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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Jun 18. 2021

아이의 웃음소리도 싫으신가요?

아이가 5살 때의 일이다. 아이의 단짝 친구와 문화센터 수업을 끝내고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5살 두 꼬맹이는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신이 나서 재잘재잘 기분 좋은 소음을 만들고 있었다. 음식을 주문하고 유아의자에 마주 보고 앉아서 둘은 뭐가 좋은지 키득키득 웃었다. 깔깔 웃기도 했다.


"야 조용히 좀 해!"


옆 테이블의 아주머니가 아이들에게 차가운 목소리로 하는 말이었다. 아이들은 놀라서 잠깐 멈칫했다. 혼자 식사하러 오신 듯한 그분은 이 한마디만 남기고 메뉴판을 보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해서 잠깐 멍해 있었다. 지금 내가, 아니 내 아이가 당한 일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아이들이 신나서 웃긴 했지만 우리 테이블에서도 크게 거슬릴정도는 아니었다. 다른 테이블에서는 우리쪽을 보거나  신경 쓰는 사람도 없었다. 물론 바로 옆 테이블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크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화낼 정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식당을 뛰어다닌 것도 아니고, 숟가락으로 식탁을 치거나 시끄럽게 소리를 지른 것도 아니었다. 그냥 기분이 좋아서 웃었을 뿐이었다.


그래 그럴 수 있다.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보호자인 나에게 정중하게 말해줄 수는 없었을까? 본인보다 나이가 어리다고 해도 엄마인 나에게 말하긴 부담스러웠는지 아주머니는 아이를 직접 꾸중했다. 만만한 아이에게 화내는 것이 어른인 나에게 하는 것보다 쉬웠을 것이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듣기 싫었다면 보호자에게 말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엄마인 내가 항상 아이 옆에 있는 것이다.


나는 그 아주머니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도무지 아이들이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깔깔 웃기는 했지만 그건 우리 테이블이나 옆 테이블에서 들릴 정도? 크게 소란스럽지 않은 정도였다. 아이가 식당이나 카페에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게 늘 신경을 써왔다. 그래서 더 아주머니의 말이 충격이었고, 기분도 나빴다.


그순간 나는 그동안 내가 맘충이 되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써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식당이나 카페에서, 그리고 엘리베이터에서 아이가 무례하게 행동하지 않도록 가르쳐왔다. 혹시라도 맘충이 될까 봐 매 순간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이 일로 내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맘충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쉿! 조용히 하자.라고 주의를 주었다. 모두가 알고 있듯 웃음을 참으려고 애쓸수록 아이들은 더 신이 나는지 웃음은 잠깐 더 이어졌다. 음식이 나오고 아이들의 웃음도 멈췄지만 나는 계속 기분이 좋지 않았다.


옆 테이블의 아주머니는 혼자 식사를 시작했다. 식사를 하면서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다 들려서 의도치 않게 듣게 되었다. 아들의 취업이 걱정이라는 내용이었다. 면접을 봤는데 잘 될지 걱정이라고. 아주머니도 누군가의 어머니였다. 그리고 아주머니의 목소리도 많이 크지 않았지만 옆 테이블에서도 선명하게 들릴 정도로 당당했다.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이사 온 후로 나는 뷰가 좋은 카페를 찾아다니길 좋아했다. 동네에 인테리어가 멋있고 음식도 괜찮은 숲 속 카페가 새로 생겼다. 나는 지인과 그 카페를 찾았다가 아들과 와야지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카페는 노키즈존이었다. 말로만 듣던 노키즈존을 직접 보고 나니 향기로운 커피맛이 씁쓸하게 변했다.


지인들과 이 카페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지인은 노키즈존을 일부러 간다고 했다. 방해받지 않고 조용해서 좋다고 했다. 초등학생의 엄마인 그녀는 집에서 아이와 있는 것도 지치는데 카페에서는 조용히 쉬고 싶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공감이 가는 부분이었다.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아이들을 출입 금지시키는 것이 불쾌하다고 했다. 지인은 심드렁하게 '그럼 다른 데 가면 되잖아.'라고 했다. 그렇게 하고 있다. 나는 뷰가 좋은 그 카페에 그 후로는 가지 않는다. 아이들을 불편해하면서 손님들을 어떻게 진심으로 대할 수 있을까? 의문을 가지게 된 것이다. 어른들이라고 모두 식당이나 카페, 그 외 공공장소에서 매너를 지키는 것은 아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그 카페의 사장님은 저 인간도 출입금지야 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단순히 그 식당, 그 카페에 출입하지 않는 문제가 아니라 그런 단어가 주는 분위기가 나는 불편했다. 맘충이라는데 누가 아이를 낳고 싶겠는가? 노키즈존이라는 말이 존재하는데 아이와 편하게 외출할 수 있을까?


맘충!

노키즈존!


이런 말들이 아이와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몸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한 곳이 병이 나면 망가지듯이 우리 사회도 그럴 것이다. 아이가 불편하고,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벌레처럼 싫었던 사람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대할 것인지 생각해봤다. 키가 커서 키가 작아서 뚱뚱해서 못생겨서 나이가 많아서 여자이기 때문에 남자이기 때문에 이런 많은 이유를 들어 내가, 내 부모님이 겪게 될 일들이 될 수 있다.


아이가 12살이 된 지금도 나는 그 아주머니에게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다. 자신도 아이를 키우고 그 아이의 취업이 걱정되는 어머니인 그분에게 정색하고 묻고 싶다.


정말 아이의 웃음소리도 싫으신가요?

이전 13화 아이와 외식할 때 지갑보다 먼저 챙기는 것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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