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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Mar 23. 2021

남편이 퇴근하면 90도 인사를 한다

띡 !띡! 띡!

현관문 여는 소리에 나는 현관으로 달려갔다. 중문을 열고 손을 공손히 모으고 남편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남편이 들어오면 나는 90도로 인사를 했다.


"안녕히 다녀오셨어요?"


고개를 숙인 뒤통수까지 근질거리면서 고개를 들기가 두려울 정도로 온몸이 오글거렸다. 고개를 들자 남편 역시 나와 같은 표정이었다. 남편이 뭐지? 하는 불안하고 어색한, 하지만 싫지 않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아이를 위해 내가 이러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남편은 어색하게 "어. 네 다녀왔습니다."라고 말하며 집으로 들어왔다. 


6년 전에 일이다. 나는 아이가 자라면 저절로 알고 스스로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저절로 배우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가 6살이던 어느 날이었다. 평소와 조금도 다를 게 없는 날이었다. 아이는 거실에서 레고를 가지고 놀고 있었고, 나는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남편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설거지를 하면서 들어오는 남편을 보며 말했다.

"왔어요?"

어제와 같은 인사였다. 그때 나는 아이에게 다가가는 남편을, 아빠가 와도 레고에만 정신이 팔린 아이를 봤다. 아이는 반가워서 뒤에서 안으려고 하는 아빠에게 짜증을 냈다. 사실 충격을 받았다. 크면 저절로 할 거라는 생각에 아빠가 와도 아이가 노는데 빠져 있으면 그냥 놀게 했다. 그런데 6살이 되어도 아이는 아빠가 퇴근하고 와도 인사를 하기는커녕 아빠가 다가가는데 돌아보지도 않았다. 나의 안일함이 가져온 결과였다. 아이가 반갑게 달려가거나 공손하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하지는 않아도 놀다가 고개를 들고 '다녀오셨어요?'라고는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아이는 소 닭 보듯이 가 아니라 아빠를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다음 날부터 나는 남편이 퇴근을 하면 빛의 속도로 달려가서 90도로 인사를 했다. 처음에 남편은 어색하고 불안하게 웃으면서 나를 쳐다봤다. 


'나도 오글거려서 미치겠거든. 그냥 들어와.'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하면서도 매일 그렇게 남편의 귀가를 환영했다. 몇 달이 지나도 아이는 여전히 거실에서 놀고 있거나 책을 읽고 있었다. 쉽게 바뀌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이가 나의 갑작스러운 행동을 궁금해하지도 않아서 나는 남편과 아이, 모두에게 쪽팔렸다. 


몇 달이 지난 후, 나는 뭔가 더  강한 자극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다음날부터 나는 남편이 퇴근을 하면 "아빠 왔다!"라고 외치면서 산타할아버지가 온 것처럼 반갑게 달려갔다. 아이는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부끄러움과 오글거림을 무릅쓰고 매일 이렇게 남편에게 인사를 했다. 반갑게 달려가서 최대한 공손하게 90도로 인사를 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거의 1년이 되었을 때부터 아들은 내가 "아빠 왔다!"라고 말하면서 현관으로 달려가면 따라와서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나란히 서서 남편에게 "안녕히 다녀오셨어요?"라고 인사를 했다. 매일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8살쯤에는 현관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리면 아이는 나보다 먼저 달려가게 되었다. 그러면 나는 아이를 따라가서 아이와 같은 자세로 인사를 한다. 처음에는 어색해서 죽겠다는 표정이었던 남편도 이제는 이런 인사에 익숙해졌다. 


지금도 나와 아이는 여전히 90도 퇴근인사를 멈추지 않고 있다. 사실 이제는 익숙해서 멈추기가 어렵게 되었다. 내가 남편에게 이 인사를 시작한 것은 아빠에 대한 엄청난 공경심이나 권위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어른이기 때문에 어린아이에게 그 정도 인사는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도 아니었다. 하루 종일 일하고 집에 돌아와서 그 정도 인사는 받아야지 하는 보상도 아니었다. 가족이 집에 올 때, 가족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게 하고 싶었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내가 무심하게 남편을 대하자 아이도 그렇게 하는 것을 보고 내가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를 바꾸려면 만 번을 가르쳐야 한다는 말이 있다. 아이에게 아빠 오셨으니까 인사해야지 라고 말하지 않고 엄마가 아빠를 대하는 태도를 보고 느끼기를 바랐다. 그래서 없는 연기력으로 얼굴에 개미가 기어가는 것 같은 오글거림을 참아내면서 아이에게 보여주기로 했던 것이다. 엄마가 아빠를 얼마나 존중하는지를, 아빠가 밖에서 우리를 위해 수고한 하루에 대해서 엄마가 얼마나 고마워하는지를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남편은 이 일에 대해 나에게 직접 말한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이제는 그저  익숙한 하루 일과일 뿐이다. 그런데 몇 년 전 지인들과 식사를 하는데 남편이 이 인사에 대해 지인들에게 처음으로 말했다. 아이의 교육을 위해서 하는 것은 알지만 매일 퇴근할 때 아내와 아이가 현관으로 달려와서 인사를 하면 기분이 아주 좋아진다고. 그리고 아이를 위해 매일 90도로 인사를 하는 아내한테 고맙다고. 


퇴근인사 외에도 나는 아이에게 하라고 하지 않고, 내가 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책을 읽으라고 하기 전에 내가 항상 책을 읽으려고 한다. 스마트폰을 내가 자주 하면 아이도 내 스마트폰을 자주 만지는 것을 보고 아이가 있을 때는 스마트폰을 최대한 자제하려고 한다. 아이는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거울에 예쁘게 비치기 위해 나를 더 가꾸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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