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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Mar 12. 2021

유치원에 간 아들이 울면서 말했다.

아들이 7살 유치원에 다닌 지 한 달도 되지 않았을 때 일이다. 아이를 데리러 갔는데 집에 오는 길에 아이가 말했다.


"엄마 어떤 애가 내가 싫대요."


아들이 이 말을 하면서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래? 속상했겠다. 그 아이는 너를 싫어해도 다른 친구들은 너를 좋아할 거야."

"다른 친구들이 나를 좋아한다는 말 안 했는데."

"좋아해도 말 안 한 거지. 너도 친구들한테 좋다고 말 안 하고 그냥 놀잖아. 그지? 같이 노는 친구들 있지? 그 친구들은 너를 좋아하는 거야."

"노는 친구들은 있어요."


아들의 이야기를 듣는데 왜 그 친구가 아들을 싫어하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왜 네가 싫대?"

"내가 못 생겨서 싫대요."


아들은 이 말을 하면서 갑자기 서러워졌는지 눈물이 글썽했다. 금방 소리 없이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나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아들을 안아줬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했다. 이 또래의 아이들에게도 못 생겼다는 말이 견디기 힘든 말이라는 것이 놀라웠다. 엄마 아빠가 매일매일 어쩜 이리 예쁠까 우리 아들! 사랑해 우주보다. 말해주는 것보다 친구의 말 한마디가 아들에게는 세상 잃은 슬픔인 모양이다.


다행히 금방 진정이 된 아들이 심각하게 다시 물었다.


"엄마 내가 정말 못 생겼어요?"


아들이 못 생기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아들에게 납득시킬 수 있을지 답할 말을 찾기가 어려웠다. 아들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아이가 무의식으로, 세포가 기억할 만큼 뼛속까지 알게 하려면 어떤 말을 해야 할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한편으로 아들에게 못 생겨서 싫다고 한 친구한테 진짜 어이가 없네 한마디 해주고 싶었다. 아니 내 아들 어디가 못 생겼다는 거냐고. 내가 진짜 세상 다 뒤졌는데 우리 아들보다 멋진 아이를 찾지를 못했구먼. 나조차 얼굴도 모르는 그 친구에게 마음을 다치고 말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7살 아이의 말에 속으로 펄쩍 뛰고 있었다.


"또미야 너는 못 생기지 않았어. 너 정말 최고로 멋있는 아이야."

"그런데 왜 나한테 못 생겼다고 하는 거예요."

"그건 좋아하는 것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지. 어떤 사람은 빨간색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파란색을 좋아하는 것처럼 좋아하는 사람도 다를 수 있어. 그러니까 그 친구 말 너무 신경 안 써도 될 것 같아. 알았지?"

"네. 그런데 왜 나한테 싫다고 해요?"

"그러게. 그 말은 조금 속상하다. 못 생겼다고 생각할 수 있고, 그 친구가 너랑 놀기 싫을 수도 있는데 그렇게 말하는 건 안 좋은 것 같아. 있잖아 또미야 모든 사람이 너를 좋아할 필요는 없어. 너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너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아. 속상하지만 그래도 괜찮지?"


아들은 말이 없었다. 나는 부족한 내 언변과 부족한 부모력을 실감했다. 다른 부모들은 이럴 때 어떤 말을 해주는 것일까?

 

"또미야 우리 너를 좋아하는 사람이 누군지 말하면서 걸을까? 먼저 엄마는 너를 좋아해."

"아빠도 나를 좋아해요."

"할머니도 너를 좋아해."

"@@도 나를 좋아해요."

"그래 너를 좋아하는 친구도 있네 그지? 어린이집에서 친했던 @@도 너를 좋아해."


아들과 나는 이렇게 세상에 사는 수많은 사람 중에 아들을 좋아하는 사람을 찾으면서 집으로 왔다. 아들은 나와 이야기를 하면서 울음도 그치고 표정도 밝아졌다. 나는 안심했다. 하지만 아들은 생각보다 상처가 컸던 것 같다. 그 후로도 잊을만하면 엄마 내가 정말 못 생겼어요?라고 물었다.


7살 아이들에게도 외모가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지 몰랐다. 아이들은 또래가 함께 있으면 즐겁다고 생각했는데 외모로 상대를 평가하고 싫다는 말을 한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그 친구가 왜 아들에게 그 말을 했는지 나는 정말 궁금했다. 그 아이도 어리니까 무심코 한 말이겠지만 아들은 한 달 넘게 그 상처에 아파했다. 누군가에게 싫다는 말을 들은 처음 경험이었다.


외동이라 우리는 아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좋아했고, 아들에게 과하다 싶게 사랑을 표현했기 때문에 아마 한 번도 자신이 못생겼다고 생각하거나 누군가 자신을 싫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세상에는 자기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사건이었다. 그 후로 아들은 종종 비슷한 말을 들었다. 축구를 할 때 친구들은 '야 또미는 빼 쟤 못해'라는 말을 했다. 단체줄넘기를 할 때도 비슷한 말을 들었다. 놀이터에서 같이 놀자고 말을 건 아이에게 거절당하기도 했다. 


아들은 이제 울면서 집에 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들의 얼굴에 설핏 아픈 표정이 지나간다. 그런 속상한 말 한 번도 듣지 않고 살면 좋겠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다. 아들은 조금씩 마음에 굳은 살을 키우고 있다. 세상에는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아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기를 사랑하는 그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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