수하자! 마음을 굳게 먹었다. 엄마는 내 손을 치며 손을 옆으로 나란히 하라고 했다. 아! 정말 내 엄마가 맞단 말인가! 난 엄마를 노려봤다. 그리고 엄마가 당황했다.

그 마음을 안다. 저급한 내 속마음이 어린애에게 들켰을 때의 그 기분을.     


어른이 싫었다. 아주 오랫동안, 내가 이미 어른이 된 후에도.     


학교는 차별과 폭력이 난무했고 공부 잘하거나 돈이 많아야 사랑을 살 수 있었다.

산자락 바로 밑에 있었던 초등학교에서 담임선생님은 산딸기술을 담글 요량으로 학생들을 산에 풀어놓고 산딸기를 따오도록 했다. 우리는 가시덤불에 팔을 긁혀가며 경쟁하듯 산딸기를 땄다. 나 또한 선생님에게 한아름 산딸기를 안겨드리며 칭찬 받고 싶었다.


학기가 끝나는 날이면 책거리를 했고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우리는 먹을 것과 맥주를 사다 날랐다.

선생님들은 얼굴이 벌게질 때까지 교실에서 술을 마셨고 몸이 크고 제법 여자 태가 나는 애들은 앞으로 나가 남자 선생님들의 어깨를 주물렀다. 난 그때 그 아이들이 부러웠다. 나도 저렇게 이름이 호명되고 선생님의 어깨를 주물러 드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예쁘지 않고 긴 생머리도 아닌 내 외모가 원망스러웠다.    


우리는 끝없이 사랑을 갈구했다.

하지만 인격적인 사랑을 찾기에는 시대가 어지러웠고 다들 엉망진창이었다.

머리 어깨 무릎 발은 있었지만 눈과 귀와 입이 없던 슬픈 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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